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사는 인생
노승수 목사
산을 오르면서 주변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꼭대기만 향해 달리는 사람은 바보다. 산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친구요 벗이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속삭인다. 나뭇잎사이로 부셔지는 햇살은 숲의 아름다움을 빛의 조화 속에 들어낸다. 봄이면 솟아오르는 새싹의 기지개가 우리에게 아침인사를 한다. 나비의 날갯짓 속에 창조주의 경이로움을 만나게 되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자연스레 식혀주는 솔바람의 부드러운 손길 속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만나게 된다. 인생에는 이처럼 항상 넘어야 할 산이 존재한다. 인생은 그 자체가 우리의 여행의 동반자요 친구이다. 때론 내가 싫어하는 것도 나를 찾아오며, 때론 내가 “좋아라!” 하는 것도 나를 떠난다. 우리가 등산을 하면서 등정에 이런 저런 정경을 즐기듯이 우리의 인생 역시 그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상이라는 인생의 목적지 뿐 아니라 그 여행 자체를 즐겨야 한다.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에만 정신이 팔리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인생은 유한한 존재이며 따라서 인생에게 의미 있는 순간은 오로지 현재이다. 이것은 미래를 대비하며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참으로 현재를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를 오염시키지 말자. 지금이 쌓여야 미래가 생긴다. 지금 이곳을 놓치면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을 내일의 염려와 어제의 후회로 물들이지 말자. 등정의 여정 자체를 즐기자! 계속의 물소리도, 때론 가파른 산악 길도, 때론 능선에서 불어오는 땀을 식혀주는 산들바람도, 모두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현재를 즐기며 살 수 있는가? 사실 한국인은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아니면 아이들 공부시키기 위해서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구호는 단지 세 가지이다. “모이자, 헌금하자, 교회 짓자!” 한국 교회에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보여주는 진풍경은 이런 현상들이다. 우리가 목표를 갖는 까닭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들의 미래는 현재를 희생하면서, 얻는 미래이다. 그래서 정작 미래에 다다랐을 때, 만족보다는 허전함이 더 크다. 한국의 여인들은 자녀들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아이들이 다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식에게만 둔 고로 “빈 둥지 신드롬”으로 힘들어 하기도 한다. 현재가 없는 미래는 무의미하다.
성경은 우리의 현재를 즐기는 삶을 방해는 것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먼저는 염려이다. 보통의 경우,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염려로 오늘을 보낸다면, 내일에 대한 대비는 있을지 몰라도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까닭에 미래도 없어진다. 어떤 사람이 염려가 너무 많아서 염려 상자를 만들어서 염려가 생길 때마다 거기에 적어서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시간 염려하는 시간을 정해서 그것을 펼쳐보았더니 그중 90% 가까이가 하나마나한 염려였다고 한다. 이처럼 염려는 우리의 현재를 앗아가는 몹쓸 병이다. 둘째는 후회이다. 후회는 과거에 관한 것이다. 후회가 건설적이려면 그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대안이 있거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후회들은 현재의 시간의 낭비일 뿐 그것이 과거를 바꾸어 놓거나 현재와 미래를 바꾸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회가 많은 사람은 현재의 시간도 제대로 보내기 어렵다. 후회하는 까닭에 늘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일상의 쾌락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죽이는 일에 열중한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면서, 자신의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고, 성인들은 알코올이나 도박 기타 등등의 쾌락들을 쫓으면서 일상의 시간들을 보낸다. 이들에 삶에는 약간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즐거움인 까닭에 게임이 끝이 났을 때, 밀려드는 공허함, 그리고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다시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루 24시간이라는 동일한 시간을 선물로 매일 받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시간들로 규모 있고 생산적인 일들을 만들어 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삶을 낭비하고 만다.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는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잘 관리하는 사람의 특징은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때론 어려운 일을 만나도 낙심치 않고, 때론 즐거운 일을 만나도 그것에 메이지 않으며,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느리더라도 안간힘을 쓰며, 악을 쓰고 기를 쓰며 바동거리지 않고 인생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삶, 무한 경쟁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능사는 아니다. 경쟁의 분주함이 오히려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버리는 이 아이러니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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