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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동양고전학

중용(中庸)과 심리학적 적응기제의 비교

중용(中庸)과 심리학적 적응기제의 비교

김진영(고려대학교 BK21 뇌기반심리학연구단 연구교수, 대표저자)

고영건(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교신저자)
본 연구에서는 중용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심리학에서의 적응기제와 비교해 보고자 한다. 심리학에서는 우주론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중용과 심리학적 적응기제를 비교하는 작업의 범위를 대인관계 영역으로 제한하였다. 대인관계 맥락에서 중용과 상응하는 심리학적인 기제로는 동화(同化)와 성숙한정서적 대처기제들이 제시되었다. 중용과 심리학에서의 적응기제를비교하는 것은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인 계승 작업과 관련해서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비교 문화적인작업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사회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조망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Ⅰ. 머리말
20세기 후반부터 가속화된 세계화의 흐름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문명과 문명 간의 시간적 간격과 공간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강정인 2002). 홀턴(Holton 1998)에 따르면, 세계화가 초래하는 문화적 효과에 관한 논의는 동질화(homogenization), 양극화(polarization), 혼용화(hybridization)의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동질화는 세계화에따라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서구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양극화는 동질화 흐름에 대한 문화적인 반발로 인해 서구 문화와 비서구 문화의 이질화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혼용화는 세계화와 더불어 문화의 특수성과 이질성이부각됨으로써 다양성이 존중받고 서로 간에 호혜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적인 융합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그 일원인 동아시아 사회의 지식인들은 세계화가 동아시아 문명에 미치게 될 영향을가늠하고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세계화가 과연 21세기의 동아시아 사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시대적인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세계화의 흐름은 본질적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21세기의 동아시아 문명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소명감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인 계승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이러한 통찰에 기초하여 본 연구에서는 요․순 시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해서 계승․발전되어 온 유학의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용1)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목적에서 현대 심리학에서의 적응기제와 비교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에도 동아시아 사회에서 중용의 가치는 “마음의 유교적 습성들(the Confucian habits of the heart; Tu, Wei-Ming 1996, 343)"의형태로 여전히 실생활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중용의 문화적 전통은 동아시아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메소테스(mesotēs) 개념에서확인할 수 있듯이, 서양에도 중용의 덕을 숭상하는 전통은 존재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메소테스는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선덕(善德)을 의미한다(유원기 2001, 136). 서양에서의 이러한 중용의 전통은 현대 심리학의 적응기제 개념에 수용되어 지속적으로계승 발전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중용과 서구 사회의 중용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현대 심리학의 적응기제 개념이 외견상 유사해 보일 수 있을 지라도, 그 둘은 매우 상이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둘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상당한 무리수를 요구하게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용과 현대 심리학에서의 적응기제를 비교하는 것은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인 계승 작업과관련해서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비교 문화적인 작업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동아시아 사회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조망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용은 심성론인 동시에 우주론에 해당되는 대단히 포괄적인 철학적 개념에 해당된다. 이미 이수원(1999, 287-326)이 중용에 대한 심리학적인 탐구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듯이, 현대 심리학에서는 우주론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중용과 현대의 심리학 이론을 비교하는 경우에는 분석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중용과 심리학적 적응기제를 비교하는 작업의 범위를 대인관계 영역으로 한정짓고자 한다. 비록 본 연구에서 고찰의 범위를 대인관계 영역으로제한하였을 지라도, 그러한 분석이 현대인에게 갖는 의미는 결코작지 않다. 왜냐하면,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주요한 생활 사건들은 모두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문제들이기 때문이다(고영건 외 2007, 69).
II. 중용의 의미
대대로 도통(道統)으로 전해지던 중용사상은 공자(孔子) · 안자(顔子) ․ 증자(曾子)를 거쳐 자사(子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중용>이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2) 유학에서 중용은 윤리적인 덕과 중도를 지향하는 사유방식 그리고 조화와 균형을 세계의 본질로인식하는 세계관으로서의 의미 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장승구2002, 111). 이러한 중용은 내성외왕(內聖外王)과 성기성물(成己成物)의 유학적 교육 이념에 대한 실천적인 원리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신창호 2002, 71-76).
