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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conversion)의 정의
본래 회심이란 말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신학적 의미로는 우상이나 악에서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흑암에서 광명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의식적으로 하나님께로 전향함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보통 회심이란 단어를 자주 쓰지는 않는다. 사도행전 15장에 에피스토페이라는 단어로 한번 나타난다. 그러나 같은 동의어인 회개, 중생, 거듭남과 같은 단어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회심을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 왜냐하면 교회사의 뛰어난 인물들의 회심은 모두가 그들의 인생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학자 칼빈은 회심을 "인간이 하나님께로 그의 얼굴을 완전히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회심은 한 삶의 형태에서 다른 삶의 형태로 완전히 바뀌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는 의미 없고 불만족스러운 육적인 삶의 세계를 버리고 더욱 의미 있는 믿음의 삶으로의 전향을 말한다. 옛사람을 벗어버릴 뿐만 아니라 새사람을 입는 것을 말한다. 첫번째 창조에서 부여받았다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새로이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때로 회심의 경험은 지적인 진리를 위한 추구와 도덕적 순결을 위한 간절한 소망과 관계가 있다. 또 다른 때에는 극적인 현상을 동반한 보다 눈에 띠는 변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현재의 것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내일의 길에 들어서는 돌연한 변화를 동반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바울의 회심의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에 대한 의미와 사례들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에서의 회심 
구약은 개종의 사실에 대한 연구에 관한 한 금광과도 같은 책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회심은 종종 집단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신의 강권적인 역사와 관계가 있다. 거짓된 우상숭배에서 참된 하나님께로의 신실한 믿음으로 돌아오는 것과 관계가 있다. 특별히 선지서에서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에게서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버리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드셨고, 준비시키셨고,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 전반에 특히 시편 속에는 회심에 대한 갈망이 깊은 죄와 고통의 감정 속에서부터 나온다. 우리는 시편 기자가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전체 백성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간에 그 간구 속에는 깊은 양심의 자책과 부정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가 나타난다. 영혼의 모든 고통 속에 참회와 용서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원하는 기도가 함께 교차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셨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10).
구약 성경에는 많은 개인적 회심기사가 있다. 그중에는 아브라함, 야곱, 사무엘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는다. 선지자 이사야의 실례는 가장 전형적인 부르심의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6-8).
이 사건에서의 근본적인 요소가 모든 구약성경의 회심경험 속에서 반복되어진다. 그속에는 진리에 대한 참된 깨달음이 있다. 죄에 대한 자책이 있다. 자신의 무가치성을 절실히 느낀다. 죄용서함에 대한 감사가 있다. 나아가서 선교와 봉사에 대한 새로운 다짐이 있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회심 속에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회심 
신약성경에서 회심은 회개(메타노이아)라는 말로도 사용되어진다. 이는 돌이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는 물질적인 이상의 마음의 돌이킴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단지 지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 영적 변화와 인격의 전체적 재적응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재적응이며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과의 인격적 재적응의 모습을 갖는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말씀하셨다. 또한 그의 제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위탁도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고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라고 말했다. 세례요한은 회심을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시키고 있다. 
이런 회심에 대한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었다. 즉 거듭남(요 3:3),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롬 6:2-8), 어두움에서 빛으로(벧전 2:9), 죽음에서 생명으로(요 5:24), 사단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행 26:18), 새창조(고후 5:17),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얻는 것(골 3:9) 등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결국 신약성경의 메타노이아가 갖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삶의 대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정리와 더불어 사람과의 관계를 분명히 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메타노이아는 사람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사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관계된다. 이는 나의 의지를 결정적으로 바꾸고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가치관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과 중생의 관계 
우상과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회개라 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 돌이키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회심은 회개에 신앙을 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회심과 중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중생은 하나님의 행위이지만 회심은 사람의 행위가 된다. 중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출생이지만, 회심은 우리가 회개하고 믿는 것이다. 물론 회개와 믿음은 둘 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회개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은 사람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생은 무의식적이나 회심은 보통 의식적이다. 즉 중생은 신비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회심은 중생과 같이 무의식의 잠재 세계에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중생은 하나님의 순간적이고 완전한 사역임에 비해 회심은 점진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중생은 정도의 차이가 없지만 회심은 각기 정도의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때에 성령께서 이 사람을 조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보게 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폭우가 쏟아지는 강한 성령의 역사를 느껴 돌이킬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슬비가 살포시 젖듯이 계속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심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회심을 반복적 사건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회심은 단회적이며 참된 신앙의 시작을 의미한다. 
