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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칼빈의 신앙론

칼빈의 신앙론
이양호 교수
제16강 신앙론 (1)
켄달(R. T. Kendall)의 「칼빈과 1649년까지 영국의 칼빈주의」라는 저작은 1979년에 출판된 이후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신앙론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을 야기하였다. 리드(W. Stanford Reid)는 1980년 이 저작에 대한 서평에서 켄달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공박하였다. 리드의 비판적 서평이 있고 난 후 켄달의 주장들을 비판하는 논문과 저작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1981년 헬름(Paul Helm)은 “논문 논평: 칼빈, 영국의 칼빈주이 및 교리 발전의 논리”라는 서평에서 켄달의 주장들을 비판하였으며 그 후 1982년 이 서평을 확대하여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1985년 하퍼(George W. Harper)는 “칼빈과 1649년까지 영국의 칼빈주의: 서평 논문”에서 역시 켄달의 주장들을 비판하였다. 1990년 뮬러(Richard A. Muller)도 “존 칼빈의 신학에 있어서 지성과 의지의 문제에 관련된 Fides와 Cognitio”라는 논문에서 켄달의 주장들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1992년 비크(Joel R. Beeke)도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과 그 주된 작서자들에 있어서 신앙과 확신: 켄달 논제에 대한 새 조망”이라는 논문에서 켄달의 주장들을 비판하였다.
켄달과 그의 비판자들의 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켄달이 칼빈과 칼빈주의 사이의 불연속성을 주장한 반면 켄달의 비판자들은 칼빈과 칼빈주의 사이의 연속성을 주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칼빈의 신앙론에 관련하여 켄달과 그의 비판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서 칼빈의 신앙론을 고찰하려고 한다.
켄달은 우선 칼빈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주지주의적인 데 반해 칼빈주의자들은 주의주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으로 켄달은 칼빈은 신앙을 수동적인 것으로 보았는 데 반해 칼빈주의자들은 의지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신앙을 능동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켄달은 칼빈은 신앙과 확신을 구별하지 않았는 데 반해 칼빈주의자들은 신앙과 확신을 구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켄달의 비판자들은 칼빈은 칼빈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주의주의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신앙의 수동성과 능동성의 문제에 대해 칼빈과 칼빈주의자들 모두 신앙의 수동성과 능동성을 동시에 인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신앙과 확신의 관계에 대해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 다같이 신앙을 강조하면서 확신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본고에서는 이 세 논점들을 중심으로 칼빈의 신앙론을 고찰하고자 한다.
켄달은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지성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켄달은 칼빈의 신앙론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이 서술들에서 드러나는 것은 신앙의 소여적이고 지성적이고 수동적이고 확신적인 본질이다. 여기에는 끌어들이는 신앙 주의주의, 인간의 행위로서의 신앙 및 그 실재를 증명하기 위해 경험적 지식을 기다려야 하는 신앙 등에 대한 요구가 없다”고 말하였다. 또한 켄달은 이렇게 말하였다. “칼빈이 특별히 확립하기를 원한(그리고 근본적으로 가정한) 전제는 신앙이 지식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신앙에 대한 몇몇 성서의 동의어들을 주목하는데 그것들은 ‘인식’(agnitio)과 ‘지식’(scientia)과 같은 단순한 명사들이다. 그는 신앙을 조명(illuminatio), 우리의 감정의 종속에 반대되는 지식(cognitio, non sensus nostri submissio), 확실성(certitudino), 확고한 확신(solida persuasio), 확신(securitas), 확고한 확신(solida securitas) 및 완전한 확신(plena securitas)으로 묘사한다.” 나아가서 켄달은 “칼빈은 ‘심정’을 지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켄달에 의하면 칼빈이 이처럼 주지주의적 경향을 가진 데 반해 후의 칼빈주의자들은 주의주의적 경향을 가졌다. “이것이 또한 의미하는 것은 신앙이 의지의 행위-베자(Beza)가 이렇게 말하지는 못하였지만-라고 하는 것이다. 베자가 신앙이 의지의 행위라고 분명히 진술했더라면 퍼킨스(Perkins)는 틀림없이 그밖에 베자가 가르친 모든 것에 있어서 따르려고 한 것처럼 이 점에 있어서 베자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윌리암 에임즈(William Ames)가 수정한 모든 것은 데오드르 베자(Theodore Beza)의 가르침에 깔려 있었다. 베자는 에임즈가 후에 명백히 한 것을 명백히 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라고 켄달은 말했다.
