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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신앙과 과학

미국에는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신자 그룹이 있다. 그들은 TV에 나오는 둥근 지구를 마귀의 속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믿음의 출발점은 성경이다. 하늘의 휘장처럼 텐트처럼 치셨다는 시편이나 구약이 그 근거다. 갈릴레오가 20세기 말미에 로마 가톨릭으로 복권 된 것을 생각해보면, 낯선 일도 아니지 싶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은 그의 저작에서 천동설을 옹호하면서 지동설을 논박한다. 미국의 어느 섹터 기독교 공동체의 영아 사망률은 거의 아프리카 수준인데 이유는 하나님께서 치료해줄 것을 믿어 병원에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이 비슷한 그룹이 있다는 것을 시사 프로에서 본 것도 같다.

이런 사건들은 믿음과 이성 혹은 과학과 성경 사이의 균형을 잃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우리는 인디언처럼 사진이 우리들의 영혼을 앗아갈 것이라는 공포에 쌓인 미신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우리 믿음의 지나친 확장을 이런 화를 부른다. 앞선 예들이 그 증거들이다. 최근에도 아이를 살려주실 것이라 믿고 방에 오랜 기간 방치해서 백골화된 사건이 뉴스에 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부류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 흔해 빠진 보편적인 신앙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럴 수 있다. 백골 사건의 피의자는 독일에서 신학까지 한 박사학위자였다. 물론 거기엔 단지 이런 믿음만 작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의도도 작용했을 것이다.

인간의 믿음이나 이성은 이런 사소한 욕망에 의해서도 언제든지 왜곡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학이 혁명적으로 발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 생각에는 성경이 확증하지 않는 것이라면 침묵하거나 기다리는 게 겸허한 태도다. 거기에 넘치면 브라켈 같은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런 일은 후대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시대에 조롱을 받는 일을 부른다. 약을 일반은총으로 주셨고 그걸 사용한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들이 그들의 믿음의 기초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과학자 이즈 뭔들이다. 그들은 늘 아님 말고며 실제로 시절이 지나면서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내 어린 시절 공룡의 상상도는 고질라 같이 직립하는 상상도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쥐라기 공원이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닭처럼 생겼다. 과거 파충류라는 이론이 대세였으나 내몽고에서 깃털 달린 공룡이 발견된 후 새의 조상일 것이라는 게 대유행을 하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원래 과학이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다가 반증의 증거가 나오면 가설을 물리는 것이 기본 속성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이런 과정들에 성경과 신학이 일일이 반응해야 할 이유가 없다. 과학은 과학이고 신학은 신학이다. 그런데 신학으로 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과학자들에게 비웃음을 살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딱히 교회의 신앙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우주 배경 복사와 같은 관측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관측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물론 이것을 해석에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우주가 팽창하는 것이 관측 되었음에도 그런 것을 이론이나 사기로 간주한다. 어디서 보던 장면 아닌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과 다르지 않다. 관찰의 해석은 다른 문제지만 관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신적이다. 이성에 반하는 이런 행동이 복음의 변호란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참 신앙은 그런 게 아니다. 모르면 겸손하면 좋고 굳이 거기에 발언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성이 신앙 위에 서면 안 되지만 이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신앙도 병증의 일종이다. 박윤선 박사는 이를 잘 표현했다. "계시의존사색"이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계시에 근거해서 이성적 추정에 대해서 말한다. 진리를 변호함은 겸손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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