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불변성(Immutability)
이성호 교수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불변성은 성경적인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변개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구절이 몇 개 눈에 띄이기는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분노하시기도 하고, 후회하시기도 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 제 2위 이신 성자가 인간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설명함에 있어서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앞에서 말한 이유로 많은 도전을 받아 왔다. 어떤 이들 (소시니안)들은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것이고 하나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 즉 하나님의 의지는 변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현대에 들어와 과정 신학자들은 하나님도 어떤 과정을 거치는 분, 역사를 가지는 분, 심지어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는 분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정통신학을 하는 사람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런 모습은 주로 성경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불변성은 사변적인 개념이라고 치부하면서, 하나님의 불변성을 주로 언약적 불변성에 한정시켜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한 오해를 줄여 보자. 불변성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무동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변성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한 자리에 가만 있는 돌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기인하지 않은 최초 동자(an unmoved mover)이시다. 정통신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unmoved에 강조를 두는데, mover에 강조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보면 가장 자발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 그 자체에 관한 것이지 피조물이나 인간과 관련해서 불변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는 변하지 않으나 피조물이나 인간과 관련해서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신다. 본성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불변하실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은 순수실현이다 (actus purus). 실현의 반대말은 잠재성이다. 인간은 어떤 잠재적인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전되지만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고), 하나님은 어떤 잠재적인 상태(in potentia)로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이 순수실현인 이상, 하나님께는 어떤 변화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또한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변화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의 탈을 썼다는 의미도 아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은 본성에 있어서는 그 대로인 채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assume)는 말이다. 따라서 안셀무스의 대표작 "Cur Deus Homo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는 "왜 하나님이면서 인간인가?"라는 것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의 핵심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분이라면, 하나님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 변화라는 것은 증가나 감소를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완전성은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불변성을 설명함에 있어서 태양에 비유하였다. 태양은 그 자체로 그대로 변화하지 않지만, 지구상에 수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변성의 핵심이다. 즉 대내적(ad-intra)으로는 변하지 않지만, 대외적(ad-extra)으로는 끊임없는 변화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만약에 하나님의 본성이 변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어거스틴의 비유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태양이 스스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 태양의 온도가 조금 올라가든지 혹은 태양의 위치가 조금 바뀐다고 생각해 보라. 지구의 생명체들에게는 재앙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성이 변한다면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구원이 위태롭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의지(Will)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의지는 단지 언약이 불변하다는 점에서(즉, 믿으면 구원을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신다는 언약만 세웠다는 점에서 불변)만 불변하실까, 아니면 더 나아가 구원할자와 유기된 자들의 변함없는 수를 정했다는 점에서 불변하실까? [구원의 수단만 정하신 것인가 아니면 구원의 결과까지 정하셨는가?]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인간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한 일은 기껏해야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우리에게 흔들림 없는, 변함이 없는 구원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분명히 철학적인 개념이다. 특히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개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하나님의 불변성을 바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성경을 더 정확하게 보게 되고, 분명한 신관을 가지게 되며,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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