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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강의

기독교적 원리를 따른 핵심감정 발견과 성화의 과정

기독교적 원리를 따른 핵심감정의 발견과 성화의 과정


노승수 목사



1. 핵심감정의 정의


핵심감정이란 한 인간의 의지와 지성과 감정의 중심에서 타락한 인간의 육적 본성을 지배하는 중심을 일컫는다. 이 감정은 한 개인이 자신을 양육한 양육자의 반복되는 양육태도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일어난다. 핵심감정은 아동기 때, 양육관계에서 정서적 상호작용이 많았던 사람, 양육의 주요 대상과의 관계에서 주로 형성된다. 핵심감정이란 용어는 이동식(1970)이 처음 사용했는데, 핵심감정은 "한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다 베여 있다, 쌀가마니의 어디를 찔러도 쌀이 나온다."라고 자주 표현했다. 이런 내용은 한 번 형성된 감정이나 버릇은 평생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17세기 개혁신학자들은 이런 심리적 심성을 설명하기 위해 4가지 테크니컬한 개념을 사용했다. innata, insita, aqusita, infusa, 그중에서 핵심감정은 앞에 언급한 3가지 특성을 지닌다. 아담의 첫 범죄로 타락한 인간이 유전한 죄라는 점에서 innata이고 양육관계 속에서 발현된다는 점에서 insita이며 그렇게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aqusita이다. 이에 반대되는 것이 infusa로 믿음의 속성을 의미한다. 자연인으로 습관(habitus)은 출생과 성장의 과정을 통해 죄의 본성으로 성경이 말하는 육의 본성으로 우리 내면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오이디푸스기에 내사된 부모의 원상이 칼빈이 말하는 종교의 씨로 기능해서 왜곡된 형태지만 하나님 표상으로 우리 내면에서 종교성의 접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죄인되고 부패한 인간의 본성의 구체적인 결과물인 이런 정서는 태아기, 유아기, 아동기 때에 형성되고 성격적 특성으로 드러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인간 본성의 연속성은 인간의 경험에서도 관측된다. 성경과 개혁신학은 이런 인간의 본성의 면을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이라고 설명한다. 태어날 때 지닌 본성은 어릴 때 몸에 버릇으로 베고 그 속에 잠재된 죄성은 고쳐지지 않고 평생 동안 지속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태아기, 유아기에 형성된 감정양식은 구원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활양식 전반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핵심감정은 무의식과 본성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으로 한 개인의 삶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작용하는 힘이다. 그러나 핵심감정에 이렇게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건강한 면이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다. 동시에 지금 여기에 나로서 내면의 하나님의 표상을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과거의 감정에 얽매여 대상과 하나님, 그리고 자신을 왜곡하여 힘들게 하는 면이 서로 병존한다. 따라서 핵심감정과 그 역동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나를 지금 여기에 살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자유하게 되고 어려서 내사된 부모 원상에서 비롯된 하나님 표상이 수정되어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자연을 잘 다스리는 데 충실한 내가 되는 데 이 훈련의 목적이 있다. 


