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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인간론의 심리학적 이해

정동(affect)은 부착을 특징으로 한다. 운동의 특징을 지닌 모든 생물의 특징이기도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의 운동성을 뜻하기도 한다.

 

한 개인은 태어나자마자 이런 운동성을 가지는데 애착이라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애착의 대상에게 그것을 부착하고 거기서 성취와 만족을 경험하며 안정과 평안을 경험한다.

 

이 애착의 대상과의 관계적 문제 때문에 다른 애착 대상을 만들 수도 있으며 실제 애착의 정동을 특정한 물체에 부여할 수도 있다.

 

특정한 물체에 애착의 정동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이 애착의 대상에 대한 모형적 이미지가 정동의 주체 내부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동은 애착을 통해서 1차적으로 자기동일성을 확보한다. 이 자기동일성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특징으로 하지만 본질적으로 타인과 자기를 구분짓지 않는 일종의 동일시이자 모방이다.

 

이 모방의 기제는 신자가 갖는 믿음의 매우 중요한 심리적 특질 중의 하나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주요한 특징이 바로 이 모방적 기제로 모방을 통해 그리스도의 특징을 내것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다.

 

종교개혁 전통에서 이신칭의에서 "전가"은 여기서 한 발자욱 더 나간 것인데 전가에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첫째, 전가의 의 자체가 내 안에 있지 않고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자기와의 분리를 함축하고 있다. 둘째 그렇게 분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를 내것으로 여기는 동일시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신학적 이해는 공교롭게도 인간의 발달적 이해와 맞물려 있다. 정동이 애착을 통해서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던 데서 조금 더 발달하게 되면 애착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런 자각은 앞서 설명한 물체에 애착 대상의 모형적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안에 있던 애착의 대상의 이미지의 생성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분리는 공교롭게도 미움의 발현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의 관계 속에 미움이 침습해 들어오고 그 미움을 제대로 감당할 정도의 자기동일성이 없는 관계로 미움을 담아두지 못하고 애착대상에게 되돌려 준다. 미움이 주로 투사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미움은 애착 대상과 자기와의 분화를 촉진시키고 시기와 경쟁을 공교롭게도 대상의 분리를 촉진시킨다. 그렇게 분화된 상태는 불안을 일으키는데 아이는 이것을 감당할 수 없고 결국 분리된 상태에서 타자의 이미지를 이상화하는 형태로 자기 내면으로 내투사하는 두번째 단계를 밟게 된다.

 

첫 번째 자기동일성이 자기애의 발달이라면 두 번째 선망의 대상으로서 타자와의 동일성은 타자애의 발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과정이 현실을 통해서 현실적 관계에서 지속적인 수정을 거치지 못하게 되면 타자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이상화되고 현실 적응에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이 극단적이 되면 일종의 자폐의 기제가 된다.

 

자기 이미지와 타자 이미지를 이어주는 중간적 이미지가 있는데 이상화된 형태의 중간적 이미지는 신의 이미지이다. 여기에는 전능이 부여되며 상상 가능한 모든 이상화가 가능하며 그렇게 현실적 대상이 아닌 체 다른 대상들에게 이 이미지를 투여한다.

 

아이는 오랜 현실의 경험을 통해서 이 이미지들이 멸실되고 남아지 있지 않게 되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남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이며 이 이미지의 출처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이렇게 상호 침습하며 교류하며 교환하며 담아내기도 담아두기도 하며 맺는 세 이미지들 간의 교류와 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를 닮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힘은 정동의 산출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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