주자(朱子)는 「중용장구(中庸章句)」도입부에서 “치우치거나기울어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평상적인 것, 즉 쉽게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것을 용(庸)이라 한다”3)고 말하였다. 중용에 관해 보다 상세하게 살펴보기위해<중용>에서 ‘중용’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구절들을 차례대로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군자는 중용을 행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군자가중용을 행하는 것은 군자이면서 때에 맞게 하기 때문이요, 소인의중용은 소인이면서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4)
㉡ 중용은 지극한 것이다. 능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드물게 된 지오래되었다.5)
㉢ 사람들이 모두들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그물과 덫 그리고 함정 가운데로 휘몰아 넣어도 피할 줄을 모르고, 사람들이 말하기를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면서도 중용을 택하여서는 일 개월도 지키지못한다.6)
㉣ 안회의 사람됨이 중용을 택하여 선을 얻으면 잃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한다.7)
㉤ 천하와 국가를 균등하게 다스릴 수 있고 작위와 봉록을 사양할 수있으며 흰 칼날을 밟을 수 있을 지라도 중용은 할 수 없다.8)
㉥ 군자는 중용에 의거하여 세상을 등지고 알려지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이것에 능할 뿐이다.9)
㉦ 군자는 덕성을 존중하고 학문에 힘쓰며 광대함을 지극히 하고 정교함에 힘쓰며 고명함을 다하고 중용에 힘쓰며 옛 것을 잊지 않고 새로운 것을 깨우치며 행할 수 있는 것을 돈독히 하고 예를 숭상한다.10)
위에서 예시한 구절들을 정리해보면, ㉡과 ㉢ 그리고 ㉤은 중용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과 ㉥ 그리고 ㉦은 중용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바로 군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유원기 2001, 122) ㉣은 중용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비록 상기한 구절들이 중용의 특성 중 일부를 보여줄 지라도, 보다 구체적으로 중용이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 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 따라서 중용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술한 자료에 기초하여 적극적으로 유추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점에서 ㉠은 중용이 발현되기 위한 두 가지 선행 조건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주자에 따르면, 중용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군자의 덕성을 갖추는 동시에 시중(時中)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11) 이러한 관점에서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군자의 덕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그리고 언제나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주자는 시중을 “때에 따라 중(中)에 처할 수 있다”12)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그는 “중용의 중(中)은 실제로는 중(中)과 화(和)의 의미를 겸한다”13)고 적었다. 따라서 시중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中和)의 개념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중용>의 첫 번째 장에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을 일컬어 중(中)이라 하고, 발현되어 마디에 적절하게들어맞는 것을 일컬어 화(和)라고 한다”14)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에서 희노애락은 기쁨, 노여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의 네 가지 감정만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적인 요소 전체를 통칭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중용>에서 중(中)과 화(和)를 구분하는 이유는 인간의감정이 화(和)의 형태로 표현되기 이전에도 중(中)과 부중(不中)의심리적인 상태 간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감정이 외부로 표현된 다음에는 그러한 감정이 상황과시기에 적절하게 맞게 표출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발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중과 부중을 구분하는 것은결코 쉽지 않은 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중(中)을 인간의정서적인 활동이 도리에 부합되도록 하는 초월적인 성(性)에 해당되는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실제의 심리적인 상태를 지칭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것이다(양조한 1999, 76-77). 하지만 이러한 시각의문제점은 초월적인 성의 개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초월적인 성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감정이 도리에 맞게 표출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지를 해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유원기 2001,129).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수원(1999, 321)은 동양문화에서갈등 해결의 이상적 모형으로 추구해 온 중용에 관한 심리학적인분석을 진행할 때, 시비(是非)나 호오(好惡)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초월되는 중용의 특성을 해석해낼 수 있는 심리학적인 개념을찾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본 연구에서는 먼저 대인관계의 맥락에서 중용에 비견될 수 있는심리학적인 개념을 탐색해 본 후 이를 중용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Ⅲ. 대인관계에서의 중(中)과 심리적인 동화(同化)
<중용>에서 중(中)은 모두 22곳에서 발견되며 또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유정동 1981, 23-24), 그 중에서 중(中)에 대한개념을 소개하면서 내면의 심리적인 기제와 관련지어 언급된 예는감정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을 일컬어 중(中)이라 한다고 표현한구절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중용의 개념을 규정짓는 과정에서 사용된 중(中)은 군자의 덕성과 구분되는 동시에 감정이 발현된 후에 적절하게 표현되는 화(和)와도 구분되는것이다.