2. 핵심감정의 형성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모태에서 죄 중에 잉태되었다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 죄의 출발이 태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의 생성부터 모든 영역이 다 타락했다고 본다. 이렇게 내재된 본성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태아기를 지나 성장하는 동안 양육자를 비롯한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태아는 어머니의 몸과 영혼에 결탁되어 있다. 모체가 환경으로부터 경험하는 모든 것과 모체가 지닌 신체적 느낌과 정서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정서가 발달한다. 아이는 출생 후부터 자신의 양육자와 맺는 대상관계에서 몸과 영혼의 추동(Treibe, affection)은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원래 아담에게서 이 추동의 힘은 삼위하나님을 향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타락한 후 출생하는 모든 인류의 추동의 힘은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이런 아이의 욕망에 대해 보이는 양육자의 반응과 추동의 힘이 상호작용하면서 감정패턴이 형성된다. 0-3세 동안은 추동의 힘은 자기에게 집중되고 4-6세의 오이디푸스기 동안은 대상에 대해 집중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기 동안 아빠와의 경쟁은 대상을 내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내사된 대상이자 중간 대상으로 하나님 표상이 생성된다. 이는 칼빈이 말한 종교의 씨로 볼 수 있으며 인간의 종교성의 원천이 된다. 이런 상호작용은 대략 6세에 이르러 그 기초가 어느 정도 굳어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정서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야단 맞는 것을 두려워하던 한 청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잦은 꾸지람과 야단을 맞았다. 이 청년은 커서 직장에 취직을 했고 취직한 직장의 상사는 자상하고 친절한 상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두려워하고 어려워하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하고 늘 수동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상사는 그에게 친절하게 불러서 업무를 일러 주었지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배울 수 없었고 필요한 질문을 해야 했지만 어려워서 묻지 못하고 그로 인해 결국 일처리는 상사와 회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중간 점검 때는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고 거짓말이나 보고 누락이 반복되었다. 이 청년의 행동은 상사의 마음에 짜증과 야단 치고 싶은 마음의 압박감을 더했다. 이 청년은 이 상사에게 자기 아버지의 역할을 강요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강요한 대로 상사가 반응을 하면 이 청년은 다소간의 긴장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한편으로는 야단 맞는 것과 그 두려움을 매우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이 청년은 상대에게 이 역할을 강요하고 강요 당한 상대가 그 역할을 수행해주면 정서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한 편으로는 해방을 원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해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경험한 세계로서 대상이 자신을 야단치는 존재이고 이는 하나님 표상으로도 존재한다. 온 우주가 자기를 야단 치는 것 같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는 존재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대상들과 맺었던 관계가 모든 세계가 된다. 사실상의 우리의 개인적이며 은밀한 세계관인 셈이다. 


1) 태아


한 연구에 의하면, 임신부가 강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임신 초기에 겪으면 아이에게 입술갈림증(순열, 脣裂)과 입천장갈림증(구개열, 口蓋裂)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산모가 스트레스가 많고 태아에게 애정도 없을 때, 신경계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태아의 신체구조 자체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처럼 생리적 힘에 의해서(추동의 힘) 신경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 추동의 힘은 정신으로 표상될 수밖에 없다. 이는 영혼과 결탁된 몸의 본성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임신모의 마음으로 표상되는 추동의 힘이 아이의 몸의 형성과 그 추동의 힘으로 출현하는 심리적 탄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스틸만 박사의 연구(스위스의 소아과 의사)에 의하면 대개 유아는 임신 중의 어머니의 모든 습관들을 그대로 닮는다. 이는 다윗의 시편이 증거한 바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태에서 죄중에 잉태되고 그 모체로부터 죄의 형질을 전달(propagation) 받는다. 엄마의 마음과 몸에 깃든 죄와 그 추동의 힘이 자녀에게로 그대로 대물림 된다. 임신 10개월 동안의 어머니의 조그만 마음의 변화에 따라 아이가 평생 갖게 될 성격과 몸의 취약점이 될 것이다. 아이의 건강이나 정신적인 특성의 대부분이 임신 중에 이미 결정된다. 


구약성경은 어머니의 자궁(םהר)과 긍휼(םהר)이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원래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음으로 자궁과 긍휼은 실제적으로는 같은 단어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돌보심이 있었던 에덴은 인간의 영적 자궁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유대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에 의하면, 에덴의 생명나무는 뿌리가 하늘에 있는 나무이다.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아니라 하늘에 뿌리를 두고 땅으로 향해 자라는 나무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거듭남이란 표현은 달리 번역하면, 위로부터 나야한다고 번역할 수 있다. 인간의 거듭남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완전한 긍정의 영적 자궁에 안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1) 태아 때 핵심감정이 형성되는 사례


