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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용어들과 신학함의 의미

우리 신천지가 너무 싫죠. 게름칙하고 근데 신천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한자로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 예수믿는 사람이 신천지가 싫다고 성경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버리는 사람은 없겠죠. 그런 식이며 구원파가 쓰는 구원이라는 용어도 버려야 하고 지방교회가 쓰는 지역이름을 붙인 교회 이름도 다 버려야 합니다.

 

용어에 색깔을 입히는 것, 그것이 편견입니다. 출애굽기 19:5에 "열국 중에 내 '소유'"라는 언약공식의 표현 중에 소유라는 단어의 신학사전을 찾아보면 "보석"이란 의미가 눈에 띨 것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고대 근동의 종주와 봉신 사이의 외교 관계에서 종주가 봉신을 지칭하던 "외교 용어"였습니다. 아시는대로 고대근동은 신화적 세계관으로 가득했고 이 용어도 신화로 물든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용어를 가져다가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과 그 언약 백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성경적 용어로 탈바꿈해놓습니다. 언약 공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 용어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관계를 설명해주는 핵심적 용어이며 이 용어를 따라서 계시록의 환상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의 치장된 보석들이 단지 물리적 보석이 아니라 언약 백성의 은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계시록은 "어린양의 신부를 보이리라"고 밝히면서 새 예루살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용어에 대한 세속적 편견이 있었던 30년 전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자주 읽던 퍼시 콜레의 "내가 본 천국"에서는 천국에 갔더니 이런 각종 보석이 길바닥에 가득하더라고 간증한 바가 있죠. 성경을 모르던 사람들은 천국 체험했다고 하니 혹하여 넘어갔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기만 했어도 이 보석이 실물 보석이 아니라 성도들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말이죠.

 

신자는 있던 편견도 걷어내고 거기에 신학적이며 성경적인 의미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포로 후기의 성경 중에 에스더서는 이런 장면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포로가 된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 현장에서 백성들에게 여전히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까요?

 

그것이 바로 섭리 교리입니다. 성경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성경이 에스더서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는 유대인의 민족적 위기 가운데 이어지는 우연들 속에서 보호받는 백성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모르드개가 역모를 고발하였으나 포상받지 못함, 와스디가 왕의 심기를 어지럽혀 폐위되고 에스더가 간택됨, 왕이 잠이 오지 않아 궁정 일기를 읽었는데 하필 읽은 곳이 모드르개의 공을 적은 이야기, 때마침 들어오는 하만에게 무엇으로 포상할까 묻자 자기를 가리키는 줄 알고 모르드개를 높이라고 간언하는 하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연 속에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하만은 바로 여호와께서 영원한 전쟁을 선포했던 아말렉 후손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하만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와로부터 보호받았던 것처럼 여전이 이 백성을 보호하고 계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특히 산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하는 장면은 이 전쟁의 성패가 백성들의 전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보이지 않는 전능하신 손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스더서는 포로후기 시대의 바로 아말렉전쟁의 새버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서 세상이 윤색하고 거기에 덮혀둔 것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내고 우리 삶을 해석하는 것이 바로 신학함입니다. 모세 얼굴의 비친 영광이 광채 때문에 덮어둔 수건 때문에 그것이 유전이 되어 수건이 덮힘으로 제대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것들에 편견을 덧씌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걷어내야 하는 것이 신자됨이며 신학함입니다.

 

(고후 3:13-17, 개정)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