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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창세기강해

톨레도트와 세 족장의 언약들

톨레도트와 세 족장의 언약들 


노승수 목사 


창세기는 10개의 엘레 톨레도트로 구성 되어 있다. 그 구성은 1. 우주의 위대한 시작을 통한 도입_첫 번째 toledoth(1:1-2:4a)_(2:4b-4:26), 2. 아담의 계열_두 번째 toledoth(5:1-6:8), 3. 노아의 계열_세 번째 toledoth(6:9-9:29), 4. 노아의 세 아들 계열_네 번째 toledoth(10:1-11:9), 5. 셈의 계열_다섯 번째 toledoth(11:10-26), 6. 데라의 계열_여섯 번째 toledoth(11:27-25:11), 7. 이스마엘의 계열_일곱 번째 toledoth(25:12-18), 8. 이삭의 계열_여덟 번째 toledoth(25:19-35:29), 9. 에서의 계열_아홉 번째 toledoth(36:1-37:1), 10. 야곱의 계열_열 번째 toledoth(37:2-50:26)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첫 번째 돌레도트는 다른 데와는 달리 글의 말미에 붙어 있으며 동시에 두 번째 톨레도트 사이에 2:4b-4:26의 에덴동산의 타락기사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창조의 웅장함을 묘사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기 위한 구조로 볼 수 있다(B. K. Waltke with C. J. Fredricks, Genesis, A Commentary, Zondervan, 2001, 19). 창조와 타락을 연결짓는 야누스적 구조로 볼 수 있다. 예컨대, 2:4a의  "이것이 하늘과 땅이 창조된 역사(toledoth)라"와 2:4b의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실 때에,..."는 서로 거울이 맞보는 듯한 구조를 보여준다. 즉 1장에서 창조의 장엄함을 2-4장에서 타락의 비참함을 낮과 밤으로 빛과 어둠을 대조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다른 곳에서는 글 머리에 톨레도트가 붙어 있는 것과 달리 이런 양면적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서 예외적으로 후미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어둔 밤 희미한 빛이 비추었다. 여자의 씨가 약속된 것이다. 창세기의 10개의 톨레도트는 이 씨의 추적 역사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톨레도트는 6, 8, 10번째 톨레도트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언약의 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톨레도트다. 언약이 의미 없이 반복된 듯 보이지만 각 족장의 톨레도트는 각각 독특한 특징이 있다. 아브라함 언약의 특징은 "씨가 과연 누구냐?" 하는 "씨의 정의"를 다룬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씨를 주시겠다는 일방적 언약과 그것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묘사, 그리고 중생의 표상으로서 할례언약이란 쌍무적 언약의 묘사와 이것이 보여주는 율법 개입의 함의를 볼 수 있다. 보통 세대주의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믿음이 죄 때문에 율법의 하는 수 없이 개입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실 때, 일방적 언약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쌍무적 언약을 주심으로 율법 주심의 기초를 놓고 있다. 즉, 믿음의 구체적 결과로서 율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 할례언약의 당사자는 육체로 난 이스마엘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이며 오늘도 믿음으로 된 성령을 따라 난 그리스도인이 그 언약의 당사자이다. 혈통이 씨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난 믿음의 씨가 아브라함의 씨다. 그 씨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거기에 더해, 소돔과 고모라는 종말의 진노의 표상이며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의 중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보여준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이삭은 불임 여인에게서 난 언약의 당사자며 바울은 그를 성령을 따라 난 자로 해석했다. 그런 점에서 이삭은 율법 후에 올 성령에 대한 구체적 표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삭 톨레도트의 대다수과 우물과 관련한 분쟁에 할애한다. 이는 언약의 내용으로 율법의 정신을 보여준다. 사랑과 포용, 배려와 환대, 거기서 빚어지는 복을 보여준다. 특히 바울신학과 요한신학에서 물은 성령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신약은 노아의 홍수, 출애굽의 홍해를 모두 세례로 해석하며 이는 성령과 직접적 연관을 갖고 있다. 광야의 반석은 그리스도로 묘사되며 거기서 나는 물은 성령의 상징이다. 그리고 율법, 곧 말씀과 성령은 성전을 지향하고 있다. 이삭 톨레도트는 언약과 율법이 지향하는 것이 성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야곱의 삶은 벧엘에서의 계시에 기초해 있다. 


마지막으로 야곱 톨레도트는 요셉과 유다 이야기로 압축될 수 있는데, 요셉 이야기는 맏아들로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장치로서 그의 배신당함과 팔림, 누명과 옥에 갇힘,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그 형제들을 용서함, 죽음에서 유골에 대한 유언은 그의 부활신앙을 보여주며(히 11:22) 요셉 자체가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점을 드러낸다. 유다 이야기는 다말로 말미암은 후손의 출생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마태복음의 계보(톨레도트)에도 등장하듯이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에 관한 은유를 반복한다. 


데라 톨레도트가 아브라함에게서 할례언약이 율법이 등장하기 전에 율법에 대해서 계시로 보여주는 것처럼 이삭 톨레도트 역시 야곱의 꿈이 성전이 등장하기 전에 성전에 대해서 계시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 성전은 다시 야곱 톨레도트에서 요셉과 유다로, 그리스도를 오심과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율법과 성전은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다시 율법과 성전이 지향하는 바,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요셉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