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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4. 네 번째 소극적 표지 :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209-215)

4. 네 번째 소극적 표지 :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209-215) 
 
- 사람들이 스스로가 그런 감정들을 만들지 않았다거나 그들의 고안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 흥분시킨 것이 아니다는 것 만으로는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It is no sign that affections are gracious, or that they are otherwise, that persons did not make them themselves, or excite them of their own contrivance and by their own strength)1). 
 
  반부흥론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적인 능력과 작용을 내적으로 경험한다거나 감각적으로 인지한다는 가르침을 강하게 거부하고 비웃는다. 그들은 하나님은 조용하고, 비밀스럽고, 지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하시며 우리 자신의 노력과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의 영향들과 우리 마음에 있는 여러 가지 기능들의 자연적인 작용들은 서로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열광주의적 부흥주의자들은 지정된 은혜의 방편들을 부지런히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고자 기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시지 않은 채 사람들의 마음에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타당치 못한 교만이라고 에드워즈는 평가내린다. 
 
  만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원하는 은혜를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자연의 힘, 모든 수단과 방편들의 힘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힘을 능가하며 그것들과 전적으로 다른 어떤 힘이 존재한다면, 그 힘이 분명하고, 가시적이며,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불합리하지 않다(210). 성경이 많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에 임한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산물인 것이 분명하다면, 은혜를 어떤 행위자 자신의 힘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어나는 작용과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다. 그런 작용들에는 발생 즉 출생과 부활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 그리고 창조 즉 무로부터 존재하게 됨과 같은 것이 포함되는데, 이런 작용들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크게 영화롭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위대하시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211). 
 
  에드워즈는 구약 성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여러 증거들(출애굽, 기드온과 300용사, 다윗의 물레돌등)을 제시한 후에, 또한 신약 성경에서 개인들의 회심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즉 사도행전에서 증거되는 그런 회심들은 많은 이들이 잘못 주장하는 방식대로 조용하고, 비밀스럽고, 점진적이고,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이 분명하게 드러나서 놀랍고도 갑작스럽게 크게 변화된 것이었음이 분명한데, 에드워즈 당시의 반부흥론자들이 보기에는 속임수와 지나친 열광주의의 표지로 여겨진다고 따끔하게 비판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눈을 밝히셔서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엡1:18-19). 이와 같이 기도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가 이 능력을 체험적으로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 능력을 느끼고, 지각하며, 의식한다는 말과 같다. 즉 사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작용과 구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에드워즈는 이상의 논증 과정을 통하여서 다음의 반부흥론자들의 주장을 비평한다. 즉 감정들이 그 감정의 주체인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로 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며 비성경적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에드워즈는 다른 반대편의 입장 즉 극단적 열광주의자들을 겨냥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한다. 감정의 주체인 사람이 일부러 불러일으키지 않았다거나,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감정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감정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것이라는 표지가 될 수 없다.2)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흥분시킨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아닌 다른 영적 존재들에 의해서나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말미암을 수 있다. 성령 외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영적 존재들이 있다. 우리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시험해야 한다. 많은 거짓 영들은 아주 바쁘게 움직이면서 종종 자신들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며, 간교하고도 강력하게 그리고 많은 놀라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모방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뚜렷이 구별되는 사단의 수많은 역사가 있다. 사단은 많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두렵고 공포에 찬 생각들을 심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들을 주입한다. 사단은 또한 헛되고 열매 없는 공포심과 두려움들을 자아낸다. 또한 사단의 능력은 공포와 두려운 생각을 심는 일에서만큼 거짓된 기쁨과 위로를 주는 일에서도 즉각적이고 분명하게 나타난다. 독일의 재세례파들과 많은 다른 열광주의자들이 경험했던 황홀한 기쁨은 사람의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하신 일이더라도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가 아닌 일반적인 역사(a common influence)에서 비롯된 것일 때도 있다(히6:4-5,9). 또한 어떤 영의 역사와 전혀 관계없이 신체가 약하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 또는 뇌가 약하거나 여러 가지 생각과 인상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이상한 생각과 상상을 할 수 있다. 잠자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은 깨어 있는 동안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