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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영화 <나는 전설이다>로 신학하기

영화 <나는 전설이다>로 신학하기

 

노승수 목사

 

2007년 일산에 있을 때, 우연히 극장에 들렀다. 프렌시스 로렌스 감독,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2007)>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무 사전 지식이 없이 영화를 보던 나는 내가 어린 시절 <토요 명화>에서 보던 보리스 사갈 감독,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오메가 맨 The Omega Man(1971)>의 리메이크임을 직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본래 이 영화들은 1954년 발표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사실 어린 시절 그 영화는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목사가 되어 신학적 관점에서 보는 이 영화는 왠지 영혼과 구원에 관한 뒤틀린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감독은 이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여러 영화적 프레임을 통해서 드러낸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신학적 프레임을 나름 나만의 철학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간단히 내용을 소개하자면,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2012년 뉴욕에서 어느 한 과학자가 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광견병 바이러스를 이용하여서 암을 완치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치료는 혁신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사람들이 광견병에 걸린 좀비들처럼 변하고 만다. 나중에 네빌이 안나라는 여인을 만나 그에게 하는 대사 중에 나오지만, 60억 인류 중 90%인 54억이 이 변종 바이러스에 의해서 죽고,  1%인 1200만이 면역이 생긴 건강한 사람, 나머지 9%인 5억 8천 8백만이 좀비 괴물이 된다. 그 가운데 네빌은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뉴욕에서 외로운 싸움을 한다는 것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다.  이 대사를 하면서 이 좀비들을 '어둠의 추종자'(dark seeker)라 부르는데 이는 로렌스 감독 특유의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형이상학적 설정이다. 그의 전작인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 주연, 2005) 역시 선과 악,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서 삶이란 주제를 풀어가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그런 주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도시의 상징인 뉴욕은 어둠의 추종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사실 성경에서도 도시의 출발은 가인의 후예들로부터 시작한다. 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 도시를 치료하려는 네빌의 외로운 싸움, 그가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 생포한 이 어둠의 추종자 여인이 하필이면 그들의 대장의 애인이거나 딸이었다. 이 일로 인해 네빌은 자신이 사용했던 덫과 똑같은 덫에 어둠의 추종자들에 의해 걸리고 만다. 이들은 햇볕을 싫어하고 햇볕에 나오면 죽게된다. 이 역시 일종의 형이상학적 설정이다. 빛과 어둠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자신의 유일한 반려였던 셰퍼드 샘을 잃고 만다.

 

네빌은 깊은 상실감으로 인해 어둠의 추종자들과 동반 자살을 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죽기 직전 그를 구한 여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안나이다. ‘애나’라고도 불리는데, 이 이름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예언자 안나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녀는 네빌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 남은 자 곧 빛에 속한 자들의 공동 거주지로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그녀가 복음서의 안나를 연상시키는 이유는 그녀는 신탁 즉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따라 그를 구하러 왔고 또 그 계시에 의해서 공동 거주지를 찾아 떠나려 한다. 이 공동 거주지는 일종의 파라다이스를 드러내주는 형이상학적 장치이다.

 

물론 네빌이 생각하는 구원은 안나가 생각하는 구원과 차이가 있다. 그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을 멀리이다. 그가 멀리라고 이름을 짓게 된 이유는 그가 좋아하는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가수 밥 멀리의 삶과 노래가 그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평화의 노래를 부른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은 치료가 필요로 한다. 오늘날 신학 중에 죄 문제로부터의 구원을 단지 심리적 치유로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장치이다. 그의 반려견 샘을 목욕시키면서 듣는 음악도 바로 이 밥 멀리의 음악이다. 그것은 일종의 신념으로 인종차별을 치료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는 주는 음악과 사랑을 말한다. 네빌은 밥 멀리로 대변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평화주의를 상징한다. 그는 안나에게 밥 말리의 일화를 소개해준다.  어느 날 총잡이가 밥 멀리의 집에 들어와 총질을 하고 그럼에도 2일 후 멀리는 나와서 노래를 한다. 누가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그 때 멀리는 세상을 망치려는 사람들이 쉬지않고 일하는데 내가 어떻게 쉬겠느냐?는 대답을 한 일화를 말해준다. 그러면서 Light after darkness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이는 본 블로그의 상징이기도 하며, 종교 개혁의 상징인 제네바 아카데미의 휘장 속에 담긴 말이기도 하다. 욥기의 인용이기도 한 이 구절이 평화주의 무신론 신념을 대변하는 네빌의 신앙(물론 무신론적 신앙이다)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는 적어도 밥 멀리로 대변되는 무신론적 신앙이 종교개혁적 신앙과 어떻게 혼동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영화적 장치로 보여진다.

