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목회칼럼

참된 개혁과 핵심감정

전 제가 틀렸다면 언제든지 고칠 의향이 있습니다. 제가 표준이 아니라 성경이 표준이기 때문이죠. 가감없이 지적질 바랍니다.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말 들으면 좀 아프기는 합니다. 애쓴 것에 대해서 별로 평가 받지 못하는 느낌도 들고, 속도 상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기 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인정받는 일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야 하며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대속의 의로부터만"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저의 틀림과 미숙함의 지적은 내 죄인 됨을 드러내어주니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님의 은혜의 복음은 죄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은혜로의 부름을 함께 주신다는 점을 저를 포함한 지적하시는 모든 분들이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더군요. 동의되는 많은 부분은 생략한 채, 마음의 걸리는 부분들만 표현하는 게 부패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의 특징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대체로 상대의 부패를 드러낼 뿐 그를 고치는 데도 자신을 새롭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습니다.

아이가 자랄 때, 격려보다 틀릴 때마다 지적하는 부모가 없듯이, 좀 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개혁주의를 하신다는 분들의 경직된 바름에 대한 태도를 볼 때, 정말 질립니다. 어린 시절 항생제가 충분치 않던 시절 종기가 생기면 고약을 발랐습니다. 저도 큰 종처를 고약으로 삯혀 짜낸 경험이 있는데요. 고약의 목적은 충분히 삯혀 뿌리까지 빠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삯지 않은 종기를 건드리면 더 성을 내고 단단해질 뿐 전혀 빠지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 상처와 아픔으로 고통 받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사람은 어리석어서 이런 경험 후에도 그것을 잊기도 합니다. 상담이든 치유이든 결국 이런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문제를 뿌리 채 뽑지 않으시고 오래 지켜 보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깨닫지 않으면 사람은 고치지 않는 편입니다. 원래 자기 성질로 돌아가죠. 예전에 어느 목사님의 어린 자녀가 계속 어른들의 커피를 탐을 낸 적이 있습니다. 부모는 계속 말리고요. 그때 제가 그냥 하게 두라고 했죠. 물론 부모의 보호 아래서요. 아이는 커피를 마시려다가 쓰고 뜨거운 것을 경험하고 곧 바로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 졌습니다. 때론 해 봐야 아는 것들이 있습니다. 개혁신학과 신앙은 이런 여유를 좀 찾았으면 합니다. 사람을 알 지 못하고 하나님을 안다는 생각은 오만에 불과합니다. 충분히 경험하도록 기다리지 못하는 데 자신의 깊은 허물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 부패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신앙은 허울뿐인 신앙입니다.

사람의 회복은 그 둘이 융합하는 지평 곧 십자가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핵심감정이란 이 두 지평의 융합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핵심감정에는 건강한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꽃씨는 자기가 뿌리 내린 곳을 탓하지 않으며 그곳에서 생존하면서 자신 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듯이, 주께서 섭리하신 각종 환경들은 우리 약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명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오랜 거절을 경험한 사람은 거절로 인해 힘들고 숨고 위축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거절하지 않고 최대한 배려하려 하려 듭니다. 오랜 세월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불안을 누군가를 도움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결국 자신의 욕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마치 한쪽 팔이 없으면 다른 팔이 더 발달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이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성장과 성화는 이 삶의 자리를 딛고서 성 삼위일체께서 우리를 여기에 처하게 한 이유를 깨닫고 그 힘을 십자가 아래서 융합해내고 참되게 자신과 공동체를 돕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핵심감정 공부의 진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블로그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WCF의 모세언약의 위치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0) 2019.03.04
안식년제도  (0) 2019.03.02
핵심감정 성화 서문  (0) 2019.02.26
생식법에 의한 원죄 중 오염의 전달  (0) 2019.02.25
언약의 통일성  (0) 2019.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