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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이사야 20:1-6의 묵상

이사야는 애굽의 수치를 드러내는 예언을 전하기 위해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을 행한다. 때로 선지자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

그러나 이 메시지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선지자 자신이다. 예컨대, 에스겔은 인분 마른 것을 구해서 거기에 떡을 구워먹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 "소 똥이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 드려 소똥으로 바꾼다.

호세아는 성전의 창녀인 고멜과 결혼을 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보면 기원전 650년 경 매춘봉납제라는 법률이 존재했는데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는 일생에 한 번 아프로디테의 신전 뜰에서 지나가는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법이었다. 여자는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무릎에 동전을 던지면서 “밀릿타여신의 이름으로”라고 하면, 여기서 밀릿타는 아프로디테의 앗수르 식의 이름으로 고대근동의 신화와 그리스 신화는 그렇게 서로 맞닿아 있었다. 돈의 액수가 얼마라도 여자는 그것을 무를 수 없고 던져진 동전은 신성한 것이 되어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호세아의 결혼은 이런 방식의 바알 신전에서 찾아가 만난 여인과의 결혼이었을 것이다. 선지자로서는 당혹스런 상황이었지만 그의 삶이 이스라엘에게 메세지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앗수르의 도시 니느웨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싫어하여 반대로 가려던 선지자 요나도 있었다.

선지자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명령에 곧잘 순종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명령들은 때로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것이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입던 속옷을 와디에 감추고 그것이 썩었을 때 그것을 들고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가 선포했던 바벨론으로 포로로 가라는 메시지는 친 바벨론파나 매국노로 오해되기도 했다.

이사야의 벗은 몸 벗은 발 퍼포먼스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을 인해서 그들이 당할 수욕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 그것도 3년이나 말이다. 유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 것이다. 선지자의 벗은 몸은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미쳤다 하였을 테고 믿던 자들은 부끄러움과 더불어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보다 애굽을 의지하는 모습에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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