비록 서로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 지라도, 유학의 군자라는 개념은 심리학의 성숙 인격이라는 개념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김성태 1976, 29). 공자는 군자의 특성으로서 원만하고 온화하며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 태도를 강조하였다.15) 이러한 특성은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성격상의 특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화(和)는 심리학의 성숙한 정서적 대처기제(emotional copingmechanisms)와 개념적으로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개념들간의 연관성 문제는 비교적 논란의 여지가 적은 반면에, 과연 대인관계의 맥락에서 중(中)이 심리학적으로 어떤 개념과 부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제라고할 수 있다.
중(中)은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거나부족함이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감정이 아직 발현되지않은 것이지만 군자의 품성과는 구분되는 측면에서 심리적인 세계에서의 차이가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특성과 상응하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심리적인 동화 기제(psychological assimilation)라고 할 수 있다. 베일런트(Vaillant 1997)는 심리적인 동화기제와 정서적인 대처기제를 개인의 적응에 필요한 대표적인 적응기제(adaptive mechanism)로 제안하였다.
1. 심리적인 동화 기제
베일런트(Vaillant 1997, 344-353)는 인간의 삶에 관한 대표적인종단(follow-up) 연구 중 하나인 하버드(Harvard) 성인 발달 연구결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보이는 대인관계에서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로 심리적인 동화라는 개념을제안한 바 있다. 베일런트에 따르면, 마치 신체적 건강에서 음식물을 소화시킨 후에 영양분으로 전환하는 생물학적인 신진대사 과정이 중요한 것처럼, 정신건강에서는 외부 대상과의 교류 경험을 심리적으로 소화시켜나가는 심리적인 대사(psychological metabolism)과정이 중요하다. 그는 이러한 심리적인 대사 과정을 사회적인 교류경험이 개인의 심리적인 세계 속에서 연소(혹은 대사)되어 가는 수준에 따라 ‘6i’로 분류하였다. 6i에는 합체(incorporation), 내사(introjection), 모방(imitation), 내재화(internalization), 이상화(idealization), 동일시(identification)가 포함된다.
동화 기제는 정신건강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가 담고 있는 정체성의 확립, 감정의 정확한 인식, 미래지향적 태도, 자아의 통합성,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 자율성, 환경에 대한 통제력 등을 효과적으로 예측해 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높은 수준의 동화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낮은 수준의 동화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대인관계에서 건강한 특징들을 더 많이 보여 준다.
2. 심리적인 동화 기제의 종류
1) 합체
합체는 외부 세계와의 교류 경험을 심리적으로 소화해내기 위한 최소한의 대사 작용조차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때합체라는 표현은<어린왕자(the Little Prince)>에서 보아 뱀이 코끼리를 통째로 삼켰던 것처럼(Saint-Exupéry 2000), 외부 세계와의교류 경험이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상태를 지칭하기위해 사용한 것이다. 만일 합체의 수준에서 동화되어 있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되면, 그 사람은 마치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모든 것이 빠져나가 버려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결국 그 사람은 밀려드는 공허감 때문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시도하게 될 수 있다.
2) 내사
내사에서는 외부 세계와의 교류 경험의 일부에 대해서 소화가이루어지지만 여전히 그 정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몸속에 이물질이들어와 있는 것과 유사한 상태가 된다. 이런 점에서 내사의 수준에서 동화되어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그사람은 마치 소화시킬 수 없는 가시가 자신의 몸속에 박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3) 모방
모방은 마치 배우가 배역 속의 인물을 연기할 때처럼, 자신이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면서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거나 성인이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 방식을 은연중에 따라하게 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마치배우가 연기할 때 자신의 성격을 포기해야 하듯이, 모방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흉내 내고 있는 외부의 대상이 마치 자기 몸속으로 들어와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방의 수준에서 동화되어 있는 누군가와 갈등 관계에 빠지게 될 때, 그 사람은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4) 내재화
내재화는 외부 세계와의 교류 경험이 사고의 차원에서는 어느정도 소화가 되었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불완전하게 연소(혹은 대사)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내재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외견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대상과의 문제들을 깨끗이 정리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그렇지 않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5) 이상화
이상화는 외부 세계와의 교류 과정에서 외부의 대상이 우상화되거나 신격화되는 형태로 수용되는 것을 뜻한다. 이상화에서는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이 그 어떠한 인간적인 약점조차 지니고 있지않은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경직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숭배하는 사람과 숭배 받는 사람 모두를 불행에 빠트릴 수 있다.
