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승수의 강해설교/레위기강해

화목제에 관한 규례(레 3:1-17)

화목제에 관한 규례(레 3:1-17)


노승수 목사


[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2]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6]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7]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8]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9] 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힌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0]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12]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13] 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14] 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5]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7]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전체적으로 


화목제는 다른 말로는 감사제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내장과 그 기름은 태워서 드리고 고기의 일부는 제사장들에게 돌리며 나머지는 봉헌한 사람과 그 가족, 그리고 친구들, 초청된 모든 일들이 일정기간 안에 성소에서 함께 먹는 제사입니다. 이미 설명드린대로 번제와 소제와 함께 여호와께 향기로 드리는 제사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번제와 소제는 의무적 제사임에 반해서 이 화목제는 봉헌자의 선택에 의해서 드리는 제사라는 점에서 앞선 제사들과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3장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5절까지는 소의 화목제, 11절까지는 양의 화목제 17절까지는 염소의 화목제로 되어 있습니다. 번제는 비둘기 제사가 나오는 반면 화목제는 이런 제사가 등장하지 않는데 이 제사의 성격이 감사제의 성격을 가져서 함께 음복하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번제가 가난한 자를 고려하여서 비둘기 제사를 둔 것에 비해서 나눔이란 적당히 나눌 수 있는 음식이 수반해야 하기 때문에 이 비둘기가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화목제의 히브리 명칭은<쉘라밈>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샬롬과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히브리어의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그친 평화를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과의 평화는 곧 구원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도 하나님께도 그리고 함께한 모든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함께 나누는 성격을 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 화목제는 잔치의 성격을 가지고 잔치는 구약에서<여호와의 날>의 개념으로 대변됩니다. 원래 여호와의 날 곧 절기들은 잔치의 날이었지만 8세기 이후 점차 선지서 속에서 이 잔치들은 심판의 날로도 묘사가 됩니다. 이 날의 절정이 바로 신약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화목케 하는 사역은 한편에는 구원을 다른 한 편에는 심판을 이루시는 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차례로 살펴 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1-5절은 소의 화목제입니다. 역시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하며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였습니다. 이미 앞선 제사들에서 설명드린대로 안수는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이 연합은 사실 신약에 와서 믿음을 설명하는 대표적인<우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의 연합입니다. 이처럼 그 제사가 온전한 헌신의 번제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로서 소제이든지, 화목과 감사의 제사이든지 속죄의 제사 혹은 변상의 개념을 가진 속건제이든지 관계 없이 동일시의 개념 곧 연합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이 동일시의 개념은 속죄제에 오면 전가의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우리의 죄악을 발견하고 그것을 예물에 전가하는 것이지요. 즉,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이미 그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로 여기는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 12:1에서 말하는 우리가 드려야 할 거룩한 산제사와 같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참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과 죄와 육신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까? 


본문 가운데는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만 강조되어 있지요. 각 제사의 규례와 절차에 대하서 6장부터 나오는데요. 이것을 함께 설명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만을 강조한 것은 제사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제사와 예배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받으시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사실 우리의 예배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 초점 맞추어져 있기보다 사람들이 어떻게하면 감동을 받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들이 너무나 많지요. 특별히 3장이 화목제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부분에만 강조점을 두고 그 행위와 절차들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예배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우리 예배를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습니까? 


나머지 양과 염소의 제사 절차는 비교적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음으로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성경이 거의 같은 내용을 이렇게까지 반복하는 이유는 예배와 제사의 성격이 우리가 임의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와 정해진 예물을 예에 맞게 드려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는 그런 점에서 지루한 성경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 생활을 너무나 잘 설명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 기쁘냐가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이 문제를 마음 깊이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