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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레위기강해

속죄제에 관한 규례 2 (레 4:22-35)

속죄제에 관한 규례 2 (레 4:22-35) 


노승수 목사


[22]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3]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24] 그 수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을지니 이는 속죄제라 [25] 제사장은 그 속죄 희생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 [26] 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 같이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27]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8]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30]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32] 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 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33]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아 속죄제를 삼을 것이요 [34] 제사장은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5]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취한 것 같이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의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전체적으로 : 


어제 살폈던 속죄제와 오늘 본문의 속죄제는 얼핏 보면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제사를 진행하는 방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어제 본문의 속죄제는 제사장이 그 피를 가지고 회막안으로 들어가서 지성소 휘장 앞에서 그 피를 찍어서 7 번 뿌리고 휘장 바로 앞에 놓인 향단의 뿔에 피를 바르는 의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족장과 평민의 속죄제는 성소 안으로 그 피를 가져 들어가지 않고 번제단의 뿔에 피를 바르는 의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인데요. 어제 이미 설명드린대로 1-3장이 재산의 경중에 따른 예물의 차이를 설명한 것이라면 속죄제는 사회적 신분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 죄의 심각성과 파급력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이미 대제사장의 죄에 대해서 살폈지만 이 죄악은 백성들에게 그 죄얼을 미치는 경우임을 보았습니다. 두번째, 온 이스라엘의 죄 역시 민족적 죄임으로 그 파급력이나 심각성을 크다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배열은 사회적 신분도 고려되었지만 죄악의 경중의 정도가 더 고려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더 진전된 의식을 절기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요. 7월 10일의 대속죄일은 1년 1차 대제사장이 용서를 구하면서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의식을 말합니다. 즉, 속죄제가 번제단의 피를 바르는 의식으로부터 성소의 휘장에 피를 뿌리고 향단에 피를 바르는 의식에서 더 나아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의식으로 성전을 위해서 속죄하는 속죄의 의식입니다. 


22-26절은 족장의 속죄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였고 그 범한 죄를 깨우침을 받거든 수염소를 예물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로마서 3:21에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다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읽고 지켜 행하다가 그 중 하나라도 범하고 그것을 율법으로 말미암아 깨우치게 되거든이란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하나라도>입니다. 율법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죄를 깨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죄를 깨우치면 바로 성전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약의 핵심을<율법과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공히 그리스도 예수께서 온전히 성취하시고 완성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를 깨달을 때마다 성전에 나와서 이런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도 집안에 염소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조심하며 근신하는 생활을 했겟습니까? 죄란 하나님 없이 혼자 어떻게 해보려는 심사가 그 핵심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내가 죽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제 이미 설명드렸지요. 제물에 안수함은 제물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요. 제물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죄에 대한 죽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영혼한 속죄제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27-35절은 평민의 속죄제에 대한 설명인데, 제물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암염소와 어린양입니다. 제사의 방식은 거의 같습니다. 이것 역시 백성의 형편을 고려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배려하시는데, 나는 주님께 정말 흠없는 것으로 드리고 있습니까? 다른 한가지 주목할 만한 단어는<흠없는>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흠이 있는 것이어서는 안되겠지요. 나는 정말 내 마음을 흠없이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