핵심감정은 초기 아동기 때 주로 부모와의 관계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주요 양육자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아동의 반응으로 핵심감정이 형성된다. 그러나 Stanislay Grof(1987)에 의하면, 체험의 기억은 단편적이거나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정리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성질을 갖는 체험이나 감정-강렬한 감정이나 강렬한 육체적 고통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핵(核)이 될 수 있는 체험-을 중심으로 그것과 동질의 체험(감정, 이미지, 신체감각에서 유사한 체험)이 기공간의 제한을 넘어서 하나로 모아진, 이른바 포도송이와 같은 덩어리(cluster: 군)로 기억된다. 회고적 자전적 영역의 무의식을 통과하고 나면 탄생에 수반했던 심리체험의 영역(분만 전후의 무의식 영역)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임산부의 심리 정서적 상태가 태아에게 생리적 감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태교(prenatal education) 이론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물론, 현대의학은 태아나 신생아는 뇌의 신경조직이 아직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체험을 기억할 수도 없고, 상기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Stanislay Grof는 출생 전후의 체험에 수반했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궁-산도-탄생을 어떻게 체험하느냐가 성격형성의 가장 기본적이며 결정적인 원형, 모형(matrix)이 된다고 한다(1998, 정인석). 


2) 유아기 및 아동기 


출생 후 유아는 주요 인물과 돌봄과 양육관계를 맺으면서,  대략 6세까지 주요 대상에게 의존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게 된다. 자기 필요를 채우기에 무기력한 유아는 양육자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다양한 적응 방식을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몸과 영혼의 추동의 힘이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만큼 충족된다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의 기초가 된다. 0-3세 기간 동안 추동의 힘이 자기에게 집중되는 것은 병리가 아니라 건강한 주체의 출발이다. 그리고 4-6세 기간 동안 이 추동의 힘은 대상을 향한다. 0-6세의 어느 때에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지만 충분치 않거나, 원하는 바가 좌절되는 경험을 양육자와 양육 환경을 통해서 반복적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양육자나 양육환경은 일정한 습관을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환경의 변동이나 양육자의 상실 등의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유아는 여러 정서들을 경험한다. 이런 정서 중에 유아에게 결정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정서와 느낌이 핵심감정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런 감정 패턴은 일단 형성되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개인의 나머지 생애동안 핵심적 부분이 지속된다. 프로이트가 말한 바와 같이 일단 우리가 겪어온 아동기 경험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이런 아동기 경험이 인격의 핵심이 된다. 우리가 지닌 0-6세의 감정양식은 죄의 습성이 된다. 이런 일그러짐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고결한 정신의 기초가 되며, 또 다른 연약한 자들에게는 정신병리의 기초가 된다.


프로이트는 “1-6”라고 간단히 불릴 수 있는 임신으로부터 약 6세에 이르는 아동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정신증과 기타 심각한 장애의 원천은 0-3세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신경증과 가벼운 성격장애의 원천은 0-6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초기 아동기 때, 부모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았으며,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졌는지가 성격과 감정패턴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건강한 사랑이 중요하다. 그러나 양육자의 어떤 돌봄도 완전할 수 없다. 하나님을 모사하는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출생하는 자녀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하나님 표상을 내사할 수 없게 되었다. 중생한 신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죄의 세력이 남아 있고 그의 양육자로서의 양육과정에도 죄의 일그러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반드시 죄의 세력으로서 핵심감정의 형성한다. 성경은 인간의 성화를 성령의 열매(갈 5:22-23)로 표현하는데 이들 모두가 인격적 특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인격적 특성들은 성령의 지배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마술적 특성들이 아니라 한 인간이 하나님께 끊임없이 설득되고, 세월의 연단 속에서 얻어지는 것들이라서, 성령의 지배력의 순간적 증가들이 이런 인격적 특성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가 성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단순히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아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핵심감정은 나를 그 어떤 것보다 더 깊이 정확히 알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3. 핵심감정의 발견


