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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정의와 분배의 문제

정의란 경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정의가 바로 경제적 정의이죠.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입니다.

분배를 생각함에 있어서 한 사람이 가진 재능과 외모 등에 의해서 생산한 재화들을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그런한 성과에 일부 본인의 선택과 무관한 사회 문화적 요인이 존재하는가 하는 평가에 의해서 분배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버드 대 교수 3명의 정의와 분배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나라가 처한 위치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롤스(John Rawls)가 주창하는 정의의 개념은 자유를 개인의 기본권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가 모두에게 공평하려면 제2원칙, 곧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애는 부모를 잘 만나 과외를 많이 하고 수업이 들어오고 어떤 애는 부모를 못 만나 아무런 학습의 기회도 못 가졌을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다가 학습에 들어왔다면 그 둘은 공정한 기회 균등이 보장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롤스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롤스의 이러한 생각을 "복지국가형 자유주의"라고 부릅니다. 롤스가 주장하는 정의 개념에서 또 다른 하나의 원칙은 바로 차등의 원칙인데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복지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예를 들어, 송혜교가 자신의 외모 때문에 막대한 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미인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고 미인은 양귀비인데 양귀비의 체중이 80킬로에 달합니다. 이것은 그 시대가 그런 풍만한 여성을 아름다운 여성으로 보는 사회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죠. 같은 이유로 송혜교의 성공에는 자신의 재능과 외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요인들이 그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해서 성공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죠. 따라서 그런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봉사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것을 정의로 보는 것입니다. 즉, 개인의 재산은 사회적인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죠. 개인의 자산이 단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미국의 정치 지도자로는 오바마 사업가로는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이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죠.

노직(Robert Nozick)이 말하는 정의는 개인의 소유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는 것입니다. 개인의 소유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바로 이 개인의 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개인 해변"이라든지 하는 것을 가지기도 하죠. 이런 데서 소유권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정의 관념을 자유지상주의라고 합니다. 이런 형태의 정치 지도자는 지금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를 들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 있는 일화는 한국의 소톱깍기 업체인 777이 미국에 진출했을 때, 이 상표를 보잉사가 이미 등록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선등록주의"가 아니라 "선사용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777으로 미국에 수출한 서류를 증거로 제출해서 미국 법원에서 777이 보잉사를 상대로 승소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정의라고 보며 개인의 권리와 절차적 정당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왈처(Michael Walzer)의 정의는 단지 돈의 분배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이죠. 사회는 문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의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돈이 많은 사람은 이것을 모두 장악하고 지배할 경향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럴 때 이것을 정의롭다고 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우리 나라의 경우 수도 사업 전기 사업 생활 폐기물 수거 사업 지하철과 대중 교통, 의료 사업 등이 돈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가 되면 그런 사회를 정의롭다고 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우리는 영리 병원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금산분리법이라고 해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동시에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게 대표적인 왈처의 정의 관념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재벌 문화와도 관련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왈처의 정의를 흔히 공동체주의라고 합니다. 정치 지도자로서는 버니 샌더스나 미국 십대 기업가 중 한 명인 블룸버그 통신의 불룸버그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습니다.

긴 설명을 들으시면서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우리나라의 기본적 성향은 공동체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중도에서 약간의 좌편에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죠. 미국의 코로나 방역 실패에는 노직이 말하는 정의 관념에 따른 의료 체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다쳐서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가 응급처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받는 청구서 금액이 1000만원이 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회를 정의롭다고 하실 건가요? 물론 노직의 방식의 정의의 관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의관념은 막대한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이나 자신에게 유리해서 선택하는 관념인데 사실 한국의 소우 보수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자산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만들려고 했죠. 거기에 투자한 중국 부동산 국영기업은 병원의 ㅂ도 모르는 회사였습니다. 영리 병원이 도입되고 각종 공공재를 담당하는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면 일본이나 영국처럼 공공재의 가격이 치솟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정의롭다고 하실 건가요?

여러분이 처한 기본적 정치지형을 이해하고 지지해야 할 사람을 지지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건강한 민주국가가 될 것입니다. 근데 지금 형편은 마치 하루를 겨우 좌판으로 먹고 사시는 할머니가 TV 드라마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 걱정을 하는 형국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 남아 있는 공산주의의 망령은 이미 유효기한이 만료되었습니다. 그 나라들 모두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버드 3인의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정의는 점차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체주의쪽으로 옮겨 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근 하라리(Yuval N. Harari)가 피아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에 기고했던 글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 무엇이 지혜로운 선택일까요? 여러분 각자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서 정치적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도 정신을 차리고 민의를 따라 상식적 사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