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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재혼에 대한 성경적 고찰

이혼과 재혼에 대한 성경적 고찰
김병혁 목사
이혼과 재혼을 권하는 사회와 이혼과 재혼에 침묵하는 교회 현실 
지난 2003년 통계청이 펴낸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일본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보다 높다는 놀라운 수치를 보여줬다. 그 해 보건복지부와 현도사회복지대학교가 공동 발간한 우리나라 결혼 대비 이혼율 조사에 따르면 결혼 대비 이혼율이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로써 현재 한국은 매년 결혼하는 2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이른바 ‘이혼 천국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굳이 이혼에 관한 사회적 지표 수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혼과 재혼에 대하여 얼마나 관대하고 포용적인가를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연일 TV, 영화, 소설, 광고등 대중 매체를 통하여 무차별 확대 생산되는 이혼과 재혼에 관한 세속적 담론들은 더 이상 낯선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현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은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 갇혀 사는 이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무분별한 이혼과 재혼 풍조가 가정의 기틀뿐만 아니라 교회의 근간마저 뒤흔들고 있는데도, 음란한 시대의 표상들과 어울려 가정과 교회의 타락을 주도하고 있는데도, 어찌된 일이지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혼인식에서, “이러한즉 이제 둘이 하나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는 선포가 예식만을 위한 미사어구가 아니지 않은가. 세상의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마저 이 시대의 이혼, 재혼 풍조에 대해 염려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하물며 진리의 터라고 하는 교회가 꿀 먹은 벙어리 신세로 있어야 하겠는가?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친밀성을 표상하는 거룩한 방편 
이혼과 재혼은 결코 혼인과 별개 사안이 아니다. 성경적인 혼인으로부터 이탈한 이혼은 혼인에 대한 적극적 부정(不正)이며, 성경에서 지지하지 않는 재혼은 혼인에 대한 모략(謀略)이다. 그러므로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갖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혼인이 무엇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누가 혼인 제도를 세우셨는가, 혼인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인가, 혼인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법은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하여 먼저 깨달아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혼인을 귀히 여길 것을 권면한다(히 13:4).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로서 연을 맺는 형식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영적인 친밀성을 나타내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흔히 혼인을 가리켜‘둘이 하나가 되는’관계라고 한다. 그렇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객체가 하나의 본질 안에서 완전히 연합되어지는 방식은 오직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 계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일이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하나 됨의 실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혼인을 가리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안에서만 이해되는 ‘비밀’이라고 말한다(엡 5:32). 그리스도와 교회가 완전히 연합되어 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혼인 관계에 있는 남녀역시 스스로 혼인의 유대를 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하나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19:4-6)고 말씀하셨다.
혼인과 이혼에 관한 주님의 교훈은 군더더기 해석이 필요없을만큼 단순하고 명료하다. 혼인은 하나님께 친히 만드신 신적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한 경륜속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한 몸이 되게 하셨듯이, 혼인의 친밀함을 통해 믿음 안에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둘이 아닌 하나가 되게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관계, 즉 혼인은 그 누구도 나눌 수 없다. 성도의 혼인은 단순히 서로 다른 존재와의 만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가 연합된 표준에 따라 작정된 영적이며, 육적인 결합이다. 이러한 성경적 관점에서 혼인을 생각하지 않는 한, 혼인은 온갖 종류의 타락을 낳는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끝 간 데 없이 타락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 시대의 부패한 결혼관과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이 취급되는 이혼과 재혼 문화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세속적인 이혼과 재혼 문화를 대하는 성도의 자세
혼인 제도를 친히 만드시고, 성도의 혼인을 통해 참된 가정과 교회를 유지해 가시는 주님의 입장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않으시는 이상, 이혼은 불가하다. 이혼 없는 재혼이 불가능하다면 원칙적으로 재혼역시 불가하다. 이것이 성도의 혼인에 대한 주님의 명백한 요구이며, 성경의 일관된 진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유일한 준거 법칙으로 삼고자 하는 성도라면, 비성경적인 이혼과 재혼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해 두려움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미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세속적인 이혼과 재혼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장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사단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금지된 이혼과 허락된 이혼
