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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룻기강해

기업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룻 2:14-23)

기업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룻 2:14-23)

노승수 목사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룻기 2:14-23, 개정)

* 에바 : 호멜의 1/10로 한 호멜은 나귀의 한 짐을 의미한다. 한 에바는 대략 22리터, 건량으로는 20쿼트 정도다.
1. 룻에게 자비를 베푸는 보아스(14-17)

보아스는 참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여인이었던 룻을 선대합니다. 떡을 배불리 먹고 남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룻이 주운 이삭은 요즘으로 치면 20Kg 짜리 한 가마를 주운 것입니다. 이것을 이삭 주웠다고 하기 어렵지요? 보아스의 자비와 인애가 어떠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 지나가는 과부에게 얼마간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매일 20kg 보리 한 가마를 줍는다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도 농경사회에서, 이것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기업무를 자 중의 하나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듯합니다. 뒷 본문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율법을 따라 과부이며 이방인이었던 룻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씀대로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해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어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긴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보아스는 율법을 존중하는 자였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책망을 듣는 사람입니까? 칭찬을 듣는 사람입니까? 

2. 기업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18-23)

나오미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한다는 말은 기업 무르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유대에는 형사취수법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형이 자식이 없이 죽을 때,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법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다의 아들 엘이 자식이 없이 죽자, 동생 오난이 형의 대를 잇는 것을 싫어하여, 형수 다말에게 들어갔다가 씨를 땅에 설정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에게 엘의 동생들을 주기를 꺼려하는데, 다말이 창녀로 위장하여 유다에게서 씨를 받습니다. 이 일로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다말이 유다에게 지팡이와 끈을 보내어 이 끈 임자로 인하여 임신하였다고 했을 때, 유다가 저가 나보다 옳다 곧 의롭다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마태복음의 예수의 계보에 이 다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기업무름이란 다른 의미도 포함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독특한 토지법이 있습니다. 조상에게 주신 토지는 그 소유권이 영구히 타인에게 갈 수 없습니다. 50년을 기점으로 원주인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오미 일가가 10년 전에 땅을 팔고 모압 땅으로 간 그 땅을 이제 다시 나오미 일가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기업 무름이라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임대계약입니다. 희년이 10년 남았다면 이제 남은 10년치의 사용료를 상대에게 지불하고 그 기업을 다시 나오미 일가로 돌리는 일이 기업 무름입니다. 사실 이 일은 보아스에겐 크게 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푼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오난이 형수 다말에게 씨를 주는 일을 싫어한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구속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죽은 자로부터 대를 잇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불임모티프도 비슷한 의미를 담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생산할 능력이 있을 때, 이삭을 주지 않으시고 죽은 것과 같을 때, 이삭을 주신 것처럼, 기업 무름과 형사취수제도는 죽은 자로부터 대를 잇는 제도입니다. 창 3:15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담는 것입니다. 다말도 룻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와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묵상할 때, 지나치게 모범적으로만 읽는 일은 경계해야 합니다. 룻의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구속을 계시하는 계시의 말씀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