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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일기

예전 일기

요즘 기도에 은혜를 주신다. 아마도 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로 가장 깊이 있게 기도하는 것 같다. 말씀에도 은혜를 부어주신다. 한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되어서 많이 기쁘다. 앞길은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감추어진 뜻이 드러나기 까지 기도하며 은혜를 구한다. 
 
사람들은 기도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오해인데, 첫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요 작정 가운데 있는 데 기도의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마치 자신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만세전에 작정하신 계획조차 뒤집어 질 것처럼 막무가내로 부르짖는 기도이다. 그래서 흔히 "보좌를 흔드는 기도"라고 하기도 한다. 이 둘은 모두 기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담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과 작정을 인정하는 듯한 나는 이것을 "칼빈주의 부작용"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진정한 칼빈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작정은 우리에게 모두 드러나 있지 않다. 예컨대,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면서 복음을 전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키길 염두에 두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신다. 돌이키는 것은 감추어진 뜻이었다. 그런데 요나는 이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역사로 실현되기 전까지 모두 들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과 자유의지는 상충하지 않는다. 작정과 자유의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흔히 섭리라고 말한다. 섭리는 숙명론이 아니며, 우리의 최선의 기도를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소요리 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기도를 "은혜의 방편"으로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뜻을 드러내어 주시기 까지 힘써 기도해야 한다. 다윗도 밧세바와 간음하고 얻은 아들에 대해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듣지만 눈물과 금식으로 간구한다. 그러다 아들이 실제로 죽자 의복을 단정히 하고 음식을 먹는다. 혹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이 들어나기 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정이 드러났을 때 겸손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칼빈주의적 기도이다. 
 
두번째 부류는 우리나라에 꽤 많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따라 생각이나 작정을 뒤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류들은 사실상 하나님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작정은 어제나 몇년 전에 결정된 일이 아니라 창세전 곧 우주를 여시기 전에 결정된 일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뜻이 변하거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과 전지성을 훼손하며 그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발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도 응답의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2008.01.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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