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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제5강 칼빈의 기독교강요 – 칼빈의 신앙론

제5강 칼빈의 기독교강요 – 칼빈의 신앙론
김재영 목사 정리
믿음과 칭의는 칼빈 사상의 중심. 1559년도 판 기독교강요의 제3권에 그 점에 대한 원숙한 논의가 나타남. 이 두 주제가<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받게 되느냐를 논하는 부분- 성령을 다루는 부분 - 에서 나타남. 
- 믿음은 성령의 주된 역사임. 믿음을 통해서 타락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됨. 믿음은 은혜를 받아들이는 수단임.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이중적인 은혜가 바로 칭의(의롭다 하심)와 성화임. 
- 성령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주심.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묶어주는 연합의 끈임. 어떻게? 우리 가운데서 믿음을 불러 일으키셔서 묶어주시고 연합시켜주심. 
-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들임. 참조: 칼빈은 타락한 인간의 참상을 하나님 및 자신에 대한 허위 지식의 측면에서 바라봄. 칼빈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믿음과 칭의를 다름. 
1. 믿음에 대한 정의
- 1539년도 판(제2판)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믿음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앎/지식으로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정신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쳐진그리스도 안에 값없이 주어진 약속에 대한 진리에 근거한 앎/지식이다” 라고 정의. 기본적으로 이 정의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개정되고 확장됨. 
- 1536년도 초판에서와 마찬가지로 1539년도 판에서도 믿음에 대한 논의는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의 서언의 역할을 하고 있음. 그러나 1539년도 판에서는 신학의 주제로서 따로 논의되는 경향을 보임. 믿음에 대한 논의 자체에 새로운 자료들이 포함되고, 공식적인 정의의 다양한 요소들의 의미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칼빈이 거짓 신앙으로 보고 있는 ‘신앙 이해’에 대한 배격이 들어가 있음. 믿음의 행위에 대한 좀 더 정밀하며 풍성한 기술을 함. 믿음을 본질적으로 fiducia(trust, confidence)로 보았던 이전의 견해에서 오히려 cognitio가 믿음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보게 됨. 
- 믿음을 지식(knowledge, 앎 cognitio)으로 정의한 이유가 뭐냐? 1559년 최종판에서 믿음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사도신경의 논의의 서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법 및 그 은혜의 혜택과 효과에 대한 고찰을 길게 시작하면서 설명하고 있음. 
- 칼빈은 성령을 사람이 그리스도와 소통하게 해주는 에이전트로, 동시에 믿음을 성령의 주요 사역이라 말하면서 믿음이라는 주제를 도입함. 그러므로, 믿음은 명확히 성령론의 일부로서 취급되어 있음.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진리를 사람의 지성에 비춰주고 마음에 인치는 것임. 거기에서 우선 먼저 믿음을 앎/지식으로 정의. 
- 3.1.4<성령의 역사로서의 믿음>부분에서 믿음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믿음에 대한) 칼빈의 생각을 잘 보여줌. 이 부분은 믿음이 성령의 주된 역사의 결과로서 오는 선물임을 표현함.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의 믿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류의 사람의 마음의 발휘로서의 신념이나 확신과 구별됨. “...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야말로 초자연적인 선물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믿는 행위로서 믿음에 대한 관심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며, 사람의 작용이 아닌 신적 작용의 결과임. 
2. 당시의 배경
- 칼빈의 이러한 정의는 몇몇 전통적 이해를 부적절한 정의로 보고 배격함으로써 도달한 것. 
- 중세 신학자들은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다양한 성경 구절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 믿음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함. 맹목적 신앙/뚜렷한 신앙(implicit faith/explicit faith), 미형성 신앙/ 형성된 신앙(unformed and formed faith), 획득된 신앙(acquired faith), 역사적 신앙(historical faith), 귀신의 신앙(demons’ faith).
- 어거스틴/스콜라신학의 세 구분: credere Deum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신앙), credere Deo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는 신앙), credere in Deum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신앙). 
- 일반적으로 중세 구원론은 신앙 개념보다는 은혜 개념에 더 집중. 은혜를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입시켜주는 습관으로 보았으며, 그런 은혜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의 신학적 덕목의 뿌리라고 보았기 때문. 하나의 덕목으로서, 믿음은 영혼의 한 자질(a quality of the soul)로 보았음. 그리고 오직 주입된 믿음, 그리고 사랑의 행위들을 통해 형성되는 믿음만이 의롭다 하는 종류의 믿음이라고 보았음. 
- 루터, 멜랑히튼, 부써 등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순전한 믿음(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으로 구분. 1536년판 강요에서 진짜 믿음을 그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것,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를 믿는 것(역사적 믿음)과 구분. 그런 믿음은 “믿음”이라 불릴 가치도 없다. 칼빈은 참 믿음을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인정하는 것이라 말함. 하나님의 약속이 참됨을 소망과 확신으로 믿는 것이라 봄. 믿음을 오직 의롭다 하는 믿음(justifying faith)에만 국한해서 사용. 믿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구원하는 믿음’ 즉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the faith that saves)라고 봄. 