켄달의 이런 주장에 대해 뮬러는 이렇게 논평했다. “칼빈이 신앙을 cognitio로 정의한 것을 두고 순수하게 ‘주지주의적’ 입장이라고 보는 최근의 연구 경향에 반해, 특히 켄달이 피력한 견해에 반해, 우리는 칼빈이 신앙의 언어에 이르는 비사변적인, 구원론적 주의주의를 고수했다고 보아야 한다. 칼빈이 신앙에 대해 cognitio, 그리고 때때로 scientia와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는 신앙을 illuminatio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리드(Leith), 보스(Vos), 암스트롱(Armstrong)의 저작에 명백히 나타난 칼빈 연구에 따라 우리는 신앙이 인간 심정에 호소하고 전인을 포함하기 위해 단순한 지성적 이해를 넘어가는 것으로서 신앙에 속한 확신(securitas)에 관한 똑같이 강한 주장에 의해 균형이 잡혀 있음을 발견한다.” 이어서 뮬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주의주의는 스코투스주의적 전망과 어떤 유사점들이 있다. 그러나 아마 스코투스주의 신학의 의도적 활용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죄의 문제에 대한 칼빈의 일반적인 어거스틴적 견해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뮬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신앙을 cognitio라고 말하는 칼빈의 언어는 지성만 강조한다기보다 지성과 의지의 균형을 주는 데 기여하며, 칼빈의 구원론적 관심은 신앙론에서 인식 행위에 있어서 의지의 최고성을 강조하게 한다.”
칼빈의 신앙론이 주지주의적이었는가 주의주의적이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신앙에 대한 칼빈의 정의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신앙은 “우리를 향한 신적 자애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인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며 성령을 통해 우리 지성에 계시되고 심정에 인쳐진 것”이다.
우선 이 정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은 “우리를 향한 신적 자애”에 근거를 둔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창세기 2:17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는데, “이런 말씀들은 신앙을 세울 수 없고 그 자체로 신앙을 흔들 뿐이다”라고 칼빈은 말하였다. 칼빈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의 약속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자비롭다고 증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사람의 심정은 은총에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신앙은 “확고하고 확실한 인식”이다. 이런 점에서 칼빈은 중세 교회의 맹목적인 신앙(implicita fides)을 비판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모호한 정의로 신앙의 전체 힘을 쇠약하게 하고 거의 말살하는 것 이외에 ‘맹목적인 신앙’이라는 허구를 만들었다.…더욱이 문제의 진상을 참되고 솔직하게 진술한다면 이 허구는 참된 신앙을 매장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파괴한다”고 칼빈은 말하였다. 또한 칼빈은 “당신이 당신의 감정을 교회에 복종적으로 종속시키기만 하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는 것, 이것이 믿는 것인가?”하고 반문하였다. 칼빈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화해 때문에(고후 5:18-19) 하나님은 우리의 자애로운 아버지이며 그리스도가 의, 성화, 및 생명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이 지식에 의해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지 우리의 감정을 종속시킴으로써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 근거를 둔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신앙은 한 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에 또한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 첨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광채가 우리 위에 비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멀리 숨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신앙은 값없이 주어진 약속에 근거한다. 신앙과 약속, 혹은 신앙과 말씀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선 우리는 신앙과 말씀 사이에 영구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가 이 둘을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태양에서부터 나오는 광선들을 태양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다.…‘듣는 것’은 대체로 믿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 동일한 말씀이 신앙이 지원받고 유지되는 근거이다. 만약 신앙이 말씀으로부터 떠난다면 신앙은 넘어진다. 그러므로 말씀을 제거하라. 그러면 신앙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신앙은 약속의 진리(promissionis veritate), 혹은 약속의 진실성에 근거를 둔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신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의 근거는 하나님의 진실성을 먼저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근거에서 시편은 일반적으로 자비와 진실성 이 둘을 마치 상호 연관된 양 짝을 짓는다(시 89:14, 24; 92:2; 98:3; 100:5; 108:4; 115:1; 등등). 하나님이 우리를 자비롭게 자신에게로 끌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진실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말씀으로 그것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능력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진실성이 없는 약속은 의미가 없으며, 자비의 약속 없이 진실성만 있다면 우리의 구원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앙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칼빈은 “신앙은 성령의 주된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성령의 은밀한 에너지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모든 그의 유익들에 이르며,” “성령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합시키는 띠이다”라고 칼빈은 말하였다.