회심의 유형 
회심은 때로 종교적 소속을 바꾸는 "개종"과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이때는 인간의 외면적 변화일 뿐 내면적인 변화를 꼭 동반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참된 회심은 종교적 소속을 바꾸기 전에 보다 깊은 곳에서의 마음의 전환을 의미한다.
회심의 유형에는 먼저 돌발적 회심이 있다. 이는 대단히 급작스럽고 생생한 변화를 동반한다. 이런 회심을 겪은 사람은 자신이 변화된 날짜와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고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이 돌발적 회심은 인간의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뚜렷하게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인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그 인간 위에 임하시는 신적인 사역에 의한 것이다. 이 회심은 매우 급격하고 극적이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가장 돌발적인 회심 기사는 사도 바울의 경우일 것이다. 그의 경험은 아주 드라마틱하고 결정적이다. 교회 역사 가운데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웨슬레는 자신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때 나는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걷어주시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나같은 사람까지도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돌발적 회심을 경험한 자들은 종래에 있던 모든 의심들을 일소에 해소시키며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돌발적 회심을 겪은 사람도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째로 불안과 혼동의 시기인데 이때 사람들은 억압이나 죄로 인한 갈등과 투쟁이 나타난다고 한다. 둘째로 급작스러운 커다란 조명에 의하여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느낌인 완화와 자기포기의 단계를 거친다. 셋째로 둘째 단계에서 신앙이 논리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즉 감정적 모습이 약화되고 지적, 영적 성숙이 내적 조화를 갖추어 성화되어 나간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참된 회심 경험을 돌발적인 것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회심에는 무의식적인 것이 역시 있다. 니고데모의 예가 무의식적인 회심의 모습을 보여준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대화할 때에 회심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국 그가 예수님의 장사에 도움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요 19:38). 신약성경은 바울과 같은 급작스러운 회심과 스가랴, 마태, 루디아, 디모데, 나아가서 니고데모와 같은 보다 부드럽고 섬세한 변화를 서로 조화시키고 있다. 
회심의 유형에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어렸을 적에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사상과 가치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진적인 경우가 있다. 이런 신앙인들은 열광적이거나 뜨거운 경험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마음 안에서 자라온 신앙이 그들을 돌발적 회심의 세번째 단계로 접어들게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구원의 확신 위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나간다. 이들은 신앙에 있어서 결정적인 경험은 없었지만 점진적인 종교적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오히려 종교 교육학자들은 종교적 성숙의 과정에서 놓고 볼 때에 돌발적인 회심 경험보다는 안정되고 질서 있는 신앙적 발달이 있는 점진적 회심을 더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회심기사들은 대체로 돌발적인 회심을 다루었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또는 점진적으로 회심되는 경우는 짧게 요약하거나 묘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돌발적 회심과 성령충만의 관계
돌발적 회심은 성령으로의 중생과 성령으로의 세례가 동시적으로 임하는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생은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본인도 느끼지 못하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돌발적 회심은 그에게 중생으로서의 성령과 더불어 삶을 변화시키며 성령의 충만이 동시적으로 임하는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평범한 신앙생활이나 확신없는 믿음에 거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을 체험한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돌발적 회심은 그의 삶 전체를 변화시킨다. 왜냐하면 그에게 성령의 세례가 신앙과 더불어 동시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이때에 인간의 성품이 신의 성품으로 화해진다. 부패한 죄의 피가 하나님의 아들의 위대한 역사로 변화된다. 그 위대한 역사는 곧 성령으로의 출생과 성령세례 곧 충만이다. 성령으로의 중생은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하고 성령으로의 세례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생명과 삶이 존재의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회심의 중요성과 그 결과 
누구든지 회심의 과정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회심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회심이 없이는 선한 사람도 충분히 선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분명히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요3:3)고 말씀하셨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회심이 요청된다. 회심치 않고 예수를 옳게 믿을 수 없다. 회심의 단계를 거쳐야 인간이 옳게 예수를 믿고 모든 세계를 그리스도의 눈으로 조망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갖고 살게 된다. 회심이 없는 교회생활은 현대적 바리새인만을 만들며, 공허한 움직임만 만들게 될 것이다. 회심은 참된 신앙생활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회심이 새로운 종류의 삶의 시작을 함축하고 있다면 회심의 결과는 결국 선교사명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타난다. 회심한 자는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의 지상 명령대로 만방에 나아가서 복음을 선포했다. 초대교회에서 회심은 영광을 받고 높임을 받는다는 의미보다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고난의 길을 의미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이들을 회심시켰으며 세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결국 회심한 사람들의 역동적인 역사가 복음을 세계에 전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