- 중세 전통들과 다른 칼빈의 견해의 특징 – 믿음을 주입된 덕성/덕목(virtue)이나 영혼의 한 성질로 보지 않았다는 점. 더 더욱이 사랑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믿음이 결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갖는다고 보았음. 
3. 바울 신학의 요소
- 믿음에 대한 칼빈의 정의의 저변에 놓여 있는 근본적인 가정은 믿음의 주요 목적과 기능/역할이 칭의(justification 의롭다 함)에 있다는 것임. 칼빈이 의롭다 하는 믿음(justifying faith)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칼빈의 사상에서 바울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연결되어 있음. 즉 바울 서신서들에 나오는 믿음에 대한 견해가 칼빈의 믿음 이해의 가장 중요한 소스(원천)임. 바울이야말로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전반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제공할 뿐 아니라 칼빈이 믿음을 기술하면서 가장 빈번히 인용하는 권위임. 1539년도 판 강요에 표명된 믿음에 대한 견해는 로마서 주석(1540)에 나오는 믿음에 대한 논의들을 반영하고 있음. 거의 동시에 작성되었음. 
- 로마서 주석에서 칼빈은 이신칭의를 이 서신서의 중심주제로 봄. 특히 로마서 3장 4장이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주는 복음으로부터 잉태되는 신적인 자비에 대한 확실한 지식/앎”이라고 바울이 보고 있다는 자신의 바울 이해를 보여줌. 이러한 바울 이해가 믿음에 대한 신약의 다른 진술들을 바라보는 렌즈가 됨. 믿음의 다른 측면들에 대한 다른 신약 서신서들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울의 전제를 통해서 조절하고 조화시킴. 
- 여기에서 구원의 신앙의 최우선성과 중심성이 강조됨. 그 믿음은 성육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일을 감당하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향하는 믿음임. 
4. 확고하며 확실한 지식/앎으로서의 믿음
- 그렇다면 칼빈이 말하는 “확고하며 확실한 지식/앎으로서의 믿음”(faith as firm and certain knowledge)이 무슨 뜻인가? 
- 칼빈의 강조는 신앙의 각 조항/내용들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있지 않고, 일종의 주관적 행위에 있음이 분명. 이 행위는 단지 지적인 행위(intellectual act)가 아니라 지성과 마음(the mind and the heart) 지성과 의지(intellect and will)을 포함함. 실로 구원의 확신은 “두뇌보다는 마음의 문제이며, 이해보다는 성향(disposition)의 문제”임. 
-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파악이며 동시에 그 말씀을 기꺼이 의지적으로 수용하는 것임. 신적 진리는 그 성격이 고상하고 무한하기 때문에, 믿음은 이해보다는 확신으로 구성된다고 판단함. 성령은 논리적 증명을 통해서가 신자들을 교훈하지 않고, 신자들을 신적 진리에 대해 설득함. 그러므로 믿음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정(recognition – agnitio)임. 그러므로 믿음은 독특한 인지적 파악의 성질(a distinct perceptual quality)를 갖고 있음. 그것은 영혼의 성질도 아니며, 덕성도 아님.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임. 새봄(a new way of seeing)임. 외적인 눈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임. 
- 믿음으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자신에게 자혜로우신 아버지이심을 아는 것임. 
- 그러므로 믿음의 fiducial character 신뢰의 성격은 지식/앎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고 해서 사라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해짐. 
- 그리고 믿음의 지식이 ‘확고’하고 ‘확실’하다는 것은 개인 신자의 확신의 강력함과는 별로 관계가 없음. (* 이것이 오늘날 믿음을 말하는 방식임) 믿음이 확고하며 확실하다는 것은 믿음이 신적 기원에서 비롯했고, 믿음의 근거가 확실하다는 것임. 
- 이상적으로 말해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끊임없는 설득 혹은 확신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음. 그 선하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확실한 약속을 통해 보장되는 것임. 
- 그렇다고 해서 칼빈이 의심이나 유혹의 실재를 부인하지 않음. 참 믿음은 의심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심에 대응해서 싸움에서 이기는 것임. 
5.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 믿음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혜로우심에 대한 지식. 그 선하심은 명확히 그리스도 중심적 성격을 지님.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함. 그러므로 믿음의 토대/근거는 복음. 그리스도 자신이 믿음의 참 대상. 사람이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성부에게로 되돌아가는 길을 제공하기 때문. 
-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를 명확히 아는 지식이어야 함. 
- 믿음에 대한 이러한 지식/앎의 성격을 명심하면서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믿음의 대상이 단순히 지성의 찬동을 요구하는 명제(a proposition)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리스도는 한 위격/한 사람임.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 조명하여 믿음으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접붙이심. 
-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믿음의 주요 효과 중 하나이며, 신자들의 확신의 근거를 형성함.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대망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우리로부터 멀리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그의 몸에 접붙여서 그의 모든 혜택에, 또한 그 자신에게 참여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성령의 전적인 역사로서 지정의, 영혼육체에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