신앙은 성령의 일인데, 우선 성령은 우리 지성에 계시한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태양과 같아서 그것이 선포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지만 맹인에게는 아무 효과를 끼치지 못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본성상 이 점에 있어서 맹인들이다. 따라서 성령이 내적 교사로서 그의 조명을 통해 말씀을 위한 입구를 만들지 않으면 말씀이 우리의 지성 속에 들어올 수 없다.”
성령은 우리의 지성에 계시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정에 인친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심정이 성령의 능력에 의해 강화되고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지성의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조명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스콜라 학자들을 비판하여 “이 문제에 있어서 스콜라 학자들은 완전히 잘못 되었다. 그들은 신앙을 고려하면서 신앙을 지식에서 나오는 발가벗고 단순한 동의와 동일시하며 마음의 신뢰와 확신을 배제시킨다”고 말하였다.
지금까지 신앙에 대한 칼빈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칼빈은 신앙을 cognitio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cognitio는 “지식에서 나오는 발가벗고 단순한 동의”(nudum ac simplicem ex notitia assensum)는 아니라고 하였다. 신앙은 지성에 관계되지만 무엇보다 심정에 관계된다. 이런 점에서 칼빈의 신앙관을 주지주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켄달은 칼빈이 신앙을 주의주의적이 아니라 지성적으로 보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cognitio, non sensus nostri submissio"라는 칼빈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감정의 종속에 반대되는 지식”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칼빈의 이 문장은 문맥에서 보았을 때 지식을 감정에 대립시켰다고 보기 어렵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말이 나오는 「기독교강요」 제3권 제2장 제2절에서 칼빈은 “당신이 당신의 감정을 교회에 복종적으로 종속시키기만 하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는 것, 이것이 믿는 것인가?”라고 묻고 나서 다시 “이 지식에 의해서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지 우리의 감정을 종속시킴으로써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cognitio, non sensus nostri submissio"는 켄달처럼 “우리의 감정의 종속에 반대되는 지식”이라고 해석해서는 안되고, ‘우리가 구원얻는 것은 구원의 은총을 인식하는 데 있지 우리의 감정을 교회에 복종적으로 종속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켄달은 “칼빈은 ‘심정’을 지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신명기 29:4 주석 요한복음 12:40 주석을 들었다. 그러나 이 두 구절에서 칼빈이 말하고자 한 것은 성서의 어법에서 자주 심정을 지성의 뜻으로 사용한다고 한 것이지 칼빈이 심정을 지성의 뜻으로 사용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칼빈이 신앙을 의지적 행위로만 본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칼빈은 신앙에 있어서 의지적 요소를 중심에 두고 지성적 요소를 주변에 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칼빈은 스콜라 신학자들에 대한 비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동의 자체도…두뇌보다는 심장에, 그리고 지성보다는 감성에 속한다.”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칼빈은 신앙에 있어서 두뇌의 역할보다 심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칼빈은 주의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17강 신앙론 (2)
켄달은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수동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켄달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3권 제13장 제5절의 문장을 인용하여 “신앙은 ‘단순히 수동적인 어떤 것으로서 하나님의 호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것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켄달의 이 주장에 대해 헬름은 켄달의 인용문과 칼빈의 본문을 다음과 같이 대비시키고 난 다음 켄달을 비판했다.
