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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종말론 총정리 종말론 총정리 합동신학교 제공 1. 철학에 있어서의 종말론 플라톤은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는 영혼 불멸성을 가르쳤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범신론 철학에서는 이러한 종말론 사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칸트는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영혼 불멸을 주장하였으나, 19세기 관념론적 철학은 다시 범신론에 기초하여 영혼불멸의 이론을 배제하였다. 2. 사도시대에서 5세기초까지 종말 사상 초창기에는 기독교적 종말의 개별 요소 등을 잘 인식하고 있었으나 교리적인 짜임새는 부족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가까운 시기에 재림하실 것으로 여겼으므로 성도들의 관심은 미래보다는 현실에 있었다. 그리고, 처음 2세기동안에는 천년왕국설이 우세를 보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종말론은 기독교적 종말론이었다. 3. 중세시대의.. 더보기
종말론 Eschatology 종말론 Eschatology 이정석 교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구원의 완성이 실현되는 개인과 우주의 종말과 내세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관심과 신앙의 대상이다. 한국인은 52.6퍼센트가 내세 영혼의 존재를 믿으며, 42.2퍼센트가 천국이나 지옥의 존재를 인정한다(월간조선, 2000.1). 미국인은 81퍼센트가 내세의 존재를 확신하고, 76퍼센트가 천국을 71퍼센트가 지옥을 믿는다(Barna Research, 2003). 종말론의 역사 종말론은 역사적으로 본질상 상당한 혼란과 미신을 유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그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경성하며 성실하게 살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핍박상황 속에서 마라나타의 신앙이 강화되었으며, 그 당시 존재했던.. 더보기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중간상태(Intermediate State)의 교리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중간상태(Intermediate State)의 교리이정석 교수1 종말론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중심적이므로, 이 맥락에서 이해.수면설, 멸절설, 연옥설의 문제현대에 영육일체설, creatio ex nihilo, 공동체주의에 근거 반대 제기.Calvin, Westminster Confession 32.1(소37, 대86)2 영혼의 불멸과 계속적 존재psyche(마 10.28, 계 6.9, 20.4), pneuma(눅 23.46, 행 7.59, 히 12.23)psychosomatic unity가 사망에 의해 일시적으로 결핍, 영육분리고로, Platonism과 달리 육체의 부활과 재결합 고대(육체없이는 불완전)3 구약의 Sheol사자의 세계(창 37.35, 42.38, 삼상 2.6.. 더보기
바르트와 바빙크, 수프라인가 인프라인가? 바르트와 바빙크, 수프라인가 인프라인가?우병훈 목사 “바르트는 수프라이고, 바빙크는 인프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견해를 진술해 봅니다. 1. 먼저 간단히 설명하자면, 17세기의 수프라(supralapsarianism, 타락전 선택설)와 인프라(infralapsarianis, 타락후 선택설) 사이의 논쟁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신 “논리적” 지점이 타락하기 전의 인간(수프라의 견해)인가, 아니면 타락하신 이후의 인간(인프라의 견해)인가 하는 질문을 다룬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 시간과 관련한 질문이 아니라, “논리적 질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적한 것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는 시간의 선후가 무의미하지요. 따라서 수프라/인프라의 문제 역시,.. 더보기
루터에 있어서 율법의 제3용법 루터에 있어서 율법의 제3용법 손규태 교수 성공회신학논총 5(1991) pp.7-52 http://theologia.pe.kr/ I. 문제와 과제 1. 루터신학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의 중요성 종교개혁의 아버지인 루터 (Martin Luther)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신학자나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그는 종교개혁의 탁월한 영웅일 뿐만 아니라 서구역사에 사상적 근간을 이루는 인물로서 그의 신학적 가르침이나 개인의 자유와 책임성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은 교회나 사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던 것이다.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종교의 개혁을 요청했고 여기에 수반하는 새로운 인간이해는 새로운 인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를 찾아 우리의 확고한 신앙의 근거를 찾으려 할.. 더보기
칼빈의 율법과 복음이해(Die Fußnoten sind in der Hangul Datei in dergleichem directory) 칼빈의 율법과 복음이해(Die Fußnoten sind in der Hangul Datei in dergleichem directory) 유정우 교수 I. 서 론 율법과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성을 가진 문제이다. 율법은 칭의의 동기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규범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칼빈이 “율법의 제 삼 용법”을 강조하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졌기 때문에 율법이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으로써 성화와 관계되는 칼빈의 율법이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칭의의 동기와 함께 율법의 고소하는 기능을 등한히 하였는가? 이 점에서 칼빈은 오해를 받기도 한다. 율법과 복음의 주제에서 칼빈과 바울은 반대되는가? 이를테면, 칼빈은 “교리에 관하.. 더보기
4. 네 번째 소극적 표지 :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209-215) 4. 네 번째 소극적 표지 :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209-215) - 사람들이 스스로가 그런 감정들을 만들지 않았다거나 그들의 고안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 흥분시킨 것이 아니다는 것 만으로는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It is no sign that affections are gracious, or that they are otherwise, that persons did not make them themselves, or excite them of their own contrivance and by their own strength)1). 반부흥론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적인 능력과 작용을 내적으로 경험한다거나 감각적으로 .. 더보기
4. 네 번째 적극적 표지 : 하나님을 아는 지식(382-413) 4. 네 번째 적극적 표지 : 하나님을 아는 지식(382-413) - 은혜로운 감정은 지성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일들을 바르게 이해할 때 생긴다(Gracious affections do arise from the mind‘s being enlightened, richly and spiritually to understand or apprehend divine things). 양낙흥 교수는 첫 번째 표지부터 네 번째 표지까지에서 에드워즈는 사실상 신앙감정의 표지를 제시하기 보다는 그 원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고 바르게 지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원천이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원천이 있으면 결과는 자연히 따르기 때문이다.1) 에드워즈에 의하면 신앙 감정은 정신이 조명되어 하나님의 일.. 더보기
Wilhelmus a Brakel의 The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4 Vols) 조엘비키 목사님께서 무인도에 갇힌다면 성경 다음으로 가져갈 한권의 책이라고 했던 Wilhelmus a Brakel의 The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4 Vols) 이 몇년전 영어로 번역되어서 은근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얼마전 이 책의 pdf 파일을 번역자이신 Bart Elshout 께서 공개하셨다. http://www.abrakel.com/p/christians-reasonable-service.html 특징은 매우 따뜻하고, 실질적이며, 영성적이라는 것이다. 브라켈은 17세기 화란(네덜란드)의 2차 개혁 시대의 사람이다. 4권의 하드커버 책은 http://www.heritagebooks.org/products/The-Christian's-Reasonable-Service.. 더보기
성찬에 대하여(summary) 성찬에 대하여(summary) 김홍전 목사 성례에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구원의 거룩한 도리를 알게 하셔서 그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면 오직 그 사실 때문에 그는 구원의 은혜 가운데 참여하게 된다. 그 밖의 다른 보이는 형태의 수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성례라는 표증이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거나 그것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얘기다. 성례란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별한 증표로 내리신 것이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내리신 것이 아니다. 구약에도 성례가 있었지만 그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지 그 이전에는 성례라고 구체적으로 표시할 수 있을만한 무엇이 없었다(ex무지개-‘이것은 내 언약의 표증이다’창9:13)...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