6) 동일시
동일시16)는 외부의 대상을 심리적인 세계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성격 구조를 탄생시키는 터전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제자의 피아노 연주 속에 스승의 가르침이 배어있는 것처럼, 동일시는개인과 외부의 대상이 마치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것 같은 인상을줄 수 있다. 동일시를 사용하는 사람은 외부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심리적인 자원을 일종의 심리학적인 전이(예컨대, 학습의 전이) 과정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통해 동일시는 개인의 적응력과 자존감 모두를 높여 줄 수있다.
3. 대인관계에서의 중(中)과 심리적인 동화 기제 간 개념적 연관성
<중용>에 따르면, 중(中)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동화의 기제는 심리학적으로 감정이 발현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이후에 감정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적인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징적인 의미 면에서 동화의 최상위 수준에 해당되는동일시는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는<중용>에서의 중(中)에 대한 기술과 상응하는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시는 이상화처럼 특정 대상에 치우쳐 있지 않고 나머지 동화 기제들처럼 외부대상을 지나치게 수용한 것도 아니며 동화가 부족하게 일어난 것도 아닌, 외부의 대상과 자기가 역동적인 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동일시는 건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에게서 더 자주 발견된다는점에서 성숙한 인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성격 특성과는 구분되는 내부의 심리적인 상태를 기술하는 독자적인 개념이라고 할수 있다. 호퍼(Hofer 1984, 194-195)는 정신적인 표상에 의해 형성된 심리적인 세계 내부의 상호작용이 생물학적인 신경망들 간의상호작용만큼이나 실제적인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중 하나는<중용>에서는 중(中)이 다양한 의미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동화의 기제가그 모든 중(中)의 의미와 관계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예를 들면,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17)이라는 구절은 인간의 심성과 우주와의 합일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기 때문에 심리학적인 동화 기제의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의 심리학적인 동화에 관한 논의는 감정이 발현되기 전 상태로서의 중(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국한시킬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IV. 대인관계에서의 화(和)와 정서적인 대처기제
화(和)는 감정이 발현된 후에 그러한 감정을 때와 상황에 맞게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중용>에서는 이러한 화(和)를 지극히 하게 되면, “천지가 자리를 잡게 되고 만물이 생육 된다”18)고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중용>에서는 중(中)과 마찬가지로 화(和)도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을 기술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우주론적인 맥락으로까지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본 연구에서는 화(和)에 관한 논의를 대인관계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인 현상의 맥락 내에서만 진행하는 것으로 범위를 한정하고자한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화(和)는 감정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정서적인 대처기제에 상응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 정서적인 대처기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열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of Mental Disorders, 4th ed.; DSM-IV)>에서는 정서적인 대처기제 혹은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를 “개인이 내부 혹은 외부의 위험과 스트레스 요소들을 지각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기능하는 심리적인 과정(AmericanPsychiatric Association 1994, 751)”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정서적인 대처기제는 주체가 그것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의식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정서적 대처기제가 무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상이나 억제 등의 대처기제에서는 개인이 그러한 보호 작용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적인 대처기제는 정신병적 기제, 미성숙한 기제, 신경증적인 기제, 성숙한 기제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영건 외 2007, 202). 단, 정신병적인 기제는 정신과 환자들을 다루는 특수한 임상 장면에서 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외하고자 한다.
