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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교회론

루터가 가진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의미

"교회는 신자들의 모임,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따라서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연스럽게 가시적 측면과 비가시적 측면을 지녔다. 제이베르크(Seeberg)에 의하면 이러한 구별은 츠빙글 리가 아니라 루터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루터는 이런 구별을 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이며 동일한 교회의 두 측면으로 이해했다.

루터에게 있어서 교회는 플라톤적 이상, 현실이 없는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고 믿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구체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한편으로 교회는 비가시적이며 믿음의 대상인데, 왜냐하면 사람이 믿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가시적인데, 왜냐하면 교황, 주교들, 미사 의복들과 다른 외형적인 것들이 아니라, 말씀과 성찬의 순수한 집행 가운데 드러나고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과 성찬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비록 단지 요람 속의 어린 아이들뿐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참된 신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몸 안에 낯선 요소들이 침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물론 불신자들이 있을 수 있으나, 교회의 본질은 신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몸 전체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의해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터파 신조들에서 교회는 “복음이 바르게 가르쳐지고 성찬이 바르게 집행되는 모임, 즉 성도들과 참된 신자들의 교제 혹은 모임”으로 묘사되었다. 교회는 진실로 가시적이어서 직분들과 제도들을 지니고 있으나, “교회는 단지 외적인 것들과 의식들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주로 믿음의 공동체이며 마음속에 있는 성령과의 교제다.” 

그러므로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의 구별은 본래 단지 로마교에 대해 교회의 본질이 비가시적인 것, 즉 믿음,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유익들과의 교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교회의 가시성, 즉 현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자 한 것이 겨로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곧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었던 사실은 교회 안에 “이 지상의 삶 가운데 많은 나쁜 사람들과 위선자들이 섞여 있는데” 그들이 물론 “외적 의식들에 있어서는 참된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를 형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의 왕국”에 속한다는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부흥과 개혁사, 3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