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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나답과 아비후, 적정과 절도의 규범에 대한 더 깊은 이해

오늘 맥체인 성경읽기에 나답과 아비후 사건이 나온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띠었다.

 

보통 장로교회와 개혁파 전통을 잇는 교회들에서는 이 본문을 "적정과 절도 규범(Regula modestae et sobrietatis)"과 그 원리로 설명한다(이에 대한 설명은  http://bitly.kr/SgP3qAvq 참조하라). 나답과 아비후과 제단에서 다른 불로 예배를 드리다가 거기서 나온 불에 죽고 마는 안타까운 사건을 다룬다(레 10:1-7). 이 사건과 더불어 웃사가 언약궤에 손을 대어 죽는 사건(대상 13장)과 더불어 예배에 있어서 그리고 그 예배의 실천적 삶에 있어서 성경이 우리 규범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임의로 고안할 수 없는 원리를 일컫을 때 자주 인용되는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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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어지는 본문 레위기 10:8-20에서 두 가지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는 아마도 다른 불로 제단에 드리다가 죽는 사건은 나답과 아비후의 음주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9절에서 그런 지점을 읽을 수 있는데 그래서 회막에 들어갈 때는 금주를 명한다. 이유는 10-11절에 나오는데 그래야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앞서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했던 나답과 아비후의 상태와 연관이 있어 보이며 그 문제의 본질이 음주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는 16-20절에 아론과 에르아살과 이다말이 성전 규례대로 속죄제의 염소를 먹지 않고 불살른 것에 대해서 모세가 노하는 장면과 아론의 답변과 모세가 좋게 여기는 부분이다. 통상 개혁교회들의 예배들은 지나치게 엄격한 경향이 있다. 마치 방금 박물관에서 나온 듯 고루한 형식과 성도가 동감할 수 없는 절차들에 착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세가 규례보다 그 중심을 좋게 여긴 점과 규례를 어겼음에도 세 사람이 죽지 않은 점을 들어서 이것이 적정과 절도의 규범이 단지 형식적 조건을 충족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내면적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적정과 절도의 규범이란 결국 단지 형식적 요건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 것과 그 예배됨이 결국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 가지 더 볼 수 있는 점은 제사장의 직무와 관련하여서 모세를 통해 배운 것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직분임을 보여준다. 결국 참된 예배는 형식적 원리를 고수하는데 있지 않고 복음의 근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워 아는 데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예배가 조금 달라지면 그걸 못 견뎌 하는 것은 경우를 본다. 자기는 그렇게 안 배웠다며 배우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예를 들어 축도가 기도가 아니라 강복선언이라는 가르침을 수납치 못하는 경우가 이런 예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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