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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인간론

루터에 있어서 율법의 제3용법

루터에 있어서 율법의 제3용법
손규태 교수
성공회신학논총 5(1991) pp.7-52 http://theologia.pe.kr/
I. 문제와 과제
1. 루터신학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의 중요성
종교개혁의 아버지인 루터 (Martin Luther)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신학자나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그는 종교개혁의 탁월한 영웅일 뿐만 아니라 서구역사에 사상적 근간을 이루는 인물로서 그의 신학적 가르침이나 개인의 자유와 책임성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은 교회나 사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던 것이다.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종교의 개혁을 요청했고 여기에 수반하는 새로운 인간이해는 새로운 인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를 찾아 우리의 확고한 신앙의 근거를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늘 안내자를 필요로 한다. 특히 현대와 같이 모든 기존질서들이 위협을 당하고 부정되는 시대에는 언제나 확고한 정신적 신앙적 안내자가 요청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루터에게서 신학하는 일(Theologisierung)의 기준을 찾고 이 기준을 통해서 현대의 교회 및 세계에 대하여 몇가지 기준이 되는 이해를 얻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루터를 이해하고 그의 사상의 근저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몇가지 난점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는 현실적인 문제로서 언어의 장벽이다. 방대한 봐이마르 전집 (Weimar Ausgabe)을 읽기 위해서는 독일어와 라틴어의 장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는 이론적인 문제로서 루터는 칼빈과는 달리 조직신학자가 아니어서 그의 사상의 중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우리 손에 남겨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조직신학적인 의도가 아니라 역사적인 '생의 정황'에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기록된 글들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과 밀접히 관련된 기독교인의 자유, 교회의 바빌론 포로, 기독교인 귀족에게 보내는 글등도 그의 신학과 사상을 조직적으로 천명한 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루터교회 안에서 교리적인 기준으로 간주하고 있는 아욱스부르그 신앙고백서만 하더라도 루터 자신의 손으로 기록되지 않고 그의 동료인 멜랑톤(Melanchton)에 의해서 쓰여졌다. 루터 자신이 기록한 신조에 대한 몇편의 논문들과 두 개의 교리문답서들도 루터 자신의 신학의 제한된 범위만을 보여 줄 뿐이다. 그러면 루터는 전혀 비조직적이며 교리나 신학에는 무관심했을까? 아니다. 루터를 종교개혁의 설교자로, 칼빈을 조직신학자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러한 견해는 두 사람을 다 적절히 평가했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칼빈은 조직신학자 못지 않게 설교자였고 루터는 조직신학적 저서를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저서들은 그 방법과 내용에 있어서 조직적이며 교리적이다.
그러면 루터의 사상과 신학의 핵심에 도달하는 첩경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그의 신학의 내용에 들어가기 보다는 그의 신학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 및 '율법의 제3용법'을 이해함으로써 그의 사상의 중추를 찾아 보고자 한다. 루터는 '아욱스부르그 총회에 모인 성직자들에게 행한 권면' 1) 에서 참된 교회가 취급해야 할 32개의 논제들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제일 먼저 "율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제시한다. 그리고 루터는 "복음에 이어 죽어가는 자를 다루는 법"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루터는 창세기, 로마서, 갈라디아서등 주석들과 "선행에 대한 설교" 및 반율법주의자들과의 논쟁 등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규명을 그의 신학적 안 내자로 삼고 있다. 루터는 그의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을 적절히 구별하는 법을 아는자는 누구나 하느님께 감사하고 자신이 참 신학자임을 알아야 한다. " 2) 그는 또 "누구든지 이 기술을 아는 사람은 신학자라 불리울 자격이 있다" 3) 고 했다.
