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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신약주석

신약 주석에 있어서의 문법에 관련된 오류들

신약 주석에 있어서의 문법에 관련된 오류들

1. 고전 헬라어와 신약 주석
신약을 주석하는데 고전헬라어 문법 지식을 사용하는 것은 마치 현대 영어를 해석하는데 중세 영어 문법을 적용하는 것처럼 어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약은 신약 헬라어로 해석되어야 한다. 신약 헬라어는 고전헬라어가 세계화 단순화된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구약의 헬라어역인 70인역의 헬라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유대적 헬라어로 기록된 측면이 강하다. 그러므로,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약성서를 관찰하여 얻어진 신약헬라어 지식을 사용하여야 한다 (카슨, 84-85 참조).
2. 헬라어 시제와 신약 주석
헬라어 시제는 시간이 아니라 동작의 양상(verbal aspect)을 가리킨다. 부정과거(aorist)는 완료적 양상(perfective aspect)을, 미완료과거(imperfect)와 현재(present)는 미완료적 양상(imperfective aspect)을 완료 시제는 상태적 양상(stative aspect)을 가리킨다 (Porter, 23). 이것을 알기 쉽게 비유하면, 부정과거형은 흑백 슬라이드요, 미완료과거형은 흑백 영화이며, 현재형은 칼라 영화이고, 완료형은 칼라 슬라이드(또는 칼라 영화의 정지 장면)와 같은 것이다.
시제 형태는 여러 가지 시간을 지시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현재시제형은 종종 과거를 가리킨다. 이러한 용법을 역사적 현재(the historical present)라고 한다. 현재시제형은 또한, 미래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를 미래적 현재(the futuristic present)라 한다. 또한 현재시제형은 모든 시간에 통하는 잠언적 현재(the gnomic present)로 쓰이기도 한다(Porter, 29-32). 현재시제형이 어떤 용법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로지 문맥(context)이다. 이러한 사태는 부정과거나 미완료과거 시제 등에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문법적 시제(tense)는 시간을 가리키지 않고 단지 형태에 대한 이름이므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형태에 집착하여 주석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3. 부정과거 시제와 신약 주석
어설픈 헬라어 문법지식이 주석에 오용되고 있는 대표적 예는 부정과거 시제에 대한 오해이다. 전통적 기초 헬라어 문법책들은 부정과거형태를 과거의 단회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하였고,
이에 토대한 엉터리 주해가 난무하였다.
그러나, 부정과거(aorist)는 글자 그대로 어떤 사태를 불확정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카슨, 87). 이것은 저자가 글을 쓸 때, 별다른 강조가 없을 때 자동으로 선택하게 되는 시제형이다 (Porter, 22). 더구나, 부정과거는 단회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반복된 사건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빌 2:12에서 "네가 항상 복종한 것처럼"에서 "복종한"은 부정과거형(hute:kousate)으로 되어 있지만, 문맥상 반복된 복종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카슨, 88) 따라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부정과거 시제 형태만으로 단회적 사건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카슨, 89).
부정과거 시제는 어떤 사건을 개념화하여 붙잡는 시제 형태일 뿐, 그 사건 자체가 단회적이라고 서술하는 문법형태가 아니다 (카슨, 94 참조).
4. 1인칭 부정과거 가정법
1인칭 부정과거 가정법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된다 (카슨 95-98 참조). 이것은 동일한 형태(1인칭 부정과거 가정법)이 문맥에 따라 어떻게 다양하게 사용되는 지를 잘 보여 주며, 문맥을 고려해야 하는 필요성을 보여 준다.
(1) 심사숙고의 가정법(deliberative subjunctive) - 눅가 20:12의 '어찌할꼬'가 이에 해당한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심사숙고를 하며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2) 유사 심사숙고의 가정법 (pseudodeliberative subjunctive) -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문맥에서 사용되므로, 심사숙고의 가정법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마가 12:14의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합니까 불가합니까?" (dwmen e: me: dwmen)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문맥상 직접질문이므로 직접질문으로서의 유사 심사숙고의 가정법(direct- question deliberative subjunctive)이라 부를 수 있다. 마가 6:24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ti aite:swmai)도 이러한 가정법의 용례 중에 하나이다.
(3) 수사학적인 유사 심사숙고의 가정법 (rhetorical pseudodeliberative subjunctive) - 타인에게 질문하지만,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 수사학적인 가정법이다. 롬 6:15의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 죄를 지으리요"라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그럴 수 없느니라"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수사학적으로 제기한 질문이다.