1) 최초 기억 및 초기 기억


최초 기억은 생애 첫 기억으로 그만큼 자신에게 의미를 지닌다. 완전 스토리의 기억이 아니라 파편적 장면이나 인상일 수도 있다. 이를 대표 표상이라고 하는데 회상 내용의 상황과 주변 인물이나 대상들, 그 때의 느낌과 정서를 살펴보면 한 사람의 핵심감정을 알 수 있다. 또한 생애 초기에 기억하는 여러 사건과 상황들을 떠올려 그 때의 느낌과 그러한 상황을 떠올렸을 때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주된 감정들의 고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핵심감정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인 사람의 최초 기억은 다음과 같다. 툇마루가 있는 가운데 마루를 둔 방 두 칸짜리 집의 작은 방에 장난감과 함께 부모가 자신을 방에 밀어 넣는 경험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부모는 방 밖에 있다는 느낌이다. 왠지 이 장면을 떠올리면 혼자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내담자는 이런 느낌을 사람들의 무표정에서 자신이 하는 인사를 받지 못한 데서, 대화 중에 상대가 자기 말에 관심이 없을 때에  혼자된 듯한 이 때의 감정들이 떠오르고 그 감정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곤 했고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


2) 아동기부터 반복되는 꿈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우리의 정신생활 속의 무의식적 요소를 알 수 있는 왕도라 했다. 꿈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의 드러내지 못했던 사고와 정서의 반영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주된 정서를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아동기부터 반복되는 꿈에는 한 사람이 진정 원하고 바라는 바와 그렇지 못했을 때 형성되는 정서와 사고들이 표현되지 못한 채 미해결된 과제로 남아 무의식적 작용으로 표현된다. 상담 장면에서 첫 꿈은 내담자가 무의식적으로 상담자나 상담의 장래에 대한 느낌을 집약적으로 상징하고 또한 그의 문제의 핵심을 표현한다. 반복되는 꿈은 그 사람의 인생의 주제를 상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사람의 노이로제와 인격의 가장 중요한 면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꿈의 의미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낮 동안의 잔재(day-residue), 2. 핵심역동의 표현(dynamic unconsciousness), 3. 심리적 필요(psychological need), 4. 영적 요소(spiritual content)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각각 따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혼합된 이미지로 상징된다. 꿈의 심리적 기전은 농축(condensation)과 상징화(symbolization)인데, 전자는 심리적 에너지가 한 대상에 집중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후자는 자신의 정서적 내용을 어떤 상징물로 표상하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에서의 공포는 호랑이로, 6-70년대 공포는 변소로 응축되었다. 모성에 대한 공포가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로 상징화되었다. 꿈을 생리학(physiology)적 기전에서 보면, 누구나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는 경우는 없다. 인간의 뇌파는 α, β, δ, θ파 등이 나타나는데 각성 상태에 나타나는 파장이 통상 β파라고 하고 수면 중에는 여러 파장들이 나타나다가 sleep spindle이 나타나는데 이 규칙적 파장을 α파라고 한다. 이 파장이 나타날 때, 또 하나의 현상이 관찰되는데 안구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수면상태를 REM-Sleep(Rapid Eye Movement Sleep)이라고 하고 통상 인간 수면의 20%를 차지하며 이 시기에 깨우게 되면 꿈을 보고한다. 나머지 80%의 수면상태를 Non REM-Sleep(Non Rapid Eye Movement Sleep)이라고 하고 δ나 θ파 등의 파장이 관찰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인간에게 REM-Sleep을 박탈했을 경우 1주일 이내 환청 환시와 같은 정신증적 증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현대과학이 다 밝혀내지 못한 꿈의 신비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심리치료에 응용하기도 하는데,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환자의 경우 안구운동만으로 외상장애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꿈의 기전이 나타나도록 하는 EMDR이라는 치료프로그램에도 응용되고 있다. 


