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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룻기강해

기업 무름의 의미(룻 4:7-22)

기업 무름의 의미(룻 4:7-22)


노승수 목사


[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18]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1. 죽은 자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7-10)


도대체 죽은 자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죠. 성경은 왜 이런 율법을 두었을까요? 이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은 이들에게 부활신앙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단지 관습이나 전통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부활에 관한 신앙이 이들에게 있었던 것이지요.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인류에 관한 모세 오경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담지 않고는 절망적입니다. 창 3:15로부터 이들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와 부활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는 것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기업의 무름은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기업의 상징입니다. 


2.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11-12)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축복을 합니다. 많고 많은 이름 중에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 같게 해달라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근친상간 같은 이 행동이 오히려 다말이 의를 다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지금 룻과 보아스 역시 그와 같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원리에 따라 우리의 믿음의 도리를 다할 때 우리 역시 공동체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또 축복의 통로가 됨을 기억합시다. 


3. 기업 무를 자를 얻다(13-22)


드디어 룻과 보아스가 결혼하여 기업 무를 자를 얻었습니다. 장차 언약의 자손이 오실 계대를 얻은 것입니다. 다윗의 할아버지이지요. 다윗과 언약하셨던 하나님이 이 이전부터 그리스도가 오실 계보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엡 1:11에 보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기업을 무르게 하심으로 장차 이을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다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기업을 무르며, 그 계대다 태어나는 것을 보며, 창 3:15의 언약을 기억하며, 장차 오게 될 영광의 기업을 소망했을 것입니다. 온전하지도 않은 희미한 계시 가운데서도 이런 소망을 가졌다면 온전한 계시인 성경을 받아 가진 우리의 소망은 어떠하겠습니까? 나는 어떤 하나님 나라엗 대한 소망을 가진 자로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