5. 중간태
중간태를 재귀적인(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또는 주어가 스스로 행동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이다(카슨, 98).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많은 책에서 발견된다. 카슨은 다음과 같이 적절한 예를 들고 있다(98-99).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에서 방언에 대해 쓰인 중간태 동사 pousontai(그칠 것이다)는 "방언은 그 자체에 내재된 특성 때문에 스스로 그칠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 방언의 은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중간태에 부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누가 8:24에는 예수께서 명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는데, 중간태 epausanto(잔잔해졌다)는 바람과 파도의 내재된 특성에 의해 스스로 잔잔해 졌다고 해석될 수 없다(카슨, 100). 행 21:32에서도 폭도들이 바울 치기를 '그쳤다'(epausanto)는 어떤 내적 압박이 아니라 군사들을 보고서 그친 것이다(카슨, 100).

6. 조건문
(1) 제 1 조건문 (first class conditional)
ei + 직설법(부정된 경우 ou 사용)을 제 1 조건문이라 하는데(Porter, 256), 이것은 흔히 직설법이 쓰인 것 때문에 실재가 전제된다고 보아서 "-이라면"(if) 대신 "-이므로"(since)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로 전제되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12:27의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너희 아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겠느냐"에서 전제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께서 사실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Porter, 257; 카슨, 101).
(2) 제 3 조건문 (third class conditional)
ean + 가정법을 제 3 조건문이라 한다(Porter, 261). 이러한 조건문이 성취의 기대를 의심스럽게 하거나 그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이다 (카슨, 102). 제 3 조건문은 단지 가설적인 고려를 담고 있다(Porter, 262).

7. 관사
헬라어 관사의 유무에 따라 특정 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다(카슨, 105). 예를 들어, ho nomos는 모세법을 가리키고, nomos는 율법의 원리를 가리킨다고 하는 R.C.H. Renski의 주석은 신뢰할 수 없다(카슨, 105).
몇몇 문법책에 소개된 그랜빌 샤프의 법칙(두 명사가 kai로 연결되고 둘다 관사가 있으며, 그것들은 별개의 것들을 지시한다. 만약 처음에만 관사가 있고 두번째의 것에는 없다면, 두번째의 것은 처음 것과 동일한 것이다)을 주석에 적용할 때 오류가 생길 수 있다(카슨, 106). 예를 들자면, 마태 16:1에서 하나의 관사 뒤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나오는데, 본문이 샤프의 법칙을 따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가리키기 위해 한 개의 관사를 사용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이다(카슨, 106-7).
콜웰의 법칙을 적용하여, 관사없이 술어적으로 쓰이는 명사가 연계동사 앞에 오면 형용사적으로 쓰였고(예 God), 연계동사 뒤에 오면 명사적으로 쓰인 것(예 a god)이라 할 수 있다(카슨, 108-9 참조).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요 1:1의 theos e:n ho logos는 "그 말씀은 신적이셨다"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콜웰의 법칙은 일반적 원리로 사용될 수 없음이 카슨의 제자 E. Dewey의 통계적 조사에 의해 드러났다(카슨, 110). 결국, 경우마다 문맥에 따라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결정할 수 밖에 없다.

8. 결론
전통 신약 헬라어 문법은 헬라어 신약본문을 관찰하여 귀납한 결론이지, 태초부터 있는 법칙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약 헬라어 문법은 신약본문에 대한 새로운 관찰에 토대하여 계속 개선되어야 한다. 오늘날 Grammatical Concordance(GRAMCORD)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신약 헬라어 문법의 개선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S.E. Porter가 신약 헬라어 연구에 혁명적 전환을 20세기 후반에 일으킨 이후에, 21세기에는 신약 헬라어 연구가 꽃을 피우고, 이것이 결국 신약 주석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참고 문헌
D.A. 카슨, 성경해석의 오류, 박대영 역,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S.E. Porter, Idoms of the Greek New Testament, 2nd e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