3) 좋아하는 노래


사람들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한다. 이런 정서의 표현의 수단 중 한국인의 대표적인 하나가 노래다. 노래는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 행위 양태, 정서 등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 공유하고 있고, 공감, 공유된 행위 양태나 정서 등은 사람들의 문화적 심리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주로 부르는 노래,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 등의 의미를 돌이켜 보면, 그 노래 속에 담겨 있는 정서와 노래 가사 속의 인물에 자신을 동일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핵심감정이 슬픔인 경우, 이별의 아픔이나 체념적인 내용을 다룬 노래를 통해 자신의 슬픔을 대신하고, 억울함인 경우, 한탄조의 타령 등을 통해 자신의 한을 표현하기도 한다.


4) 취미나 직업


핵심감정에 따라 자신이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이 달라진다.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엄마로부터 아들과 차별대우를 받고 아들인 동생의 능력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키워가며 성장한 여성은 남자들과의 끊임없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애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부모에게 인정받는 길이 동생보다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다.  이 전형은 그녀의 세계관이 되고 따라서 대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남자들이 많은 공대, 이과대로 학과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동생과 경쟁에서 남성인 동생을 향해 부모가 두는 가치와 인정이 경쟁의 척도가 되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의존해서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길이기 때문에 은연 중에 남성적 가치들이 몸에 베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해 자신은 별 의미가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사람의 경우, 끊임없이 의미 있는 일을 찾아다닌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그의 능력을 인정해도 자신의 기준은 늘 자신의 양육자의 시선이 내사된 기준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양육자가 만족할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면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낀다. 따라서 주요인물이 인정해주기 전에는 끝없이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가치와 의미를 두는 일에서 대상 표상과 하나님 표상을 알 수 있으며 왜 내가 이런 의미를 찾아 일을 선택했는지를 살펴보면 자신의 내사된 기준과 그것으로부터 좌절된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이런 선택이 핵심감정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4. 핵심감정과 대상관계


1) 부모․자녀 관계


핵심감정은 양육과정에서 양육자의 태도에 의해서 투사적 동일시라는 과정을 통해서 대물림된다. 프로이트는 역전이를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해서 가지는 전이 감정이라고 본 반면 시카고정신분석학파의 알렉산더는 내담자가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를 했다. 이것은 후에 대상관계 이론의 단초가 되었다. 예를 들어, 엄마에게 늘 비난을 듣던 딸은 자신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자신은 약자이고 엄마는 강자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엄마에 대한 비난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난을 당하는 중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엄마의 요구를 충족시켜 적응하려는 기제는 아주 어려서부터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 엄마의 기준이 자기 안에 내사된다.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딸이 커서 결혼해서 딸 아이를 낳고 아이를 대하는 기준은 자신도 모르게 내사된 엄마의 기준으로 완벽을 구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그녀는 아이가 자람에 따라 아이의 행동이 점차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고 비난하는 횟수가 잦고 비난 후 후회를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할머니의 핵심감정은 엄마에게, 엄마는 딸에게 그렇게 대물림된다. 정신과에서 조현병은 3대만에 발병한다는 말이 있다. 이 역시 대물림되는 핵심감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영국의 산부인과학회의 산모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임신부의 고혈압으로 인한 영향을 1로 볼 때 남편과 아내의 부조화는 6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태아가 부모의 마음상태를 알기 때문이다. 아빠가 무관심해져서 엄마가 섭섭해 하면 태아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 뇌의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임신부의 혈액을 타고 태반을 통과해서 태아의 간, 뇌에도 전달됨으로써, 태아에게도 같은 호르몬 변화가 나타난다. 또한 태어난 다음에도 산모의 상태는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이 된다. 앞선 예에서도 살폈듯이, 엄마의 마음과 달리 자기 안에 내사된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은 엄마의 양육태도로 나타나고 아이는 엄마에게 적응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 기준을 내사해서 자기 기준으로 삼는 불행이 반복되게 된다. 


