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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전곡리와 역사왜곡

1977년 주한 미군 공군 상병 그렉 보웬은 한국인 애인과 함께 한탄강에 놀러갔다가 코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의 돌들을 줍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렉 보웬은 공군에 입대하기 전에 아리조나 대 고고학과 학생이었다. 보웬은 이런 돌을 여러 점을 찾았고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프랑스의 교수는 서울대 고고학과 김원룡 교수에게 유물을 보내어 조사를 요청했다. 이렇게 밝혀진 것이 바로 "전곡리 주먹도끼"로 30만년 전의 구석기 유적이다. 서울대박물관은 이 일을 계기로 전곡리 일대 4500여 점을 유물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 당시 고고학의 가설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었다. 1970년대 고고학계는 하버드대 모비우스(L. Movius)의 가설이 주류의 학설이었다. 그는 전기 구석기 문화를 문명이 발달한 주먹도끼 문화권과 발달이 더딘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를 했는데 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는 아슐리안이라는 주먹도끼 문화권이고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는 찍개 문화권이라고 분류했다. 통상 고고학자들은 찍개는 단순히 돌을 깨뜨려 사용한 도구로 주먹도끼는 깨뜨린 돌을 다음어 사용한 것으로 보았고 유럽과 아프리카는 주먹도끼로 아시아는 찍개로 분류했다. 이 가설은 아시아에는 구석기 문화다운 문화가 없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이것도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었다.

그런데 전곡리에서 아슐리안식의 석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모비우스의 학설은 한 순간 폐기 되었다. 이일로 데즈먼드 모리스 등의 세계적인 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석기들을 감정하고 아슐리안 석기임을 인정했다. 한국은 세계적인 전기 구석기 문화유적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정말 웃겼다. 한반도에 있다면 일본에도 있어야 한다는 식었던 것이다. 식민지 지배론 같은 것이었는데 이게 웃지 못할 해프닝을 만들었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단군이 일본의 시조 아미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 あまてらすおおみかみ)의 남동생이라는 이론을 펼쳤다. 백제 유적의 영향은 지나치게 두드러짐으로 제외하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랬던 일본이니 한국에서의 전기 구석기 유적의 출토는 견디기 힘든 사건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정신승리를 시전했는데 1981년 일본이 아마추어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미야기 현에서 기원전 4만년의 구석기 유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전곡리 주먹도끼가 발견된 지 3년만이었다. 신이치는 그 후 20년 간 100개가 넘는 유적을 발굴했고 일본문명을 세계 4대문명과 나란히 두드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다 어떤 제보에 의해서 신이치가 유물을 조작한다는 사실이 폭로가 되었고 조사 결과 유물은 모두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은 이 일로 거의 패닉이었는데 70만년의 역사라고 교과서에도 써댔기 때문이다. 고작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주장을 말이다. 2001년 국제 고고학 회의는 일본인 학자들을 거부했다. 날조와 거짓 역사 왜곡은 독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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