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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실존과 본질(2)

실존은 주로 exist로부터 번역된 단어다. 이 개념은 "밖에 서 있다"는 어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엇의 밖이라는 말일까? 그 전제는 바로 무한자 곧 신의 밖에 서 있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신의 밖에 서 있고 그래서 떨어져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실존이란 개념을 사용했다. 그에 비해서 본질은 실존주의자를 이전의 헤겔 그너머의 스콜라 신학과 그 근원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까지 소급되는 개념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실체를 ousia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삼위일체론에서 동일 본질을 설명할 때 쓰는 ousios와 같은 의미다. 하나는 그리스어 하나는 라틴어라는 점만 다르다. 물론 『형이상학』에서 실체의 후보는 본질, 보편자, 유, 첫째 기체로 4가지(Metaphysica, 1028b 33ff)를 언급하며 여기서 본질은 einai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등치를 이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신학에서는 essence과 substance, 곧 본질과 실체라는 의미로 같은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본질 개념이 자연과 그 존재로 확장될 때, 이것을 범주화 할 필요가 있었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서는 실체(substance)를 개별자(individual)들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예컨대, 우리집 화분에 심긴 고무나무는 그 개별자 안에 "나무"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주를 물, 불, 흙, 바람, 그리고 에테르(신)로 범주화해서 설명했다. 자연과 초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해를 담은 것으로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중세 스콜라 신학과 맞닦뜨리면서 자연과 초월의 연속성을 그린 아퀴나스의 신학으로 전용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는 실체가 최하위 형상(infimae species; substratum)에 있는 것으로 보았고 이 말은 질료나 그것으로 구성된 개별자 내에 위치한다는 의미라기보다 내재해 있으나 뒤섞이지 않은 채 최하위 형상으로 내재해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이것은 현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가들은 어떤 것이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다. 어쨌든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전용한 아퀴나스와 중세 스콜라 신학에서 본질이 개별자 안에 내재해 있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이나 자연과 함께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12세기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가 주석을 붙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Περὶ οὐρανοῦ)』의 라틴어 역판에서 최초로 사용된 용어 중에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은 이런 사상적 기저를 잘 보여준다.  아베로에스의 능산적 자연은 만물 창조주로서의 신을 의미하고 소산적 자연은 피조물의 세계를 가리키며 이렇게 창조주와 자연, 초월과 자연은 실질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그렇게 하나로 엮어 있는 세계관을 하고 있다. 근대의 스피노자와 같은 범신론적 개념은 아베로에스의 설명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본질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있다는 근본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게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이 글의 앞머리에 설명해둔 실존개념이다. 이 실존은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다. 이것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과학의 발전이었다. 중력을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인들은 우주를 "위에서 아래로"의 구조로 이해했다. 우주의 중심은 자신들이 딛고 선 땅이고 이 땅을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고 믿었다. 히브리인들은 땅 아래, 땅, 하늘의 삼중구조로 이해했고 고대 그리스 신화들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의하면 땅의 여신 가이아가 낳은 맏아들 하늘의 신, 우라노스(Οὐρανός Ouranos)며, 또 다른 하늘의 신, 아이테르(Αἰθήρ)-이 아이테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테르-와 가이아 사이에서 난 음부의 신, 타르타로스(Τάρταρος, Tartarus)를 통해서 땅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 밑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인들 역시 하늘을 돔처럼 생각했는데, 로마의 판테온 신전은 돔 형태로 천정 중앙부에 9미터 짜리 구멍, 곧 하늘의 눈, 오쿨루스(oculus)가 있다. 중세 건축물들이 돔 양식으로 건축물을 지은 것은 이런 이해와 무관치 않으며 초기 돔 양식에 중심점에 하늘을 향해서 구멍을 내어 둔 것은 기술적 한계도 있지만 하늘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도 은허에서 발굴되는 갑골문자, 곧 거북의 배딱지로 점을 치는 것 역시 하늘을 거북 등처럼 돔의 형식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고대적 세계관과 성경의 세계관을 참고하라(http://bitly.kr/b2aVr9o0).