2) 부부관계


대부분은 내 핵심감정이 무엇인지, 내게 왜 그런 감정이 생기며 타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모른 채 산다. 그러다가 결혼적령기에 이르면 자신의 주된 정서와 이끌리는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 예컨대, 핵심감정이 일이 잘못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인 사람은 매사에 단정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으며 약속이나 개인 스케줄로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 다만 불안이 가중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알지 못하던 장소에 약속이 잡히면 불안감 때문에 하루 전에 미리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한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불안을 나름 통제하는 방식이다. 대체로 불안은 양육자의 양육태도가 일관성을 결여하고 양육자의 기분에 따라 바뀌는 데서 기인한다. 이런 부모의 원상이 내사되면 이 기준은 아동의 감정과 함께 불안감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확실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안이 감소하지 않으므로 늘 적절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고 이런 자신의 행동보다 타인의 행동을 더 낫게 평가하게 된다. 이 역시 내사된 부모의 기준으로서 부모의 불안이 대물림 된 것이다. 아무튼 그가 고른 배우자는 자신이 늘 불안하게 해내는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 누군가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패턴의 행동을 가진 당사자 역시 높은 불안을 핵심감정으로 지닌 사람일 개연성이 높다. 이처럼 비슷한 핵심감정을 가진 사람에게 서로 끌린다. EBS의 한 다큐에서 자기 증명 사진을 이성의 사진으로 합성해서 20장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이성 사진을 고르게 했을 때, 모든 실험 참가자가 자기 사진을 이성 사진으로 합성한 사진을 고른 것은 그리 놀라운 실험이 아니다. 인간의 추동은 근본에서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자기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핵심감정의 건강하지 못한 면이 만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혼자서는 불안을 잘 통제하는 방식이었으나 출산과 육아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통제될 수 없고 결국 불안을 표출하게 되고 이는 이혼의 빌미가 되고 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결혼과 부모 역할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결혼이 일종의 트리거가 되어서 잠재되어 있던 병리를 불러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녀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감정의 대물림으로 인해 핵심감정은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지배하고, 그 자녀에게도 대물림되며,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된다. 그러므로 중요과업은 이런 핵심감정의 건강하지 못한 부분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대인관계


0-3세 동안 주요 대상과의 관계에서 추동의 힘은 자기만족을 향해 있다. 이 시기의 좌절은 정신 병리의 기초가 된다. 대체로 4-6세 동안 추동의 힘은 주요 대상인 양육자를 향하게 되며 이 때 좌절과 함께 양육자의 원상이 내사되는 오이디푸스기를 겪고 이 과정에서 주로 핵심감정이 형성된다. 물론 이전 시기인 0-3세에도 자기애적 추동의 힘이 좌절되면서 핵심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역시 양육자의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결국 4-6세와 아동기를 통해 핵심감정은 반복적으로 재경험될 수밖에 없다. 아동기를 지나면서 가족 이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원형적 의사소통인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아동은 자신의 양육자에게 적응된 행동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타인들은 아이가 보내는 일련의 정서적 신호들을 감지한다. 예컨대, 대게의 엄마들은 아이가 배고파 우는지 어디가 불편해 우는지 구분합니다. 이는 아이가 울음을 통해서 자신의 불편을 호소하고 이때 엄마는 경험을 통해서 젖을 먹여도 얼러도 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느끼는 짜증을 전달받는다. 이런 원초적 언어인 감정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해왔다. 그런 양육자가 계속해서 아이를 짜증이란 태도로 대했다면 아이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까탈스럽게 자랄 것이다. 이런 행동은 다른 성인과 친구들에게 불편감을 느끼도록 하고 상대적으로 정서적으로 취약한 누군가는 아이에게 짜증섞인 반응을 쏟아 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 안에 내사된 부모의 원상을 대상 세계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이다. 가령 핵심감정이 소외감일 경우, 학령기나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친한 사람들과의 집단을 형성하지 못한다. 늘 자신이 없고 쉽게 다가가지 못하며 조심스러워 한다. 이는 내사된 원상에 따라 타인이 자신을 그렇게 대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인데 이것이 타인의 태도가 아니라 자기 문제라는 사실을 대부분 자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항상 또래들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며 외로움과 슬픔 등을 느낀다. 마음속으로는 누군가와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면서도 실재로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려고 하면, 내사된 원상이 부정적인 정서적 신호들을 보내고 이것이 불편해진 아이는 자신이 원래 적응한 상태, 곧 소외되어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이 그나마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편안 상태이기 때문이다. 


