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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신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와 본질 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존재와 본질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칼빈의 섭리론 칼빈의 섭리론 이양호 교수제10강 섭리론 (1)에른스트 트뢸취는 그의 저서 「기독교회와 집단들의 사회적 교훈」에서 칼빈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강조한 신학자로 해석하였다. “칼빈은…하나님의 특성을 절대적 주권적 의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루터주의와는 달리 하나님의 개념의 중심에 사랑의 관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엄의 관념이 있다.” “이 하나님 개념의 또 다른 결과는 칭의의 관념에 부여하는 실제적이고 윤리적인 의도이다.” “칭의는 감사 감격하는 행복 속의 정숙주의적 안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의 방식이며 행동을 위한 박차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선택에서 사죄의 확증을 주시는 것은 죄책으로부터 벗어난 영혼이 하나님의 의지의 도구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칭의로 말미암.. 더보기
이양호 교수의 섭리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공로와 은총 칼빈은 하나님의 은총을 희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궤변가 무리들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그 무리들은 그리스도 예수가 고작 “도구나 시중드는 사람”일 뿐이고 “생명의 저자 혹은 인도자와 주인”이 되신다는 베드로의 증언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칼빈도 만약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단순하게 그리고 스스로” 서신 분이라고 한다면 타인에게 유익을 끼친다는 ‘공로’의 개념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을 것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는 개인적인 이유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으며 “예정과 은총의 가장 밝은 빛”으로 오셨으며 중보자의 자격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취득하신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정하여진 하나님의 자비로은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더보기
하나님의 영원성의 두 가지 개념_무시간성 vs 영구성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 토마스 등 대부분 고전적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존재를 무시간성(timelessness)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시작이나 끝이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무시간성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시간 바깥에 존재하신다는 뜻이다. 무시간적인 하나님에게 모든 시간은 하나의 영원한 현재로 존재한다. 무시간성의 교리는 플라톤 철학에 기원하며, 신플라톤주의에서 성숙,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에 의해서 기독교에 들어왔다. 중세에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컴의 도전을 받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양자 모두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에 무시간성 교리의 가장 큰 옹호자는 폴 헬름(Paul Helm)이다. 그는 하나님의 무공간성이 전통적인 유신론의 요구사항이며, 하나님.. 더보기
루이스의 삼위일체 설명 이것이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중대한 차이점일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정적靜的인 존재가 아니라-심지어 한 인격체로만 그치는 분이 아니라- 역동하며 약동하는 활동, 생명, 일종의 드라마에 가까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치 못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는 일종의 춤에 가까운 분입니다. 성부,성자,성령의 연합은 그 연합 자체를 또 하나의 인격체라고 해도 될 만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270. 사족_페리코레시스는 실제로 윤무 곧 춤이란 의미다. 더보기
삼위일체 당신은 삼위일체를 우러러보고 창조계에서 그분의 자취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저 삼위일체 안에 만물의 궁극 원천과 더할 나위없이 완전한 아름다움과 지극히 행복한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지존한 삼위일체에서는 셋이 함께하는 그만큼 하나이고, 둘이 하나보다 더 많은 것도 아니며, 자체로는 무한한다 고로 삼위일체에서는 각자가 각자 안에 있고 모두가 각자 안에 있으며 각자가 모두안에 있고 모두가 모두 안에 있으며 모두가 하나다. 누구든지 이런 내용을 일부분이라도 보든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보든"(고전 13:12)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그분을 하나님으로 찬미하며 감사를 드리라. 못보는 사람이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보도록 노력할 것이지 맹목적으로 비방할 것이 아니다. 하나.. 더보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신적작정 번역원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신적작정 번역원리 신원균 목사 3. 3장6항의 ‘선택’에 대한 표현 3장6항의 선택에 대한 표현은 타락 전 선택설이나 타락 후 선택설 중 어느 쪽으로도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두 표현이 모두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 타락 전 선택설 입장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합동측, 김영규 교수이며, 타락 후 선택설입장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고신측, 조석만, 김헌수 교수다. 하지만 H. 바빙크나, L. 벌콥 등 장로교회의 대부분 신학자들은 두 입장 중 어느 쪽으로도 명확히 나타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르트 신조는 타락 후 선택설을 명확히 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선택설에 대한 두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서 중립적으로 표현한 것으.. 더보기
삼위일체론의 형성과 의미_목회와 신학(2000,7,27) 삼위일체론의 형성과 의미_목회와 신학(2000,7,27)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교수) 삼위일체론은 신학 교과서에만 있는 지식인가? 비록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사실상 ‘단일신론’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매주일마다 성부, 성자, 성령께 송영을 돌려드리며, 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예배를 마치지 않는가. 그렇지만 삼위일체론이 거짓으로 판명되어진다 하여도 기독교 경건 서적의 대부분 바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삼위일체론이 창조론, 기독론, 은혜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경건과는 거의 분리되어 있다. 성령 안에서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께 기도를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드리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차례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고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