 

물론 안나는 이에 대비되는 하나님 종교 곧 기독교적 신앙의 상징이다. 그녀는 그녀를 이곳으로 인도한 신탁을 말하고 그와 함께 공동 거주지로 가자고 요청을 한다.(사실 여기에도 상당한 신비주의적 냄새가 나지만 이는 생략하기로 하자) 그녀의 요청은 기독교적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를 부정하는 네빌의 부정은 무신론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증거를 묻는 네빌에게 안나는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살하려는 그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이유들을 말하지만 앞서 말한 세상에서 행해진 이 불행(불의에 대한 상징이다) 곧 90%이상의 사람이 죽은 사실을 들어서 하나님은 없다고 분노하며 선언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한 가지 상징적 장치는 바로 '나비'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개척한 교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비는 고대 교회로부터 중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 어둠의 추종자들을 치료해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려는 네빌의 삶은 나비로 상징화된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딸 멀리는 네빌에게 있어서 메시야나 다름없는 밥 멀리의 상징이다. 나비는 상징은 그의 딸 멀리로부터 시작한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맨하탄이 봉쇄된다. 봉쇄직전 네빌은 가족을 탈출시키려 하는데, 차안에서 봉쇄 명령이 내려지는 동안 멀리는 엄마에게 나비모양을 만들면서 봐달라고 한다. 그러나 극도로 예민해진 부부는 아이의 말을 일축한다. 나비에 관한 첫번째 복선이다. 네빌이 자살을 시도하고 안나가 그를 구출해서 집으로 왔지만 어둠의 추종자들에게 집이 들키고 만다. 이들은 지하 연구실에 피신을 하는데, 거기서 어둠의 추종자 여인이 치료제의 효과로 나아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연구실은 다 부숴지고 네빌은 자신이 고쳐 줄 수 있음을 계속 설득한다. 그러나 어둠의 추종자의 대장은 그녀를 요구하는데, 나비 문양을 방탄 유리에 그린다. 그리곤 네빌이 떠올린 것 멀리가 한 말 "아빠 봐 나비야"이다. 그리고 그가 잡아온 어둠의 추종자 여인의 어깨에서 나비 문양을 확인한다. 그리곤 안나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안나가 '어쩔려구?'라고 묻자 네빌은 안나가 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말을 떠올리며 '지금 듣고 있다'고 답한다. 전통적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는 중생을 의미했다면, 로렌스 감독에게 나비는 오히려 이들의 삶을 존중하는 그녀를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멀리식의 중생이다. 마지막 장면에 어둠의 추종자가 표현하는 감정은 이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며, 네빌은 이들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이 어둠의 추종자들은 네빌을 해치지 않고 떠난다. 그들은 빛과 어둠은 함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이런 로렌스의 스토리 플롯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적 신앙 형식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전통적 사고를 뒤트는 방식은 전작인 <콘스탄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악의 화신인 루시퍼가 오히려 퇴마사 콘스탄틴을 살려주고 물론 그의 영혼을 얻기 위해서이지만, 하나님의 대천사인 가브리엘은 세상을 악으로 뒤덮기 위해서 루시퍼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는 음모의 주동자이며 콘스탄틴을 헤하려 한다. 선악의 모호한 경계와 밥 멀리로 대표되는 종교, 인종, 계층간의 톨레랑스를 나비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네빌이 전설이다. 여기서 전설은 메시야적 구원자의 전설이며, 어둠후에 빛을 가져오는 전설이다. 그러나 그 전설은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시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골 1:13, 바른)"는 그런 전설이 아니라 각자의 것에 충실한 톨레랑스적이며 포스트모던적 전설이며 구원이다.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바이러스의 치유였으나 이미 그들은 새로운 종으로서 '진화'했고 그들 나름의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신학적, 종교적 주제들을 뒤트는 현대적 신앙의 전형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