4) 업무와의 관계


핵심감정은 직업 선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추동의 힘이 자기보다 대상에 더 크게 가 있을 경우, 다시 말해 오이디푸스기의 내사된 원상의 힘이 지나치게 크게 될 경우,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엇을 결정하기보다 항상 타인의 의사에 자기 결정을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것이 더 심해지면 타인의 얼굴의 기색을 심하게 살피며 눈치보며 그것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당사자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면서 늘 강요하는 부모의 원상에 대한 감정이 자신의 정서를 압박하기 때문에 일상을 타인에게 맞출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점심을 이미 먹었음에도 대학의 선배나 친구가 식사할 친구가 없다는 호소에 그 친구와 식사를 또 하는 수고를 하고 돌아서서 후회를 한다. 이런 특성은 업무에서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추거나 업무에서 여러 사람들의 팀웍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때로 새로운 분야을 개척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위치에 있을 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핵심감정이 부담감일 경우, 주어진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잘 해낼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주위의 주요 대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지나치게 의식함으로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그리고 그의 이런 태도는 내사된 원상의 세계로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원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외부의 타인에게 발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일을 다 끝내기도 전에 에너지가 소진되고 마다. 완벽을 기할수록 일의 진척은 더딜 수밖에 없고 결국 원상으로부터 들었던 목소리가 타인의 입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5. 핵심감정의 중요성


1) 상호의존적 주체


태초에 아담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면서도 만물을 다스림을 위탁받은 존재였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존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주체적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이는 삼위하나님이 서로 간에 구분되시는 의식적 주체이시면 동시에 서로에게 의탁하시는 존재라는 특성의 반영이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 가장 무기력하게 부모의 양육에 의존하는 생물로 출생하며 가장 긴 양육기간을 지닌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원상이 아이에게 내사되어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 교류하는 심리적이며 영적인 끈이 형성된다. 이는 마치 삼위 하나님께서 상호 내주하시는 것처럼 인간 교제와 하나님의 궁극적 기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서 이 내사의 과정은 왜곡될 수밖에 없고 우리는 부로모로부터 부패를 전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락이전의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에 있어서 의존적으로 자기 안에 내사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내사된 기준에 의해서 만물을 다스리는 의식적인 주체이기도 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곧 원의(참지식, 의, 거룩)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이 중생할 때 이 원의가 회복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 곧 "이미 그러나 아직"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성향으로써 믿음이란 씨를 내사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셨고 궁극적으로 믿음이란 수단으로 성령에 의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것이나 이 생에서의 우리 삶에서 원의를 가리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핵심감정이다. 기존에 부모로부터 내사된 원상으로 하나님의 표상이 있고 이 표상에 따라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감정의 작용으로 인하여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된다. 성경은 이것을 육 혹은 육신, 또는 죄라고 묘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죄에서 자유하게 되려면, 이 감정을 면밀히 살펴,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형성되고, 과거와 현재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살펴서 이로부터 놓여나면 하나님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나의 뜻과 일치하게 되고 비로소 진정한 영적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김홍전 박사가 말한 아상(我相)의 가장 중심에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 감정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심리학적 요체가 바로 핵심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지금 여기 