성숙한 대처기제는 문제 상황에서 내면의 갈등을 숨기거나 자기 또는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기 보다는 문제 상황 자체를 창조적으로 변형시켜, 결과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략을 사용한다. 성숙한 대처기제가 하는 일은 외견상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마치 그림(Grimm)의 동화에서 럼펠스틸트스킨(Rumpelstiltskin)이 지푸라기로 금을 만드는 것과 같은 신비한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서적인 대처기제는 동화나 환상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현실 세계에서 고통스럽고 눈물나는 순간들을 신의 은총을 받은 것과 같은 행복한 순간들로 변화시켜 줄 수 있다(Vaillant 2000, 89-98).
신경증적인 대처기제는 문제 상황에서 자기를 희생시킴으로써내면의 갈등 또는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하는 것을 말한다. 신경증적인 대처기제는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있는 상황에 처하는 것과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신경증적인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박혀 있는 가시 때문에 대단히 고통스러워 할 수 있지만,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고통스러워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미성숙한 대처기제에서는 자기 내면의 심리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Vaillant 1977,158-192). 미성숙한 대처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지독한 향을 풍기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한 음식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선사해 주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도록 만든다.성숙한 대처기제, 신경증적인 대처기제 그리고 미성숙한 대처기제는 모두 5가지씩의 하위기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처기제의 유형은 모두 15가지가 된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이러한 15가지의 기제들을 한 번쯤은 사용하게 된다(고영건 2004, 28-33). 이러한 정서적인 대처기제를 이해하는 데는 동일한 문제 상황 하에서 15가지 대처기제들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나타날 수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2. 정서적인 대처기제의 종류
다음에 예시하는 내용들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대학생이 내면의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나열한 것이다.
1) 성숙한 대처기제
① 유머(humor): 아버지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② 이타주의(altruism):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돕는 것
③ 예상(anticipation): 미래의 갈등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방법들을 미리 연습해 두는 것
④ 억제(suppression): 아버지와 갈등 관계에 있을 때 흥분해서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⑤ 승화(sublimation):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경쟁적인 스포츠에 몰입하거나 예술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 내면의 분노감을 표현하는 것
2) 신경증적인 대처기제
① 전위(displacement): 아버지가 애착을 갖는 일들에 비판적인태도를 취하거나 아버지가 좋아하는 애완동물을 괴롭히는 것
② 해리(dissociation):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거나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는 것 
③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아버지의 지시를 경직된 방식으로 따르는 것
④ 이지화(intellectualization): 갈등 이면의 감정적인 측면은 도외시하고서 궤변적인 형태의 논리에 집착하는 것
⑤ 억압(repression):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불편감을 경험하지만그 이유는 잘 모르게 되는 것
3) 미성숙한 대처기제
① 신체화(somatization): 스트레스 상황에서 신체적인 고통을지나치게 호소하는 것
② 공상(fantasy): 젊은 영웅이 나이든 권위적 인물에 대항해 싸우는 영화나 소설에 빠져드는 것
③ 행동화(acting-out): 아버지가 싫어하는 문제행동을 나타내는것
④ 소극적-공격성(passive aggression): 삐딱한 태도로 아버지를대하는 것
⑤ 투사(projection): 갈등의 책임을 아버지에게로 돌리는 것
3. 갈등해결의 이상적 모형으로서의 중용과 정서적인 대처기제
공자는 중용의 도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로 유식한 사람들은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9) 이러한 공자의 설명은 신경증적인 대처기제와 미성숙한 대처기제 그리고 성숙한 대처기제의 특징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경증적인 기제는 학력이 높은 지식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기제라고 할 수 있다. 신경증적인 기제를 주로 활용하는 고학력자들은 감정을 다루는 것보다는 생각을 다루는 것을 더 편안해 하기때문에 진실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외견상 사려깊은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억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이 화가났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반면에 미성숙한 기제는 주로 나이가 어리거나 교육의 기회를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이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사고의 연장 기능(delayed function)을 활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때문에 사려 깊은 행동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행동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매우 충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신경증적인 기제 그리고 미성숙한 기제와는 달리, 성숙한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사고 모두에 대해서 불편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두 가지 요소들을 적절하게 균형 잡을 수 있다.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동시에사려 깊은 방식으로 표현하게 된다.