그는 또 그의 설교에서 모든 것은 이 양자의 구별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로는 기독교에서 이 둘, 율법과 복음이 명백히 구별되어 혼돈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혼돈이 생길 때 이 두개 가운데 하나 혹은 두개 다 잃게 된다는 것이다. 교황치하에서는 율법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복음과 함께 복음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율법을 이해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율법 아래 있는 신앙만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4) 루터는 종교개혁 당시 그리스도를 새로운 율법의 수여자로 간주하여 복음을 율법화 하는 스콜라주의와 율법의 전적인 폐지를 주장하여 율법을 복음화 하려는 열광주의자들(Schwaermer) 사이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찾으려 했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이 두 개의 전선에 대항하여 투쟁했고 이러한 위험은 종교개혁 당시 뿐만 아니라 현재의 교회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사이의 신앙고백의 차이, 전통적 형태에 있어서 종교개혁의 의인론의 타당성, 사회정치적 영역에서의 교회의 책임성의 위치 및 두 왕국
개념(Zwei Reichelehre)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5)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선교의 특수성, 신앙, 실존, 선교, 신학, 인간이해 및 교육 등이 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따라서 규정된다. 6) 핸들러 (K.Haendler)는 이 양자의 관계가 루터 신학의 모든 제목들을 꿰뚫고 있다고 한다. 7) 골비쳐 (Helmut Gollwitcher)는 루터가 성서에서 복음을 새롭게 찾아낼 때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게 한 것은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는 방법을 터득한 데 있다고 했다. 8) 즉 성서이해의 기본 척도를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밝히는 데서 규정되는 것이다. 만(U.Mann)도 율법과 복음이 종교개혁의 기독교 이해의 중심이며 기본척도이며 신학적 사상의 근거라고 했다. 9) 킨더 (E.Kinder)도 율법과 복음은 신학의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체 신학의 개념들을 규정하고 개개 문제들의 기준과 방향들을 제공하는 보편적 주제다" 10) 라고 했다.
'율법과 복음의 대립관계'(Gegensatz)는 종교개혁신학의 기본명제였다. 은총을 통한 의인,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등의 교리는 이 기본명제 위에 세워져 있다. 종교개혁 적인 해석학도 이 명제에 근거를 두고 있다." 11) 이상에서 언급한 개념들을 고려해 볼 때 루터 신학의 모든 개념들은 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 이해되며 이 개념을 이해하는 성격에 따라 다른 모든 신학적 제목들의 개념이 규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 특히 '율법의 제3용법'을 루터의 글들을 검토해 봄으로써 규명하자는 것이다.
2. 율법과 복음의 문제성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 당시나 정통주의 시대에는 루터교회에서나 개혁교회에서나 율법과 복음의 교리가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루터가 칼쉬타트와 우상타파자들에 대항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율법성을 비난한 일은 있으나 12) 이 사건도 율법과 복음의 동등한 관계에서가 아니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문제삼는 데서 생긴 것이다. 13) 당시 쯔빙글리와의 논쟁에서도 루터는 주로 성만찬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루터는 또 안티노미안들과의 수차례의 논쟁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그의 신학적 입장의 기본명제 가운데 하나로 선택하여 순수한 기독교의 교리를 보존하는 유용한 형식으로 채택했을 때도 쯔빙글리와 칼빈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논쟁의 재료로 삼지 않았다. 14)
당시의 루터교인들과 개혁교인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점은 성만찬에 관한 견해와 거기에 수반되는 기독론의 문제였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 양진영 사이의 논쟁의 숫자가 확대되는데 17세기는 예정론이 그 선두를 달린다. 율법과 복음의 문제는 이 논쟁들의 변두리에 머물거나 부수적으로만 언급되었을 뿐이다. 15)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종파간의 날카로운 대립은 사라졌다. 루터파나 개혁교인들은 이 시대는 대체로 복음을 율법적으로 이해하여 율법과 복음의 변증법적 관계에 별로 관심하지 않았다. 16) 플랑크(J.C. Planck)같은 이는 율법과 복음의 교리에서 구별을 고려에 넣지 않았고 동시에 이 교리에 대한 종교개혁의 가르침에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에 의하면 16세기 안티노미안과의 논쟁은 순전히 말장난에 불과하며 본질적인 면에서는 루터와 아그리콜라 사이의 차이점은 없다는 것이다. 17) 개혁교회와 루터교회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는데 있어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견해를 그 척도로 삼은 이는 슈넥켄부르그(Matthias Schneckenburger)였다. 18)
