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의 열매
김홍전
성경에는 여러 가지로 열매라는 말을 썼습니다. ‘입술의 열매’ ‘태의 열매’ ‘땅의 열매’라 하는 말들이 구약과 신약에 여러 번 나옵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열매를 가리킬 때 ‘의의 열매’ ‘빛의 열매’ ‘성신의 열매’라 하는 말들을 썼습니다.
빛의 열매라 하면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광명한 생활이나 행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결산으로 내놓는 모든 착한 것과 의로운 것, 그리고 진실한 것,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신의 열매라고 하면 성신님이 어떤 사람의 인격적인 활동에 역사하실 때 드러나는 결산을 말합니다. 성신의 열매란 단순히 도덕적인 성격만을 전부로 하는 것은 아니올시다만 사람에게는 우선 도덕적인 성격이 중요합니다. 그런 까닭에 성신의 열매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도덕적 성격, 즉 품성을 표시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존절,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 갈라디아서 5:22-23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의 도덕적인 성격이 예수 그리스도를 방불케 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빛을 받아서, 즉 말씀의 계시 내용에 접촉해서 충분히 장성해 나가는 데 따라 필연적으로 빛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열매의 전부는 아닙니다. 마태복음 21:43에 보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대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심히 중요한데, 여기 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나라의 열매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개인의 도덕적 성격상의 변화나 그로 좇아 발생하는 어떤 사실만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거기에 하나님 나라의 전체 경영 가운데 구체적으로 보이는 가시(可視) 교회의 성립을 하나 덧붙여 일컫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을 입히사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왜 성신은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계십니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대체로 생각하는 방식 가운데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박해와 괴로움 가운데 울부짖고 몸부림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휙 가버리면 그것으로 생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부르시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을 보통 천당이라 부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 천당을 그렇게 강조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당을 못 간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천당 자체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땅 위에 세우신 큰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충만한 영광으로 만유가 통일된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로 완성된 인간상을 이루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닌 영혼만 돌아다니는 세계에서 비로소 즐거움을 누리고 위로를 받고 살라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느끼면, 땅 위에 있어서의 의미를 아주 희박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땅 위에서는 마치 피난민같이 이리저리 두류 방황하다가 부르시면 낙원에 가서 안식한다고 너무나 센티멘탈한 생각에 젖습니다. 사실 그런 노래도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약속과 같이 신자가 죽으면 그 영혼이 곧 낙원에 있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종착역이 아니고,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 아닙니다. 땅에서 자자영영히 나아가는 이 길의 목표가 달성되는 곳은 거기가 아닙니다. 거기는 임시로 가서 쉬었다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모두 영화의 몸을 입고 완전한 영광에 들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갈 곳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강조해야 할 것은 부활과 영광이지 육신과 영혼이 헤어져 사람이 아닌 상태로 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면 하나는 시체이고 하나는 영뿐입니다. 영의 상태가 사람보다 나은 상태라고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부족할지라도, 인간으로서 도달해야 할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전진하도록 하셨습니다. 비록 죄로 말미암은 부패와 오염 때문에 완성은 못하고 각각 그 수명대로 전진하다가 정지시키시면 그만 낙원에 가서 대기할지언정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영광의 몸을 덧입자는 것입니다. 벗어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충만한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이루어질 것이지만, 충만하지 못하더라도 땅에서는 땅에서대로 우리의 분량을 채워서 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천당은 벌써 만세 전에 약속으로 정해 놓으신 곳입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애를 써서 공로를 쌓아서 가는 곳도 아닙니다. 내가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것은 그 영광의 날에 영광스런 빛을 더 받기 위해서, 상 주시는 것을 바라고 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열매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나라의 열매라고 할 때는 거기에 나라라는 그 거룩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결국 그 나라의 열매라는 성격이 거기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가의 열매라고 하면 반드시 개인의 열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열매와는 구별할 수 있는 국가적인 결실이라는 성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 대권의 행사와 그 대상, 또 그것이 행사되어 나타나는 현상, 그리고 그것이 지향하는 바 등을 포함한 독특한 성격이 함께 있는 열매올시다. 우리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목표를 주셨으면 역사를 통해서 그것을 증시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 역사 진행의 프로그램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므로 사람이 그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 시대마다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맺는 열매가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자태가 시간을 통해서 이 땅 위에, 또 하늘 위에 비취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의 행동과 생활을 통해 내가 맺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내 시대에 국한되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시대에서 계승되고 후 세대에 전승함으로써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연면성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형성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열매라는 것은 각성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지 무슨 사업이나 하는 것같이 ‘하십시다. 하십시다’ 해서 억지로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이 내용은 「신앙의 기본 강령들 제79회」(1978 11.29. 수요일 저녁 강설) 중에서 일부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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