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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하나님께서는 죄도 선하게 쓰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죄도 신앙 성장의 자양분입니다. 뭐로 비유해야 할까요 류머티스 환자에게 벌침을 놓아 치료하는 것처럼 죄가 죄의 치료제가 되는 기이함입니다. 성경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더 심한 죄의 도성인 바벨론으로 이주시키며 하나님은 바벨론을 풀무에 비유하셨습니다. 출애굽 이후 그렇게 벗어지지 않던 우상숭배가 치유되고 비로소 형식적이나마 이스라엘에 유일신 신앙이 정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함에는 버릴 것이 없으며 가룟 유다의 난 것은 제게는 저주일지라도 온 세상을 구하는 일에 그의 탐욕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 밖의 외부 요인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읺고 우리 내부의 가시로부터도 일어납니다. 바울이 가시로 온전하였던 것처럼 죄의 풀무질을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럼 우리가 죄가운데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음을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무엇에 비유할까요? 죄로 무력해지고 비참해지는 경험은 우리에게 비참만 가져다주지 않고 그리스도를 더 붙들고자함과 겸손을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무력함의 반복이 마치 아이가 수없이 넘어짐으로 걷기를 배움과 같다고 할까요

이 지점이 본질적 차이이겠습니다. 죄를 기회로 삼아 거기 거주하는 것과 죄가 우리 영혼의 풀무가 되는 것이 다른 점 말입니다.

그래서 거듭되는 죄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깨닫게 되느냐가 문제며 참 신자는 이 미묘한 변화를 따라 성장합니다. 물론 자신도 모르는 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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