전통적으로 칼빈주의 교회의 이혼에 관한 입장은 ‘혼인의 약속은 주께서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깨트릴 권세가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19장에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러한즉 사람이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같이 이혼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의 말씀에 토를 달려한다. ‘이혼 불가’를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신명기 24장에서 ‘이혼 증서를 주라’고 한 모세의 언급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여인)에게 주고 그를 자기 집으로 보낼 것이요”(신 24:3)라는 모세의 권면은 이혼을 조장하거나 간과하는 발언이 아니라, 이혼으로 인해 버림받을 여성들의 복지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긴급 조치 사항을 주문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이혼 증서가 없는 이혼 여성은 성적 노리갯감이나 창녀와 같이 취급받을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혼은 절대로 불가(不可)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두 가지 조건에 한하여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 첫 번째 조건은 배우자의 음행이다. 음행은 혼인의 기초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인격적 신뢰마저 무너뜨릴만한 심각한 죄악이다. 예수님께서도‘음행한 연고’외에는 배우자를 버리지 말라고 교훈하셨다(마 5:32). 두 번째 이혼의 조건은 배우자의‘고의적인 저버림’(willful desertion)이다. 이 주장은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고전 7:15)는 말씀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자인 배우자가 혼인을 원칙을 깨고 막무가내 떠나고자 할 때, 신자가 막아설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분리를 가리키는 것이지, 신자편에서 불신자인 배우자에게 적극적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근거 구절이 아니다. 정리한다면, 성경적인 이혼의 합법적인 (충분)조건은 배우자의 음행 외에는 없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경은 배우자의 음행을 이혼의 충분요건으로 인정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요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행은 혼인의 끈을 자를 만큼 중대한 범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혼인의 순결성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만약 배우자가 음행을 하였으나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그를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영적 간음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며 끝까지 그를 포용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왕에 이혼 이야기가 나왔으니 재혼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자. 이혼 없는 재혼이란 불가능하다. 이혼은 재혼을 양산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성경은 이혼에 관해 엄격한 기준만큼이나 재혼에 관해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혼과 재혼의 관계를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정리하셨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2) 즉 신자는 배우자의 음행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이유로도 이혼을 요구할 수 없으며, 만일 정당한 사유의 이혼이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결혼(재혼)하는 것은 양자 간에 평생 간음을 범하는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재혼이 허용되는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성경은 무흠한 이혼자의 경우, 배우자가 죽은 이후에는 재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전 7:39; 롬 7:2-3). 신자의 혼인은 배우자의 죽음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매우 두신 생명의 끈이다. 아마도 이 글을 대하는 많은 이들이 혼인, 이혼, 그리고 재혼에 관한 성경의 이 같은 엄중한 교훈에 당황스러워 할 것으로 생각된다. 충격의 파장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와 더불어 신자로서의 자리가 이 중대한 성경적 가르침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지와 습관을 핑계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회개하고 돌이킬 것인가? 신자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 실제적인 물음앞에 당신의 선택은 무언인가? 
혼인의 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거이며, 이혼과 재혼에 대한 성경적 투쟁은 교회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척도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대 교회의 이혼과 재혼의 영역은 거의 무법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무시되고,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진리의 파수꾼이어야 할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불법적인 이혼과 재혼의 중매를 자처하고 있다. 성경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숱한 이혼과 재혼이 교회와 성도를 방종과 음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무분별한 이혼과 재혼이 가져 올 불행과 성경의 엄중한 교훈을 자각한다면, 현재의 혼인 관계를 말씀 안에서 보다 충실하게 이루어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진리가운데 맺어진 혼인의 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이혼과 재혼에 대한 성경적 투쟁은 교회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척도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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