KENDALL
CALVIN
Faith is 'something merely passive, bringing nothing of ours to the recovering of God's favour but receiving from Christ that which we lack'
For, as regards justification, faith is somethng merely passive, bringing nothing of ours to the recovering of God's favour but receiving from Christ that which we lack
“켄달이 생략한 단어들(위의 이탤릭체)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여기서 칼빈은 하나님 앞에서 한 인간의 득의에 관하여 신앙이 아무런 기여를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득의는 유일하게 그리스도의 공적들로부터 온다. 그리스도가 행한 것을 받는 것이 신앙의 자리이며 이 점에 있어서 신앙은 수동적이다. 그것은 그 나름의 권리로 공적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으로부터 신앙이 모든 점에 있어서 수동적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칼빈은 특히 신앙이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헬름은 말하였다.
또한 켄달은 칼빈의 말을 인용하면서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단순히 ‘의를 받는 도구’(instrumentum), 우리의 득의의 지식을 전달하는 ‘일종의 그릇’(quasi vasi), ‘말하자면 보상이 지불될 수 없는 수동적인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켄달은 “칼빈에게 있어 도구로서의 신앙은 어두운 눈을 여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웨스트민스터 성직자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님의 선행 은총의 맥락 안에 있지만 인간의 행위이다”라고 말하였다.
켄달의 이런 주장에 대해 헬름은 칼빈의 말을 다음과 같이 길게 인용하고 켄달을 비판하였다.
적절하게 말하여서 우리는 하나님만이 의롭다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이 동일한 기능을 그리스도에게 돌린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에게 의를 위해 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을 일종의 그릇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비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찾기 위해 우리의 영혼의 입을 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를 받는 도구에 불과한 신앙이 이 큰 유익의 질료인이며 동시에 창시자와 사역자인 그리스도와 무지스럽게 혼동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신앙’이라는 용어가 득의가 고려될 때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였다(Inst. Ⅲ. xi. 7).
“여기서 다시 칼빈이 신앙이 득의에 있어서 행하는 역할을 마음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부수적으로 신앙에 어떤 능동적인 힘들-그것은 ‘그리스도의 은총을 찾는다’-을 부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헬름은 주장하였다. 그래서 헬름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켄달이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이 수동적이지만 퓨리탄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능동적이며 배타적으로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틀렸다. 칼빈과 퓨리탄들 모두에게 있어서 능동성과 수동성의 요소들이 다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이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혹은 하나님의 행위인가 인간의 행위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대답될 수 없을 것 같다. 전술한 바와 같이 칼빈은 “신앙은 성령의 주된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칼빈은 스콜라 신학자들의 신앙론을 비판하면서 “그들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 신앙을 얻는지 아니면 신앙을 통해 성령이 그의 입양의 증인이 되는지 보았어야 하였다”라고 말함으로써 신앙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였다. 이 진술들에 의하면 신앙은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은 수동적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칼빈은 오지안더(Osiander)의 주장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신앙이 그 자체로 득의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며 단지 그것이 그리스도를 받는 한 그러하다는 오지안더의 반론을 기꺼이 인정한다. 만약 신앙이 그 자체로 혹은 어떤 내재적 능력에 의해 의롭다 한다면, 신앙은 항상 약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것은 이것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행할 것이다.” 칼빈은 여기서 신앙은 항상 약하고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과연 성령의 일을 약하고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칼빈은 고린도전서 11:28 주석에서 “참으로 요구되는 것은 완전한 신앙 혹은 회개가 아니다.…그러나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의를 열망하는 당신의 의도에 있어서 진지하다면, 만약 당신 자신의 비천함에 대한 지식에 의해 겸손해져서 당신이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돌아가고 그 위에 의존한다면 당신이 이 식탁에 다가가기에 합당한 손님임을 확신한다.…신앙은 비록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합당하지 않은 자를 합당하게 만든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고린도후서 13:5 주석에서는 “그러므로 유일한 참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게 하는 것인데, 의심스러운 견해로가 아니라 확고하고 확실한 확신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자”고 말하였다. 이상의 구절들은 신앙을 인간의 행위로, 능동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한다.
