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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신앙의 확신

이 길ㅡ성경과 종교개혁의 입장ㅡ은 신앙을 위해서 싸우지 않고 신앙에서 비롯되는 삶을 위해서 싸운다. 그것은 믿기 위해서 행하지 않고, 행하기 위해서 믿는 길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자기 입장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안에서 발견해 왔다. 그의 소망의 기초는 자신 밖,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기도(소망)는 확고히 자리 잡게 돼 결코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의 구원의 건물이 세워진 기초의 진정성(眞正性)과 힘을 부단히 시험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의 확신을 온갖 내적(內的) 경험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들에 기초를 둔다. 
이런 확신 때문에 그는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좋은 은사들과 온전한 은사를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 이제 온 세상은 ‘하나님 자녀로서 그’의 의무 수행을 위한 도구가 된다.
종교적 삶에는 그 자체의 내용과 독자적 가치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 삶은 결국 그 심장부에서 모든 기독교적 사상과 행동이 나오며, 그 심장부에 의해 그것들이 삶의 열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 그는 그의 수고를 위해서 힘을 얻게 되며(사 40:31), 싸움에 대비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귐이라는 그 신비한 삶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비록 기도의 골방이 그가 기거하고 행동하는 집 전체는 아니라 해도, 그 골방은 내실(內室)인 것이다. 
신령한(영적) 생활은 가족과 사회생활, 사업과 정치, 예술과 과학을 배제하지 않는다. 신령한 생활이 이것들과 정면 대립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령한 생활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대한 섬김으로 보충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상적(地上的) 소명을 충실히 완수하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의 나라는 온 세상보다 더욱 값진 진주 같으나, 그것은 또한 온 가루ㅡ온 세상: 역자 주ㅡ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다. 믿음은 구원의 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세상을 정복(골 2:15. 고후 10:5,6)하는 것을 포함한다.
성경에 묘사된 대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제86문답~제91문답>에서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인은 이런 확신에 서서 행한다. 하나님과 화목 된 까닭에 그는 또한 만물(萬物)과 화목 된 자이다. 
그리스도의 아버지 안에서 그는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까닭에 그는 고통 때문에 마음이 좁아질 수 없고 옹색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시어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독생자께서는 세상을 정죄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분의 십자가에서 하늘과 땅이 화목 된다(골 1:20). 그분을 머리로 해 만물이 통일될 것이다(엡 1:10). 
만물의 역사는 새로운 인류인 교회의 구속(救贖)을 향해서 유기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해방(계 11:15 참조)을 향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전진한다(롬 8:19~22. 고전 15:24. 창 3:17 참조). 정확히 말하자면, 현세에조차도 만물은 원리상 교회에 속한다(엡 1:17~23). 왜냐하면 만물은 그리스도의 것(히 2:10)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주(主)의 전(殿)의 한 제사장의 신분(벧전 2:5,9)을 가지며, 또한 이 사실을 믿는 성도는 땅을 다스리는 왕이다(고후 10:5,6. 엡 2:4~7. 히 2:5~18).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온전하고 참된 의미에서 인간(골 3:10)이기 때문이다. 
그는 발 아래서 자라나는 꽃들을 사랑하며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감탄한다. 그가 예술을 경멸하지 않는 까닭은, 예술이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값진 선물(출 25장~28장. 출 31:1~11. 출 37:1~9)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제 학문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단 1:17 참조)은 이것들이 또한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선한 것(히 2:10)이라고 믿으며 그것을 감사함으로 취하면 정죄 받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롬 14:14. 롬 14:23. 계 21:24,26 참조)고 믿는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 힘써 일하는 것도 아니며(고전 10:31), 그가 삯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눅 17:10). 비록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터득하는 바는 그는 힘써 이행한다(마 7:21. 딤후 3:14~17. 약 2:14.). 그는 계산하지 않고 선행(先行)을 행하며(마 6:3,4), 그가 선행을 행했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 열매를 맺는다(마 7:24,25). 그는 은밀히 향기를 발하는 꽃(마 6:18)과 같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모든 선행으로 완전히 무장한 하나님의 사람(마 5:16. 딛 2:14. 벧전 2:12)인 것이다. 그의 생시(生時)에도 높이 되신그리스도(시110:1,2. 롬 8:34. 고전 15:25,26)께서 함께해 주시지만(시110:3), 마지막 그의 사후(死後)에도 유익이 있다.
* 헤르만 바빙크 [신앙의 확신] 조주석 역 (서울: 나침반社, 1987) 93쪽~95쪽(끝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