 

 

이처럼 초월과 자연의 연계적인 세계관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은 과학의 발전의 결과였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타르고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데카르트와 뉴톤을 거치면서 이 고대적 세계관이 붕괴하게 된다. 그것이 균열을 가져다준 것은 바로 중력에 대한 이해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본래 구형태의 팔 4개 다리 4개 앞과 뒤가 모두 얼굴이 있는 존재였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이 둘을 갈라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대인들에게 구는 완벽한 형태였고 천체가 모두 구형태를 하는 것은 완벽한 신이 이것을 완벽하게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우주의 중심은 땅이고 땅을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고 생각하던 것이 중력의 발견을 통해서 다양한 중심과 중력과 중력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설명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였다. 중력을 계산하는 수학적 방식이 바로 미적분학인데 학계에 미적분학을 가장 먼저 내놓은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였다. 물론 더 완벽한 수학적 형태를 갖춘 미적분학의 발표는 데카르트보다 먼저 이런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뉴톤에 의해서였다. "위에서 아래로"의 우주 구조가 중력에 의해서 다양한 별들의 다양한 중력의 상호관계로 규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1596-1650)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실체 개념에 반기를 들게 된 것이다. 그는 두 개의 실체만을 인정했는데, 하나는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고, 다른 하나는 연장된 것(res extensa)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개념으로 환원하자면, 생각하는 것은 형상에 연장되는 것은 질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에는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이 있는데, 무한히 생각하는 것은 신이고, 유한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라고 규정했다. 연장된 것은 모든 사물을 다 포함했는데, 특히 인간의 몸이 그러하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인간이란 생각하는 것(정신)과 연장된 것(몸)이라는 두 실체의 결합이었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이런 이해는 결국 계시(초월)과 이성(자연)의 분리를 가져왔다. 마치 사유와 연장이 이원론적으로 파악되는 것처럼 이 둘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발생한 간극의 개별자로서 인간이 바로 실존개념이다. 근대의 실존 개념은 초월자인 하나님 밖에 서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은 스콜라 정통주의를 방법론으로 했다. 스콜라정통주의란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으로 신학을 재구성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데카르트의 방식은 신학에서도 변곡점을 불러왔다. 코케이우스는 대표적인 데카르트주의를 채택한 신학자였다.  그의 새로운 언약론은 전통신학에서 벗어난 데카르트적인 방법론이었다[바빙크, "개혁주의 교의학1" 김영규 역,(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116-117]. 그는 성경신학을 전통신학과 대조, 언약을 작정과 대조, 역사를 이념과 대조, 인간론적인 방법을 신학적 방법과 대조시키므로 언약의 실체(substantia foederis)를 언약의 경륜(oeconomia)이 대체하게 되었다. 내용은 여전히 정통 신학이었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아리스토렐레스주의를 완전히 이탈했다.  푸치우스파와 코케이우스파 사이의 논쟁에서 푸치우스의 침묵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방법론은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바빙크는 푸치우스파인 말크의 '기독교 신앙의 정수'와 브라켈의 '합리적 신학'이 마지막 교의학들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신학은 세계 이해와 맞물려 있다. 어떤 점에서 이런 변곡점은 불가피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본질에서 함께한다는 정통주의 신학의 패러다임이 작정과 경륜으로 나뉘면서 불가피하게 인간은 하나님과 연결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밖에서 실존으로 서 있는 존재로서 자기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하나님과 관계맺는 방식에서 좋은 변화는 아니다. 이런 난점은 계시가 지나치게 철학에 기댈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과 일반 계시로서 철학은 신학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재해석의 과정에서 인간이 지닌 인식의 한계로 인해서 계시적 의미를 드러내기보다 인간 이성을 계시 안으로 투영하는 결과를 빚어왔다. 현대의 신학 발전사가 다 이런 역사의 한 형태이다. 

 

현대적 우주 이해를 반영하면서도 하나님의 작정과 그 실현으로서 창조와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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