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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동양고전학

상춘곡

상춘곡(賞春曲)
조선 성종 때 정극인(丁克仁:1401~81)이 지은 가사. 
총 39행 79구. 〈불우헌집 不憂軒集〉권2에 실려 있다. 단종이 폐위되자 정언(正言) 벼슬을 사퇴하고 고향인 전라북도 태인(泰仁)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교육할 때 지었다.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혀, 봄 경치를 완상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작품내용은 서사(序詞)·춘흥(春興)·취락(醉樂)·결사(結詞)의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속세를 떠나 벽계수(碧溪水) 앞에 수간모옥(數間茅屋)을 짓고 자연과 벗하는 풍월주인(風月主人)의 삶을 제시한다. 둘째·셋째 단락에서는 봄 경치를 즐기며 자연에 몰입하는 삶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의 삶과 비견되어 그려진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이렇게 세속의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벗하며 사는 삶에 만족한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작품에 그려진 전체적인 내용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은거했던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도 실력을 쌓아 중앙 정계로 진출하려다가 거듭되는 수난을 겪던 조선 전기 사림파의 출처관(出處觀)을 알 수 있다. 조윤제(趙潤濟)가 이 작품을 가사의 효시작(嚆矢作)으로 본 이후,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게 있었다. 그 근거로 〈상춘곡〉이 실려 있는 〈불우헌집〉이 정극인 사후(死後) 30년 뒤에 편찬된 점, 임진왜란 전 표기법이나 어휘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 내용이 작자의 생애와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효시작으로 보기에 형식이나 표현이 너무 정돈되어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生涯) 엇더한고. 
(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
녯 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까.
( 옛 사람의 풍류(멋)를 따르겠는가, 못 따를까 )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한 사람이 많지마는 )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마랄 것가.
( 산림에 묻혀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 )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주인(風月主人)되여셔라.
(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주인이 되어 있도다. ) 
엊그제 겨을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
(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예 퓌여 잇고,
(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 푸른 버드나무와 향그런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서 푸르도다. )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 (이 풍경을 조물주가)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내었는가? )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조물주의 신통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숲 속에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해 소리마다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로다. )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에 다를소냐.
( 물아일체이거늘, (새와 나의)흥이야 다르겠는가 )
시비(柴扉)예 거러 보고, 정자(亭子)애 안자 보니,
( 사립문 주변을 걸어보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 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보며, 산 속의 하루하루가 적적한데 )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 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이나 가자꾸나. )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하새.
( 답청은 오늘하고, 냇물에 가서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 )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 하새.
(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 저녁 때에는 낚시질하세. )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 이제 막 발효하여 익은 술을 갈포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 놓고 )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세며 먹으리라. )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결을 건너오니 )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히 담기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
소동(小童) 아해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지를 물어서 )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 (술을 사다가)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
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 시냇가의 호자 안자,
(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서 시냇가에 혼자 앉아 )
명사(明沙)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 보니,
(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
떠오나니 도화(桃花)ㅣ로다.
(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메이 긘 거인고.
( 무릉도원이 가깝구나, 저 들이 무릉도원인가 ? )
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진달래꽃을 붙들고 )
봉두(峰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 잇네.
(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네. )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폇는 듯,
( 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
( 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판에 봄빛이 넘쳐 흐르는구나. ) 
공명(功名)도 날 끠우고, 부귀(富貴)도 날 끠우니,
( 공리와 명예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
청풍명월(淸風明月) 외(外)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그 어떤 벗이 있겠는가 )
단표누항(簞瓢陋巷)에 흣튼 혜음 아니하네.
( 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헛된 생각을 아니 하네. )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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