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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믿음과 행위


믿음과 행위

이성호 교수

믿음과 행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논의들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오히려 혼동만을 주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 같다. 이 글은 이러한 혼동을 정리하기 위한 글이다. 

1. 믿음과 행위는 구분되지만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확신에 찬 지식 (assured knowledge)이다. 즉, 믿음의 본질은 앎(knowing)이다. 반면 행위는 우리 자신이 행하는 것(doing)이다. 따라서 믿는 것도 어떻게 보면 행위의 범주에 들 수 있다. 
2. 중요한 것은 참된 믿음과 거짓된, 혹은 헛된 믿음을 구분하고, 참된 행위와 거짓된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헛된 논쟁들을 계속 양산하게 된다. 

2. 1.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항상 참 믿음, 그리고 행위를 일으키는 믿음, 혹은 열매는 맺게 하는 믿음이다. 전자는 믿음의 내용에 관한 구분이고 후자는 믿음의 효과에 관한 구분이다. 야고보서가 아주 예를 잘 들었듯이, 사단도 하나님이 한 분인 줄 알고 떨지만 (참된 믿음을 가졌지만), 떨기만 하고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한다 (헛된 믿음). 이 참 믿음을 사랑이 역사하는 믿음 혹은 행위를 일으키는 믿음이라고 한다. 
2. 2. 선행 역시 참된 행위와 헛된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행위들이 있다. 하지만, 그 행위들이 모두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가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할까? 산상수훈의 예를 들어 보자. "주여, 주여" 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주 큰 행위를 한 사람들이다. 그것도 주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파하였고 귀신도 좇아내고 권능을 행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판단하셨다. 
또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모든 선행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 졌다. 바리새인들의 의가 잘못된 것은 그 의가 근본적으로 자기 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심지어 믿음 역시 자기 의를 내세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선한 행위라도 그 행위가 인간에서 나오는 한 자기 의가 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이점에서 로마서 14장 23절 말씀은 분명하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즉, 우리의 행위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한 원인, 즉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즉, 믿음은 뿌리고 행위는 열매다. 
2. 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은 행위 그 자체를 강조한 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들어 "행위"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모든 선행 행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행위가 중요하다. 이 행위는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위가 없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인가 그렇지 않는가는 열매를 통해서만 판단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4. 구원. 행위와 관련된 논쟁을 보면, 구원에 대한 개념도 매우 혼란한 것을 볼 수 있다. 구원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정의한다면, 행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말하면 이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라 거짓된 행위, 즉 자기 의가 된다. 하지만, 구원을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행위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문제는 어떻게 중요한가이다. 제대로 된 신자라면,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또한 구원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이다. 

요약하면: 구원과 관련하여 행위는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행위가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어떤 원인이 아니라 들어가게 하는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행위는 기차표와 같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승무원은 돈을 지불한 여부를 기차표를 통해서 확인한다. 돈을 낸 것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기차표다. 손님이 기차를 탈 수 있는 것은 돈을 냈기 때문이고, 돈을 냈다는 사실은 기차표를 통해서 확인된다. 

결론: 참된 믿음은 행위를 일으키는 믿음이다. 참된 선행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행위다. 참된 선행은 참된 믿음에 대한 판단 근거이다. 따라서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없다고 말할 때,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존재론과 인식론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참 믿음은 우리의 존재를 바꾼다(우리를 구원한다). 참된 선행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바뀐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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