그에 의하면 이 양 진영이 다양하게 생각하는 주관적 구원의식(Subjektives Heilsbewusstsein)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루터파교회에서는 죄의 고백과 동시에 곧이어 직접적인 구속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는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루터교인들은 의로워진 자로서 신자에게는 율법이 지배하지 못하며 옛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고 생각하나 개혁교인들은 율법은 신자에게도 강제하고 요구하는 힘으로써 인정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신앙 자체를 계명의 형식(Form des Gebotes)에서 선포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개혁교회와 루터교회 차이가 명백하다. 19세기에 와서도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19세기초 새로 등장한 고백루터교회에서 개혁교회와의 연합이 깨어지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그후 하르낙은 율법과 복음의 구별을 그리스도 안의 세계와 그리스도 밖의 세계를 구별하는 데 적용하여 하느님이 이 두 세계에 대하여 각기 다른 관계를 갖는다고 했다. 19) 여기에 반하여 리츨은 이러한 이차원적 구별을 지양하여 하느님의 본성은 무제약적인 사랑이라고 정의하여 하르낙이 진노의 하느님과 사랑의 하느님, 그리스도 안의 세계와 그리스도 밖의 세계로 구별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20) 그리고 하르낙은 좀 다르게 율법과 복음의 철저한 구별을 실천신학적면에서 시도한 발터 (C.F.W. Walther)는 특이하다. 21)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루터교회가 율법과 복음의 관계로 개혁교회와의 대립이 계속되는 동안 개혁교회측에 대해서는 율법성(Gesetzlichkeit)이 비난되었고 루터교 진영에서는 순수한 복음의 유지가 요청되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율법과 복음의 긴장에 대한 계속적인 유지가 특별히 루터교적 원칙이 되지는 않았다. 22) 칼 홀(Karl Holl)의 숨으시는 하느님과 계시하시는 하느님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새로운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주어 새로운 변증법적 신학이 싹트게 되었다. 23)
그런데 율법과 복음의 관계문제는 개혁교회 전통에 서 있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복음과 율법'(Evangelium und Gesetz)이란 논문을 출판함으로써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다. 24) 그는 고전적 칼빈주의를 재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칼빈적 전통 자체에 비판적으로 대립하는 새롭고 본질적인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그의 논점은 전통적인 논점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의를 준다. 25) 오늘날 루터교 진영에서는 복음과 율법이 하나라고 하는 바르트적 이해를 부정하는 측에서도 어떻게 이 이해를 새롭게 건설적으로 해석하느냐 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율법을 자연질서 특히 나치의 국가질서(Nationalsozialistische Staatsordnung)와 일치시킨 예로서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에 대한 안스바하 협의 (Ansbacher Ratschlag zu der Barmer theololgischen Erklaerung)와 같은 것은 전후에는 거기에 서명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에 의해서도 긍정되지 않았다. 엘러트(Werner Elert)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후에 출판된 '은총과 비은총 사이에서' (Zwischen Gnade und Ungnade)에서 국가질서의 악마화의 가능성을 지적했으며 루터교 진영에서도 최근에는 법 (Rechte)의 근거와 자연법과 그리스도의 법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서는 복음의 내용으로부터 완전한 고립은 허용될 수 없으며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는 루터에게 호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했다. 26)
이는 루터의 두 나라 개념에도 적용된다. 특히 오늘날 많은 문제를 제기해 주는 것은 율법과 복음에서의 율법의 제3용법 (tertius usus legis)의 문제다. 엘러트는 1538년 안티노미안 제2차 논쟁의 마지막에 루터가 제3용법의 개념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1535년의 멜랑톤의 LOCI로부터 부가된 것이라고 못밖고 있다. 27) 그는 율법의 어떠한 용법도 루터에게서는 신자를 위해서 적극적인 기준으로서 간주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Unversohnliche Gegenuber)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아스무센(Helmut Asmussen), 에벨링 (Gehard Ebeling), 브링 (R. Bring), 킨더(E. Kinder) 등을 들 수 있다. 다른 한편 외스트(J. Joest)는 루터에게 제3용법의 용어나 명백한 개념을 사용지 않았으나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고려해 볼 때 기독교인에게도 율법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음을 고혀할 때 이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28)
긍정하는 이들은 칼 바르트, 부른너, 발터 등이다. 율법과 복음의 통일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은 이 제3용법을 긍정하며 이 양자간의 가장 고차적인 관계를 거기에서 보려고 하는 반면에 율법과 복음의 대립적 성격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제3용법을 부정하며 이 관계를 변증법적 관계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3. 논문의 과제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서 적어도 다음 몇가지 과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첫째는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루터의 신학방법론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그의 방법론을 이해하는 것은 종교개혁 및 현대신학의 기초를 파악하는 열쇠가 된다.
