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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히브리서 2장 묵상

(히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2절에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시를 가리키는데 신약은 일관되게 이런 전통을 따르고 있다. 예컨대, 스데반의 설교(사도 7:53)나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갈 3:19), 구약의 계시가 천사의 중보를 통해 주어졌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히 1:1-3이 계시의 통일성 곧 하나님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계시의 주체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통일성과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시는 차이점을 드러내주는 계시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히브리서 1장이 천사를 많이 언급하고 그것을 그리스도와 비교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계시의 주체가 누구시냐 그 계시가 어떤 매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절은 바로 구약 계시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약 계시의 통일성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공정한 보응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율법과 복음 사이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율법적 공의가 아들로 말미암아 주어진 계시에세도 더 공고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등한히 여기는 복음은 사실 복음으로서 절름발이인 셈이다.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종말 곧 구원의 완성자로 오셨고 그 보응은 신불신을 무론하고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복음이 복음되는 것은 보응과 공의가 멸실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사실을 등한히 여기는 자는 그리스도를 참되게 붙들지 않는다.

10절에서 설명하는것처럼 구원은 그리스도가 이뤄주시는 일로 고난을 통해서 완성된다. 여기 "온전하게 하심"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오경의 칠십인역의 번역에서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사용된 용어다. 이 주제는 5:8-10과 7:11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를 따라 구원자로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히 수행한 것은 바로 율법의 요구 아래 나신 것을 통해서 성취된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결되는 매개가 바로 율법인 것이다. 고대 기록론에서 “취해지지 않은 것은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합된 것은 구원된다.”(Gregory Naz., Ep., 101; cf. Or., 1. 23; 22. 13)는 고대 교부들의 이해를 잘 드러내는 본문이기도 하다. 심판은 바로 율법이 그 초점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면죄를 입는 것은 그가 율법의 심판을 대신 받기 위해서 율법의 요구를 받는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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