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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신명기 3:12-29

신명기 3:12-29을 보면, 민수기의 진술과 달리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불순종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째 가나안에 모세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모세 개인의 경건이나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다. 둘째, 그럼에도 들어가지 못함은 이것을 통해서 예표하시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민수기에 의하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건을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반석을 치는 것 때문이다. 백성은 그를 격노케 했고 "내가 너희를 위해 물을 내랴"며 명하라는 주님의 요구에 반석을 치는 결정을 한다.

민수기 맥락에서 보면 모세가 무엇인가를 잘못한 것처럼 읽히지만 신명기는 1-3장에서 모세는 분명히 이것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패역함이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고전 10:4에 의하면 이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 구절을 직역하면 이 반석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행로에 이스라엘을 따라 다녔다고 증언한다.

성경 상에서 생수는 통상 말씀을 은유한다. 시편 1편이 그렇고 계시록 22장이 그렇다. 창세기의 에덴이란 성전 역시 그 생명나무가 있는 동산 중앙으로부터 강이 발원하여 흐른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베푼 인물이며 엘리야는 로마서에 의하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고소한 인물이다. 우리 주님께서 변화산에서 이 구약의 인물과 대화하셨다는 것은 이 두 인물이 가리키는 바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율법의 해석인 예언을 대표한다. 계시록 11:6에 나오는 두 선지자의 권능은 모세와 엘리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주님께서도 너희를 고소할 자가 모세라고 말한다(요 5:45).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반석을 치는 것은 곧 율법의 고소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일 뿐이며 율법 자체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계시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사건은 모세 개인의 불순종이 빚은 가나안 입성 불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치밀한 준비 가운데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율법 외에 한 의가 있으니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미여 이 의에는 차별이 없으시다.

구약 역시 율법으로 구원받음을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롬 3:20-22, 개정)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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