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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다중 인격과 인격 출현 다중 인격 같은 현상을 짧게 경험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5학년 쯤이었다. 부산 살 때인데 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차별하는 것과 정서적 학대가 너무 노골적이었고 그 날 따라 초저녁에 깊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이 식탁에서 나보고 "어제 왜 그랬냐"고 물었다. 난 전혀 기억이 없는데 자다가 일어나 나와서 의자를 들고 내리치면서 여동생에게 "까불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고 방에 들어가 잠 들었다고 가족들이 전해주었다. 그때 사람이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면 이런 일도 발생하는구나 하며 마음에 담아둔 적이 있다. 나중에 심리학을 배우면서 해리나 다중인격은 학대가 배경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대학 때 우연히 읽었던 프랑스인의 학대로 인한 다중인격 장애에 대한 자전적 보고서는 이 현상에 대한 이.. 더보기
머리에 꽂은 꽃의 의미 미친 여자가 머리에 꽃을 꽂은 것은 그 병증이 이쁨 받지 못해 생긴 증상이라는 단적인 예시다. 더보기
그리움과 편가르기 그리움은 편 가르기를 하는 편이다. 그 편가르기는 불안에게 의심을 안긴다. 그리움이 담아두려는 것은 온전히 내것이지 않은 것 같음에 대한 시기이지만 불안은 그것을 의심이란 유보적 방식으로 받는다. 무언가 주고받았으나 그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 바벨탑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미안하다를 착한 척이라고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미안해야 할 상황에 착한 척을 하므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렇게 자기의 시기와 적대를 누군가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걸 받는 사람은 또 각자의 세계로 그걸 받는다. 더보기
창세기 37:1-17 매일 성경 9월 1일자 묵상 팁 창세기 37:1-17 창세기 37:2의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אֵ֣לֶּה תֹּלְד֣וֹת)"는 여자의 후손으로 올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창세기의 10개의 계보를 나타낼 때, 사용한 표현이다. 10개의 엘레 톨레도트는 다음과 같다. 1. 우주의 위대한 시작을 통한 도입_첫 번째 toledoth(2:4b-4:26), 2. 아담의 계열_두 번째 toledoth(5:1-6:8), 3. 노아의 계열_세 번째 toledoth(6:9-9:29), 4. 노아의 세 아들 계열_네 번째 toledoth(10:1-11:9), 5. 셈의 계열_다섯 번째 toledoth(11:10-26), 6. 데라의 계열_여섯 번째 toledoth(11:27-25:11), 7. 이스마엘의 계열.. 더보기
기독교 변증, 새로운 플랫폼 법륜의 즉문즉설은 매우 현실적 조언으로 불교의 교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전통은 원래 힌두교의 삿상(satsang)이라는 "진리와의 만남" 혹은 "진리를 주제로 한 대화"라는 힌두교 교사 구루(guru)와 구도자의 대화식 진리 탐색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원래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신학의 핵심은 변증이었다. 변증이 시간이 지나면서 논리적 설득으로 평가절하된 면이 적지 않다. 삶과 구도에 적실한 나눔이 있는 변증이 필요하고 변증이란 허공에 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제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제적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만남이 유발하는 가교와 같은 나눔 공동체가 필요하다. 더보기
믿음 소망 사랑 예배적 장치들 원래 개혁파 예배에는 주기도와 사도신경, 십계명이 예배의 중심을 이룬다. 이 셋은 우리 안에 길러지는 초자연적인 덕인 믿음, 소망, 사랑을 가늠하는 예배적 장치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초자연적인 습관은 먼저 믿음을 심으심으로 우리가 은혜의 수단들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면 은혜의 주입(impartation)이 일어나고 이것이 소망과 사랑의 덕을 성장시킨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공덕을 향해 우리의 자라남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며 매 예배에서 이것이 확인될 수 있도록 예배가 디자인되어야 한다. 더보기
종탑과 태풍 이제 예전처럼 예배당에서 종치고 사람 모으는 것도 아닌데 12세기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진 고딕 양식의 첨탑을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데 다는 것은 그만합시다. 이전에 달아 둔 것을 굳이 떼려면 돈들잖아요. 그건 두시고 태풍에 날아간 것은 굳이 기천만원 들여 새것으로 달지 말고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예배당을 상징하는 것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참고로 루터파는 장닭을 첨탑에 달았어요.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첨탑 달고 거기 십자가 다는게 만고불변의 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든 예에요 . 태풍때마다 누군가에겐 고통과 피해를 줄 첨탑 시공은 이제 그만합시다. 앗시스의 프란시스는 금식하다가 형제들이 예민해져 다투는 걸 보고 바로 식사를 했다잖아요.. 이웃을 조금만 더 생각합시다. 누가.. 더보기
탈피와 성장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성장에 따라 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 생각이 탈피하지 못해도 도태된다. 괜히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는게 아니다. 더보기
요셉의 신학 오늘 매일성경 본문을 보면 7년 풍년의 기간 동안 요셉의 두 아들이 난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기록일 수도 있으나 이 연결은 이 풍년이 요셉에게 가져다 준 신학적 메시지를 들여다 보게 해준다. 그가 얻은 첫 열매인 장남 므낫세는 자신의 지난 고난과 아버지 온 집의 일을 잊게 했다고 고백하며 지은 이름이다. 이 말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담고 있고 동시에 그 일들에 대한 요셉이 들은 하나님의 대답을 담고 있다. 구약에서 이름은 단지 부르기 위한 호칭이 아니라 계시사적 메시지를 담는다. 요셉은 득남을 통해 과거 일을 잊었다기보다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던 지난날이 이해되고 설명되었다는 의미다. 이 시점에 그는 형들을 용서한 것이다. 자기가 꾼 꿈도 이 시점에야 비로소 그 진의를 깨닫게 되었다... 더보기
구원과 심판의 심리적 의미_미완성 성경에서 구원과 심판은 항상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대표적인데 이 사건은 종말의 성취라는 점에서 심판의 사건이면서 성령이 임하고 각기 난 곳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알아듣게 되었다는 점에서 구원의 사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큰 일 자체가 구원을 의미하는 관용어이기도 하다. 성경이 심판과 구원의 이미지로 사용하는 추수는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기도 하며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기도 하는 이중적 은유를 담고 있다. 이런 이중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지자들과 신자들이 이해를 결여하기도 한다. 예컨대, 세례요한이 이 메시지를 하면서 구원보다 심판에 기울어져 이해함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오해했다. 이 구원사적 사건들은 우리 심령에 적용되는 메시지다. 당연히 성경의 구원사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