심리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정서적인 대처기제 혹은 방어기제는대인관계에서 시비(是非)나 호오(好惡)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어떻게 초월될 수 있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성숙한 정서적 대처기제는 시비(是非)나 호오(好惡)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기초한 대인관계에서의 갈등 상황 자체를 창조적으로 변형시켜, 결과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략을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숙한 대처기제가 하는 일은 조개가 우아한 진주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조개는 모래가 외부에서 들어온 고통스러운 상황을 오히려 아름다운진주를 창조해내는 계기로 반전시킨다.
V. 중용과 심리학적인 적응기제의 비교
중용과 심리학적인 대처기제 모두 인간이 중용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이처럼이들은 서로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 간에는차이점도 존재한다. 중용과 심리학적인 대처기제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중용에 도달하는 것을 통해 얻고자하는 목표라는 측면에서 동양의 중용과 심리학적인 적응기제는 차이가 있다. 중용에서는군자(君子)의 삶 혹은 성인(聖人)의 삶을 생활의 목표로 제시하지만, 그것을 통해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심리적인 효과에 관해서는상대적으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유원기2001, 138). 반면에 심리학적인 대처기제의 존재의의는 개인의 행복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중용을 비롯한 유학 사상의 핵심이 인간 존재의 확대에 있었던 것과 관계있는것으로 보인다. 조긍호(1997, 2004, 2007)에 따르면, 유학 사상가들은 인간이 인간된 까닭을 되짚어 봄으로써 존재의 확대 가능성을 추구했으며 이런 맥락에서 존재 확대의 이상적 모형(군자론, 성인론)을 제시하고 또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적인 원리를 발견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런 점에서 유학 사상에서 제시하고있는 인간 존재의 확대의 길은 개인이 주관적으로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발견하는 데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관심에 기초하여 그들을 배려하고 도움으로써 사회적인 삶 속에서다른 사람과 자신의 일체화를 이루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중용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동양의 중용과 심리학적인 적응기제는 차이가 있다. 동양의 중용에서는중용의 덕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고 제시하면서도 사실상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중용>에 따르면, 사람들 중에는 타고 나면서부터 도를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애써 익혀서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20)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용을 행하기 위해서는 중화를 지극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21)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천하와 국가도 고르게 할 수 있고 벼슬과 녹도 사양할 수 있으며, 흰 칼날도 밟을 수 있으나 중용은 할 수 없을 것이다”22)라고 하였다.
반면에 심리학적인 적응기제에서는 비록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숙한 적응기제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 지라도 모든 개인이 교육을 통해 중용의 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처음부터 건강한 성격을 타고 날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동화와 성숙한 대처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춘기 때 그토록 많은소년․소녀들이 방황하게 되는 것도 처음에는 누구나 미성숙한 대처기제를 통해 세상에 적응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중용에 도달할 수 있는 실천적인 원리를 제시하는 방법에서의 차이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중용을 실천하고 싶어 할 수 있다.하지만<중용>에는 실제 인간 사회에서 중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천적 방법에 관한 설명이 상당히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중용>의 기술 방식은 시인이 형상으로 뜻을 전하고(立像盡意) 화가가 구름을 붉게 물들여 달을표현하는(洪雲托月) 동양적인 사유방식의 전형적인 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러한 설명 방법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깊이 있는 통찰을 하는 데 유용할 지라도, 잠재적으로는 오늘날 사람들이 중용을 실생활에서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조적으로 현대의 심리학은 건강한 성격에 이르는 길과 동화그리고 성숙한 대처기제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경험적인 연구 결과들에 기초해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신분석, 심리학에서의 인본주의운동, 게슈탈트(Gestalt) 심리치료, 인지 및 행동주의에 기초한 행동수정 기법, 예술치료 기법 등은 사람들이 미성숙한 대처기제 대신에 성숙한 대처기제를 그리고 낮은 수준의 동화 기제 대신에 높은 수준의 동화 기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심리학적인실천 방법들을 제공해준다.
