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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플라톤의 사상적 배경

플라톤의 사상에 영향을 준 이는 피타고라스와 파르미네데스다. 원래 문학도였던 그는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그간 썼던 비극을 다 불태웠다고 한다.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아테네를 떠나 방황하게 되는데 이때 만난 이가 바로 피타고라스 학파와 파르미네데스 학파다.
그의 망명지였던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요 지역 중 하나였다. 그는 이곳에서 영혼론과 수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들은 오르페우스 교의 한 종파이기도 해서 사후세계와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신성에 이르면 마침내 윤회를 그치고 영원에 든다고 믿었는데 독특하게도 이를 위한 훈련 중 하나가 수학의 공부라고 한다. 현대 뇌과학의 관점으로 보면 아마도 수학을 통해 전전두엽의 활성화를 경험했던 듯 하다. 서양의 윤회론은 그런 점에서 좀더 이성적이다. 이를 물려받은 플라톤이 펼친 사상이 이데아론이다.
타란토를 떠난 플라톤은 이탈리아 서부 해안 도시 엘레아로 가서 파르메니데스 학파에게 배운다. 이들은 변하는 것은 없다고 보았고 만물은 일자로 수렴된다고 보았다. 이들이 말하는 변하는 것은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반야심경의 "색"과 금강경의 "상"으로 그저 우리 마음이 꾸며낸 허상이라고 보았다. 없다가 있거나 있다가 없는 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핵심 개념이 된다.
마흔이 된 플라톤은 시칠리아의 군주에게 정치 철학을 제시하는 관원이 되는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칼뱅이 기독교 강요를 써서 군주에게 바치는 전통은 플라톤 시절부터 내려오던 이탈리아의 전통이며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한 것과 같이 군주에게는 통치철헉이 필요했기에 이 만남이 이뤄졌으나 이들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마침내,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그 유명한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그 현판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오지 말라"라고 써 있었는데 이는 피타고라스의 영향이자 그의 이데아론을 함축하는 표현이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아테네의 주요 정치 지도자가 된다. 이는 약 900년 가량 유지되다가 동로마 황제에 의해 기독교 가르침에 위배된다 하여 폐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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