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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믿음의 정의

믿음은 동기화 능력입니다. 포베스는 목사님은 믿음을 그와 같이 설명을 했죠. 근데 사실 동기화 능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입니다. 최근 뇌과학자들은 거울신경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동기화를 모티프로 이뤄져 있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다른 지점이 있다면 하나님은 초자연적 존재로서 인지되거나 지각될 수 없다는 부패한 인간의 조건 때문에 그런 것이죠. 초자연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기관을 주신 셈입니다. 이 습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기화를 이루는 것이죠.

우스갯 소리를 하나 하죠. 사실 제 경험인데요. 중3 때, 제 짝은 부반장, 내 왼편 짝은 반장이었습니다(그 반장이 정도전의 작가 김탁환이라는 ㅋㅋ). 그리고 앞의 두 명은 무슨 부장 그렇게 사방이 학급 임원이었죠.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조례시간에 학급 임원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다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니까 나도 얼떨결에 일어나 나갔죠. ㅋㅋ 그 다음 친구들이 넌 왜 나가냐? 순간 당황하지 않고 화장실 간다고 둘러댔고 교실은 웃음 바다가 됐죠.

일종의 맹모삼천지교 효과인 셈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도 이런 효과들이 많죠. 큰 교회가 하나님의 부흥인 줄 아는 사람, 목사의 설교가 자기 신앙인 줄 아는 사람, 자기가 다니는 회사나 차나, 든 가방이 자기 정체성인 줄 아는 사람, 국뽕에 취해, 손흥민이나 김연아를 자기 자부심으로 가지고 오는 사람, 사실 매우 흔한 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의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것에 동기화가 일어나면 위에서 말한 일들이 신앙에서도 일어납니다. 이 동기화의 힘들은 모두 상승의 힘입니다. 세상 누구도 실패나 좌절을 동기화하지 않습니다. 에컨대, 코딱지만한 지하교회를 동기화하면서 자기 자부심으로 가지고 오는 경우는 없다는 말입니다. 10명 남짓의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 회사명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는 **회사 다녀 라고 말하는 경우가 없죠. 삼* 현*은 거기 다닌다고 말해도 말이죠.

바벨에서 탑을 쌓고 흩어지를 면했던 인간들의 종교성이며 상승의 힘이 작용하는 교만의 일종이죠. 진정한 의미의 믿음이 지닌 동기화의 힘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 편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동기화의 방식이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도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작용하지만 그의 부활과 승귀는 신약 전체가 일관되게 성부께서 그를 일으키셨다고 진술합니다. 상승의 힘은 그리스도에게서조차 동기화의 힘이 아닌 셈이죠.

그래서 참된 믿음은 항상 십자가와 동기화를 이루고 상승의 힘은 성부로부터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걸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세상의 동기화의 힘은 항상 상승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것이 믿음과 인간의 종교성에 담긴 동기화의 힘이 지닌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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