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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에스겔 47:1-12

에스겔 47장의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물이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계시록 21-22장에서 성전과 거기서 흐르는 강을 묘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이상은 사실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거기서 흐르는 강에 대한 변주다. 에덴동산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거기서 발견되는 보석 때문이고 이 보석 motif는 성전의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게다가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언약 공식(covenant formula)'을 보여주는 출애굽기 19:5-6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에서 소유로 번역된 세굴라(סְגוּלָּה, segullah)는 보석이라는 뜻이 있고 고대근동의 외교문서에서 종주와 봉신이 맺던 계약관계에서 쓰던 용어다. 그래서 제사장의 제복에 흉패는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물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 21:2과 9절이 말하는 어린양의 신부는 계시록 21:10-27에서 예루살렘성으로 묘사되었고 특히, 그 묘사가 보석으로 이뤄졌으며 그 측량이 사람의 측량 곧 이 성이 바로 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계 21:17). 게다가 그 성에는 성전이 따로 없는데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성전이시기 때문이다(계 21: 22).

 

이처럼 성전은 보석 motif를 통해서 언약관계와 공식을 드러내고 거기서 흐르는 강과 생수를 통해서 성령의 연합케 하심과 성례전을 보여준다. 생수의 강은 항상 생명나무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생명나무는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성례전적 상징이다. 계시록 22:1에 보면 생수의 강은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며 그 강가에는 바로 생명나무가 있다. 계시록 22:2의 잎사귀는 치료하기 위해 있더라는 구절은 오늘 본문인 에스겔 47:12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성전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생수와 강은 성령을 상징한다. 그래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칼뱅은 성례전으로 이해했다. 그 성례전의 실제적 참여는 성령의 연합하게 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성에 들어가는 일과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것 역시 그 예복을 빨아 정결케 한 자가 아니고는 불가하다(계 22:13-14). 이 예복은 마태복음 22:14의 혼인잔치의 예복이며 유대 전통을 따라 혼인잔치의 예복은 혼주가 준비하는 예복이다. 택함을 입은 자들은 이 예복이 준비되었는데 로마서 13:14과 갈 3:27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로 옷입음"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에서는 세례의 죄씻음과 함께 유비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전의 동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바다로 가서 바다를 새롭게 한다. 바다는 태초의 혼돈의 상징이기도 하며 무로부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령께서 어미새가 날개로 덮듯이 덮으셔서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창조의 힘처럼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생수는 만물을 생동케 하며 새창조의 영광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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