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직신학/신론

삼위일체의 전유(Appropriation) 개념

 

삼위일체의 전유(Appropriation) 개념 


1.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스콜라 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삼위일체의 세 위격 간의 유일의 진정한 차이는 상호간의 관계의 차이밖에는 없다고 논증하였다. 성부의 부성은 성자와 성령으로부터 성부를 구분해 주고, 성자의 자성은 성부와 성령으로부터 성자를 구분해 주며, 성령의 영성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을 구분해 준다. 세 인격이 공통의 본질(essence)을 소유하므로 하나님의 모든 속성(attributes)고 행동들(전지, 편재, 창조, 구속, 성화)도 이 세 분이 공유하고 계신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세 분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성격이나 성질을 한 위격에 전유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 한 위격이 세 분에 공통된 어떤 성질을 전유하는 것이다. 전유는 세 가지 방법으로 분류 될 수 있다: (1) 하나님의 행동과는 별개의 내적 본성과 관계된 것들, (2)하나님의 행동과 관계된 것들, (3) 그 행동의 결과와 관련된 것들. 그러나 전통적으로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하나님의 모든 행동을 완전히 공유하므로(opera trinitatis ad extra indivisa sunt), 전유론은 결국 성령의 발출(processions) 교리와 같이 하나님의 본성 내에서의 관계들로 축소되고 만다.

 

2. 어떤 이름들과 행동들과 특성들을 삼위일체의 세 위격(Person)에게 각각 구분하여 돌리는 것이 '전유'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신의 세 위격은 모든 점에서 동등하며, 이러한 특성들을 세 위격에게 구분하여 적용시키는 것은 단지 그러한 특성들을 이해하는 것을 도우려는 의도에서다. 예를 들면 전능(omnip-otence)은 특히 아버지의 특성인 것으로 생각되고, 지혜는 아들의 특성인 것으로 생각되며, 사랑은 성령의 특성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전유' 개념은 초기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대한 가르침에 나타나 있다. 전유 개념은 성경에서 특히 바울서신들에서 나타나며, 가장 초기의 신조와 가장 초기의 예배식문들에 나타 나 있다. 이 전유 개념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모든 교부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으며, 중세기의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해서 복잡한 체계로 발전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피터 아벨라르(Peter Abelard, 1079-1142)는 귀속된 특성들이 단지 한 위격에만 속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견해는 1140년 센스 회의에서 정죄를 받았다. 전유 개념은 어떤 신적 위격에 신적 본질이 실제로 수반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려는 의도에서 되어진 것은 아니라는 풍부한 증거들이 있다.

 

전유는 순전히 무작위적 행위는 아니며 또한 완전히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심지어 신의 계시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간이 피조물로부터 형성한 인간의 개념들과 관념들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다른 위격들에 대한 지식도 피조물과 이러한 위격들의 유사성(그러나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인간의 질서에 속한 어던 그러한 특성들을 앎으로써 개체적인 신의 인격성(the individual divine personality)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이 비록 불완전하지만 각개의 하나님의 위격들에대한 어떤 특별한 인식을 가져다 준다.

 

무한한 능력과 특히 창조는 성부에게 전유시키고, 진리와 지혜와 우주의 질서는 성자에게 전유시키고, 선과 사랑과 인간의 성화는 성령에게 전유시키는 것이 통례이다. 세 하나님의 위격 전부가 동등하게 세상을 창조하였고 섭리하였으며, 이 세 위격 전부가 동등하게 진리와 지혜와 선과 사랑인 반면에, 이 전유 개념은 그들의 개별적인 성격에 대한 가능한 가장 좋은 통찰력을 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인성은 전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제2 위격은 실제로 인성을 소유하였다. 그러나 성부와 성령은 이 인성을 소유하지 않았다. 또한 몇몇 신학자들에 의하면 성령과 인간의 영혼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성령에게 해당될 것이나 성령에게 전유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