그러면 칼빈은 신앙은 두 종류가 있다고 보았는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교육의 목적을 위해 신앙의 다양한 형태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불경건한 자들 중에 하나님의 지식의 어떤 종류가 존재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원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성서가 가르치는 것처럼-경건한 자들 중에는 단지 하나의 종류의 신앙이 있다고 인정하고 선포한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이며 그 하나의 신앙은 두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즉, 신앙은 성령의 역사인 동시에 인간의 받아들임이며, 그리고 그 둘 중에 성령의 역사가 중심적이고 인간의 받아들임은 주변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요컨대,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님의 행위인가 인간의 행위인가, 혹은 인간 편에 보아서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바른 대답은 하나님의 행위가 중심적이고 인간의 행위는 주변적이며, 수동적인 면이 중심적이고 능동적인 면이 주변적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제18강 신앙론 (3)
켄달은 칼빈은 신앙과 확신을 구별하지 않았으나 후의 칼빈주의자들은 이 둘을 구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결코 ‘조건’이 아니었다. 그의 말로 하면 신앙은 ‘보상이 지불될 수 없는’ 수동적인 일이다.…칼빈이 구원을 절대적으로 거저 주는 것으로 만들기 시작하였을 때 그는 성공하였다-심지어 확신의 선물을 그리스도 자신의 선물로 신속히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칼빈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동일하다. 칼빈은 그의 아들을 신앙의 ‘조건’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주었다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신앙이다”고 켄달은 말하였다. 그러나 켄달은 칼빈주의자이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저자인 “우르시누스(Ursinus)는 신앙을 ‘확실한 지식’으로 정의하면서 그는 또한 ‘선한 양심이 확실한 지식, 즉 우리가 가진 신앙’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양심은 지성에 있는 ‘실천적 삼단논법’ 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르시누스에게 있어서는 선한 양심이 확신의 근거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켄달은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성직자들은 베자와 공통적으로 칼빈의 신앙론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앙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켄달의 이런 주장에 대해 비크는 이렇게 비판하였다. “켄달은 칼빈과 하이델베르크 신학자들 사이에 신앙과 확신의 개념들에 있어서 차이들이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지만 이들 차이들은 대체로 본질의 문제라기보다 정도의 문제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Olevianus) 각각이 확신의 교리에 관하여 독특한 강조점들을 양적으로 칼빈을 넘어서 가지고 있었지만 질적으로 칼빈에게 상반되게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비크는 이렇게 말하였다. “종교개혁자들과 퓨리탄들은 대부분 신자가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약속들을 참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성령의 능력 있는 조명 없이는 어느 정도의 안정을 가지고도 자신을 볼 수 없다고 가르쳤다. 참된 확신에 있어서는 모든 점에서 하나님의 영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본질적이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성령의 적용 없이는 자기 기만과 열매 없는 삶을 초래한다. 성령의 조명 없이는 자기 검토가 지나친 내향화, 굴종, 및 율법주의로 간다. 성령의 증거가 하나님의 약속들과 자기 검토에서 분리될 때 비성서적 신비주의와 지나친 감정주의를 초래하기 쉽다. 칼빈,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및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있어서 확신의 이 세 큰 가닥들은 함께 속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과 구별되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가르침이 있었는가, 혹은 칼빈에게 실천적 삼단논법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이라는 저작이 나온 이후 많이 논쟁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켄달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선택된 자 수에 있음을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설득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신앙의 직접적 행위에 의해 안다. 이 까닭에 칼빈은 ‘만약 피기우스(Pighius)가 내가 선택된 자임을 어떻게 아는가고 묻는다면 나는 그리스도가 나에게 일천 증거들 이상이라고 대답한다’고 확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켄달은 니젤의 말을 인용하여 “니젤은…칼빈이 실천적 삼단논법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176). 나아가서 그는 그것에 대해 경고한다(181)”고 말하였다.
그러나 리드는 칼빈의 베드로후서 1:10 주석을 인용하면서 켄달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즉 만약 선한 양심과 삶의 고결성이 우리의 신앙고백에 상응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주님에 의해 선택을 받았으며 헛되이 부름을 받지 않았다는 한 증거이다.
…삶의 순수성이 적절하게 선택의 증거와 확증이라 불리운다. 그것에 의해 신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입증할 뿐만 아니라 이 신뢰 속에서 그들이 그외 어떤 것[즉, 예수 그리스도]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 있다고 확증한다.
그래서 리드는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다른 사람들이 칼빈의 가르침에 상반되게 확신은 선행에 의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정확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하였다.
