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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창세기강해

창세기 18장 강해, 언약의 중보

창세기 18장 강해, 언약의 중보 


노승수 목사


창세기 16장은 천사로 말미암아 주어진 시내산 언약과 아들로 말미암아 주어진 예루살렘(모리아)로 복음의 새언약을 하갈과 사라를 통해서 대비했다면, 17장은 할례언약을 통해서 할례언약의 당사자가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난 이삭과 맺어진 언약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할례는 율법의 모든 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언약으로 바울은 극심히 이방인이 이 언약을 시행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것이 얼핏 보기에 율법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세기 17장의 맥락에서 이 할례언약의 당사자는 이삭이었고 이삭은 바울의 유비 속에서 성령을 따라 난 자,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유대인과 이방인을 통칭하는 거듭난 영적 자손을 일컫는다. 즉, 16장은 언약을 대비했다면, 17장은 언약의 당사자를 둘로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18장은 언약의 중보인 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게 될 것인가가 드러난다. 예컨대, 17장에서 전능한 하나님과 맺어진 할례언약의 쌍무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이 언약이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과 맺어질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술이 되어 있다면 18장은 예루살렘 언약으로 묘사되는 사라가 경수가 끊어진 여인, 곧 불임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성경 상에서 불임이 그리스도 계시의 중대한 모티프가 되는데, 3명의 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된 사사(왕), 제사장, 선지자가 등장한다. 바로 삼손, 사무엘, 그리고 세례 요한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모두 불임 여인으로 부터 잉태된다는 점, 3명이 모두 날 때부터 나시르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천사가 나타나 수태고지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무엘은 좀 다른 맥락이다. 사무엘서와 누가복음은 매우 묘한 병행을 이루고 있다. 한나의 기도와 마리아의 기도는 대비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모형으로 이 세명의 구약의 인물은 불임 모티프 속에서 그리스도를 모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불임 모티프의 원형은 다름 아닌 사라이며 이 불임 이미지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의 이미지가 된다. 나중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의 원형적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서에서 '처녀'가 낳을 아이에 대한 예언(사 7:14)도 자유주의자들은 젊은 여자를 들먹이지만 실제로 맛소라 사본의 독본을 보면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탄생 교리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발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창세기 18장은 창세기 3:15 이후에 그리스도 계시의 더 구체적인 진전이다. 우리가 17장에서 할례언약을 설명하면서 언약의 당사자가 바로 성령을 따라 난 자, 곧 중생자의 모형이 되는 이삭을 언급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라는 씨가 불임 여인, 혹은 동정녀 출생에 대한 그림자로 생리가 그친 사라로부터 이삭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창 18:11).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추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인데, 단순하게 보면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더 멀리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것을 감추지 않는 것은 그가 바로 복의 근원이 되고 의와 공도를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8-19). 그런 후에 아브라함의 소돔에 관한 중보가 나오는데 이것이 50에서 시작해서 10에서 마친다. 셋으로부터 노아까지가 10개의 계대이고 창세기의 엘레 톨레도트가 10개이며, 이 10개의 톨레도트가 지향하는 것이 구원의 씨로서 그리스도 출현에 관한 계시라면, 이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출애굽기의 10개의 저주와 복을 얻은 백성이 얻은 10가지 언약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즉, 창세기 15장의 씨가 가져다주는 구원은 심판과 구원이라는 맥락에서 주어지게 된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순절 사건은 심판의 사건이자 구원의 사건으로 곧 추수의 사건으로 해석된다. 18장은 언약의 중보자의 구체적 출현 방식에 대한 예언과 함께 의와 공도로 다스림을 위해 택한 그릇이라는 설명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아브라함의 중보는 10명에 머무른다. 이는 근시적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원시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심판과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18장이 계시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이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다서에서 이 소돔과 고모라는 종말의 지옥 불심판의 거울로 묘사된다(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씨의 계보를 나타내는 톨레도트는 진노의 심판의 은유인 애굽의 10개의 재앙과 구원받은 백성의 10개의 언약의 말씀과 더불어 10의 삼중성으로 드러난다. 창세기 18장은 이제 구체적으로 생리가 그친 불임의 여인으로부터 드러날 씨와 삼위 하나님께서 의와 공도로 다스리시기 위해서 택한 그릇으로서 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아브라함의 정체성이 곧 이 씨의 정체성이며 불임 여인으로부터 날 이 씨는 곧 소돔과 고모라를 진멸할 진노에서 그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씨, 곧 아브라함의 중보로 표상되는 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16장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 곧 율법은 복음 아래에서 복종해야 함을 계시하며  17장은 언약의 당사자로서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묘사하는 두 인물, 곧 이스마엘과 이삭을 통해서 언약의 당사자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접붙여진 영적 후손이자 거듭난 후손이라는 것을 할례언약을 통해서 보여준다. 게다가 17장의 할례언약은 생식시의 표피를 제거하는 표징으로 구약과 신약에서 지속적으로 이 표징의 의미가 마음의 할례, 곧 신명기 30:6이 말하는 것처럼 중생에 관한 것임을 말하고 언약의 당사자가 바로 이렇게 중생한 자들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8장에서는 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가 오는 방식으로서 불임에 대한 계시와 그 씨가 상속할 아브라함의 지위와 위상을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이뤄질 심판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