마 6:30-33에 의하면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영성은 지금-여기를 사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들에 핀 백합화도 길쌈도 수고도 아니 하지만 천부께서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자궁 안에서 안식하는 대자연의 진리를 목격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 염려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는 영성이 최고의 영성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뜻은 특별계시인 성경이란 외적 인식의 원리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엄격한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탕자의 아버지로 인식하게 되는 내적 인식의 원리로서 믿음이란 수단으로만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영성은 성경을 대면하여서만 존재한다. 이를 흔히 개혁파에서는 "경건"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성경의 진술과 달리 끊임없이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염려로 현재를 오염시킨다. 이렇게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핵심감정이다. 핵심감정은 지금 여기의 삶을 방해한다. 중생한 우리의 자아와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현재를 살라고 하시며 성경을 따라 살라고 하시는데, 부모 원상과 거기에 적응 기제로서 핵심감정을 나로 생각하는 동안은 과거의 감정으로 인하여 과거에 사로 잡혀 살 수밖에 없다. 핵심감정은 과거의 주요 대상으로부터 안식과 돌봄을 얻지 못함으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금은 그 때의 현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과 긍휼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사람의 감정으로 살지 못하고 옛사람의 감정으로 그 감정을 반복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고, 선택적으로 현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현재 이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들을 철저히 살펴보고 초기 아동기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정서적 뿌리를 밟는 과정을 통해 부정적 정서를 정화시키고,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곧, 죄로 병든 자신의 모습을 주님이 용납하신 것처럼 용납하고 동시에 주님이 우리 안에 새롭게 하신 새사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3) 상담자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는 과거에 살아오는 동안 부모, 형제나 그 대리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 가졌던 핵심감정을 상담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된다. 또한 상담자가 자신의 핵심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할 때, 내담자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역전이이다. 상담자가 핵심감정으로부터 놓여나지 않으면 끊임없이 여기에 걸려 넘어진다. 내담자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핵심감정으로 인해 선택적 방식으로 내담자를 보게 되어 내담자를 제대로 도와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상담자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에게 진정한 상담자는 성령 한분이시다. 성령은 또한 말씀 가운데 조명하심으로 진리의 말씀을 우리 영혼 깊숙이 깨닫도록 도우신다. 상담자는 이러한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사역해야 하며,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상담자 자신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보고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쓰시기에 좋은 사람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상담자로서 영성지도자로서 자신의 영적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6. 핵심감정 지우기


1) 나의 불쌍한 영혼을 위한 격려


자신의 핵심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건들로 인하여 형성이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파악하고 난 후, 그것으로부터 놓여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작업이 핵심감정 지우기다. 여기서 “핵심감정을 지운다”는 표현은 과거에 자신은 어리고 힘이 없고 나약하여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했으나, 낙원을 잃어 버림으로 어느 누구도 참 위로와 격려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충족되지 못하고, 좌절된 불쌍한 영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와 거듭난 나를 동일시함으로 성경과 믿음을 따라 나를 보듬어 주고 하나님 표상을 수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자신의 핵심감정을 지켜보고, 그것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핵심감정을 지우는 작업은 그 어느 과정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 지우기는 내적 원상에 추동의 힘이 집중 되어 있는 한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 추동의 힘은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로 초점 맞춰져야 하며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믿음으로만 알 수 있다. 그리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은 바로 탕자를 사랑하신 아버지이시며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시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현실을 주님의 마음이 되어서 자신이 자신에게 위로와 돌봄 그리고 긍휼에 격려를 하는 것이다. 


2) 나의 어린 영혼과 대화하고 공감해주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의하면 우리의 비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비참을 아는 것으로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없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위로를 얻는다. 이 사실을 모두 인지하면서 우리 정서에 있어서는 거듭나기 전 옛 사람의 정서에 붙들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듯이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감정(추동의 힘) 안에 있다. 이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불어 넣은 힘이다. 앞의 불쌍한 영혼을 위한 격려가 핵심감정의 상처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어린 영혼과의 대화는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위로와 회복에 더 초점을 맞추고 중생한 나로서의 정체성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쌍한 영혼이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과정이라면, 어린영혼과의 작업은 자신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으로 자신의 제대로 양육받지 못한 영혼을 지금부터 양육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보시며 기르시는 것을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보며 솔로몬의 입은 옷의 영광보다 아름다운 들꽃 한 송이를 대하는 안목으로 자신의 영혼을 대하는 것이다. 온 세상이 명품을 좇아가도 하나님 지으신 명품이요 작품이 자신의 영혼을 기르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의 자궁(긍휼)안에서 자신을 돌보며 영적 출생과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강의안으로 각주와 근거는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