니젤과 켄달은 칼빈에게는 실천적 삼단논법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비크는 칼빈에게 실천적 삼단논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비크는 다음과 같이 빌립보서 1:6 주석을 인용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유익들을 끊임없이 명상하라. 이는 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격려하고 확증하며 그들의 마음 속에 항상 이 삼단논법을 숙고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예언자가 증거한 것처럼(시 138:8; 사 64:8) 그 자신의 손들이 시작한 일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손들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우리 안에 시작한 것을 완성할 것이다.
이어서 비크는 “요컨대 칼빈은 실천적 삼단논법의 오용에 대해 경고하는 만큼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었다.
켄달과 그의 반대자들이 인용한 구절들을 함께 살펴볼 때 칼빈은 실천적 삼단논법을 부정한 것 같지 않다. 칼빈은 요한일서 주석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신앙이 행위들에 근거한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비록 모든 사람이 그의 행위들로부터 그의 신앙에 대한 증거를 가지지만 신앙이 행위들에 근거된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들이 표시로서 첨가된 후속적 증거이다. 신앙의 확실성은 그리스도의 은총 속에만 있다. 그러나 삶의 경건성과 거룩성은 참된 신앙을 하나님에 대한 허구적이고 죽은 지식으로부터 구별지어 준다.
이 구절을 볼 때 칼빈은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부정하지만 신앙에는 행위가 따르며, 그 행위는 참된 신앙의 증거임을 주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표시로서 첨가된 후속적 증거이다. 신앙의 확신의 문제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총, 그리스도의 공적, 성령의 역사이지만 삶의 표적들도 주변적인 것으로간주할 수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 자신의 양심의 순수성이 그들에게 다소의 위로와 확신을 가져준다.
…성도들은 그것이 그들 자신의 구원을 기초하고 세우는 문제일 때 행위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에만 그들의 눈을 돌린다.…그러나 우리는 그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자애의 표시들에 의해 이 신앙을 뒷받침하고 강화하기를 금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칼빈은 구원의 확신을 위해 하나님의 선을 바라볼 것을 주장하지만 양심의 순수성이 다소의 확신을 줄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구원의 동인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다. 질료인은 성자 하나님의 복종이다. 도구인은 성령의 조명, 즉 신앙이다. 목적인은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의 영광이다. 이들은 주님이 행위들을 열등한 원인들로 받아들이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칼빈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중심에 두지만 행위들을 열등한 원인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컨대 칼빈은 구원의 확신의 문제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은 하나님의 자비, 그리스도의 공적, 성령의 역사인 것으로 보았지만, 신자의 삶에 근거한 확신도 주변적인 것으로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칼빈에게 있어 실천적 삼단논법은 주변적인 것으로나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칼빈의 신앙론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칼빈의 신앙관이 주지주의적이었는가 주의주의적이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켄달은 칼빈은 주지주의적이었으나 칼빈주의자들은 주의주의적이었다고 주장하였으나 뮬러는 칼빈은 주의주의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본고에서살펴본 바에 의하면 칼빈은 신앙에 있어서 지성과 의지를 다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성보다는 의지를 더 강조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환언하면 칼빈은 신앙에 있어서 의지의 역할을 중심에 두고 지성의 역할을 주변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수동적이었는가 능동적이었는가, 혹은 인간의 행위이었는가 하나님의 행위이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본고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성령의 행위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이었으며,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행위가 중심적이고 인간의 행위가 주변적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셋째는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과 구원의 확신은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켄달은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확신적인 신앙으로 신앙과 확신이 구별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으나 비크는 칼빈에게는 삶에 근거한 구원의 확신이라고 하는 교리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도 본고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칼빈에게는 하나님의 자비, 그리스도의 공적, 성령의 역사가 중심적이었으나, 신자의 삶에 근거한 구원의 확신에 관한 교리가 주변적인 것으로나마 존재하였다. 요컨대 칼빈은 신앙론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점들을 중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의 관계로 잘 정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후의 칼빈주의자들이 칼빈이 주변적인 것으로 본 것을 부각시켰을 때 칼빈의 사상은 다소의 왜곡을 피할 수가 없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