둘째는 의인론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바로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이 의인론은 루터의 인간이해와 직결되는데 율법과 복음은 인간, 신앙안에 혹은 이전에 선 인간을 고려치 않고서는 논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과 은총, 자유와 은총, 결단 등이 논의될 것이다.
셋째는 윤리학에 대한 루터의 사상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국가와 교회,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 및 사회문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등을 문제삼게 될 것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면 루터사상의 실제적인 적용 그 자체 보다는 오히려 기거로부터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교회의 방향을 가름하는 어떤 기준을 얻어 보려는 것이다. 특히 율법의 제3용법의 이해를 통하여 기독교 메시지를 바르게 파악하는 척도를 찾아 보려고 의도한다.
4. 연구방법 및 전개
위에서 언급한대로 루터의 글들은 생의 정황을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과 관계되기 때문에 연구방법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가 역사적 문서들을 통해 한 인물의 사상을 연구하려 할 때 일방통행이란 기대할 수 없다. 루터연구사를 보면 대체로 다음 세가지 연구방법을 따른 것을 보게 된다. 첫째는 역사적 연구방법이다. 이 방법은 흔히 사용되는 것으로서 한 인물의 일정한 사상이 언제 (Wann) 등장하여 어떻게 (Wie) 발전되어 갔는 가를 살피는 것이다.
둘째는 조직적 연구방법이다. 이 방법은 단지 한 인물의 사상이 무엇 (Was)을 말하고 있는 가를 문제삼는다. 여기서는 그 사상의 발생시기나 역사적 변동 등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조직적 연구방법도 실은 내용(Was)만을 문제삼지 않으며 그 이유(Warum)도 문제삼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적 연구방법과 조직적 연구방법은 상호 배타적이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다. 29) 그래서 프렌트(R. Prenter)는 "루터신학의 조직적 연구방법은 항상 교회사가들을 위한 간접적 의의를 갖는다" 30) 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느 한가지 방법을 통해서 루터를 연구할 수는 없다. 뢰프겐(D. Loefgen)도 루터의 창조론을 연구하는 데서 루터연구의 두 가지 방법이 지니는 극단적인 경향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구성은 역사적 검토를 거친 자료들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1)
따라서 대체로 오늘날의 루터연구는 이 두가지 방법을 종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순수하게 연대기적으로 루터의 진술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캐는 역사적 연구방법이란 결국 무수한 자료속에서 서로 뒤얽힌 모순들을 발견하고 끝날 것이며 저작의 시기나 발생과정을 고려치 않은 조직적 연구방법은 그 신빙성에서 심한 약점을 지닌다.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방법을 종합 보완하는 방법으로 주석적인 방법이 사용된다. 이 방법은 역사적 연구방법과 조직적 연구방법에서 발견되는 상호 모순되는 문제들을 본문의 철저한 검토를 거쳐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매우 유용한 방법의 하나로 널리 이용될 전망이다.
본 논문에서는 역사적 연구방법을 채택하지 않고 석의적인 방법의 도움을 받아 조직적 방법으로 전개해 나가려고 한다.
역사적 방법에 의한 율법과 복음의 개념에 대한 발생 및 발전과정을 검토하는 것도 유익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 32) 그러나 본 논문은 조직적 연구방법을 택함으로써 연대적 제한을 넘어서 손에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조직적으로 석의적으로 검토하여 율법과 복음의 문제를 밝히려 한다. 전개에 있어서는 제1장에서는 논문의 문제 및 과제 그리고 방법을 다루고 제2장에서는 율법의 두 가지 용법 즉 제1용법 (usus politicus)과 제2용법 (usus theologicus)의 문제를 밝힘으로써 제3용법의 서론으로 삼고자 한다. 이어서 율법의 제3용법의 가능성을 검토하는데 우선 율법과 율법성의 문제에서 루터의 율법이해의 본질적인 면을 검토한다. 그리고 율법과 인간관계에서 루터의 유명한 명제인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명제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의인과 성화의 문제가 논의된다. 제3장에서는 제3용법에 대한 현대신학자들의 의견을 검토한 후에 결론에서는 필자의 견해 및 제기된 과제에 대한 원칙적인 의견을 진술함으로써 논문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