VI. 맺음말
심리학에서 추구하는 대인관계에서의 심리적인 성숙과 유학에서 강조하는 중용의 실천이 구체적인 과정의 측면에서는 서로 다른것처럼 보일 지라도, 중용에 도달했을 때의 내적인 상태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심리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점은 비록 산을 오르는 구체적인 길이 다를 지라도 산의 정상에 서고 난 다음에는 오르는 길의 차이가 별로 중요해지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동아시아 사회의 중용의 전통이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더욱 발전적으로 계승되는 동시에 서구인들에게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수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심리학적인 적응기제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행복이라는 가치 그리고 경험적인 연구 결과들에 기초해 현대인들과 의사소통하려는 학문적인 노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중용을 통해 오르려는 산의 정상과 심리학적인 적응기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산의 정상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황희 정승의 일화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수원(1999, 107)은 중용의 심리학적인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황희정승의 일화가 중용의 참된 의미를 잘 보여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느 날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이 다툼을 벌이다가 황희에게 가서 자신의 정당성을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황희는 “네가 옳다”라고말하면서 그 하인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상대방 하인도 황희에게 와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공은 그 하인에게도 “네가 옳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어이가 없어서 “한 쪽이 옳으면 나머지 한 쪽은 그른 것이지어떻게 양자가 다 옳습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공은 다시부인에게도 “그 말도 옳다”라고 하였다.
중용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는 절대선혹은 절대적으로 옳은 정답을 얻고자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것으로 생각된다. 그보다는 제기된 문제가 현재의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이 더 현명한 자세가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심리학이 추구하는 학문적 특성 상, 중용의 여러핵심적인 개념들 중에서 천인관(天人觀)과 같은 부분들이 배제된상태에서, 주로 대인관계 맥락에서의 심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고찰을 진행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에서와 같은 비교 문화적인 작업은 소박하게는 우리가 조금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보다 원대하게는 궁극적으로이러한 작업은 인류가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여정의 일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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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中庸章句序」中庸何爲而作 子思子 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 蓋自上古 聖神繼天立極而道統之傳 有自來矣 其見於經則允執厥中者 堯之所以授舜也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者 舜之所以授禹也 堯之一言 至矣盡矣 而舜復益之以三言者 則所以明夫堯之一言 必如是而後 可庶幾也
2) 「中庸章句序」若吾夫子 則雖不得其位 而所以繼往聖 開來學 其功 反有賢於堯
舜者 然當是時 見而知之者惟顔氏曾氏之傳 得其宗 及其曾氏之再傳 而復得夫子之孫子思 則去聖遠而異端起矣 子思懼夫愈久而愈失其眞也 於是 推本堯舜以來相傳之意 質以平日所聞父師之言 更互演繹 作爲此書 以詔後之學者.3) 中者 不偏不倚 無過不及之名 庸 平常也4)<中庸>第二章.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5)<中庸>第三章. 子曰 中庸 其至矣乎 民鮮能 久矣6)<中庸>第七章. 子曰 人皆曰 予知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也 人皆曰 予知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
7)<中庸>第八章. 子曰 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8)<中庸>第九章. 子曰 天下國家 可均也 爵祿 可辭也 白刃 可蹈也 中庸 不可能也9)<中庸>第十一章. 君子 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 能之10)<中庸>第二十七章. 故君子 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11)<中庸>第二章 朱子註. 君子之所以爲中庸者 以其有君子之德 而又能隨時以處中也 小人之所以反中庸者 以其有小人之心 而又無所忌憚也
12)<中庸>第二章 朱子註. 能隨時以處中也13)<中庸>第二章 朱子註. 中庸之中 實兼中和之義14)<中庸>第一章.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15)<論語>爲政 第二 十二章 君子 不器, 衛靈公 第十五 二十一章 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 里仁 第四 十一章 君子 懷德, 子路 第十三 二十三章 君子 和而不同
16) 이론가에 따라, 동일시를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Vaillant는 동일시를 정신건강의 지표로 삼았다.
17)<中庸>第一章.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18)<中庸>第一章.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 育焉
19)<中庸>第四章. 子曰 道之不行也 我知之矣 知者 過之 愚者 不及也
20)<中庸>第二十章.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21)<中庸>第一章.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 育焉22)<中庸>第九章. 子曰 天下國家 可均也 爵祿 可辭也 白刃 可蹈也 中庸 不可能也
주제어 : 중용, 중화, 심리학, 심리적 동화, 정서적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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