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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6. 여섯 번째 소극적 표지 : 사랑의 피상적 표현(221-223)_신앙감정론

6. 여섯 번째 소극적 표지 : 사랑의 피상적 표현(221-223)_신앙감정론
 
- 사람들이 체험하는 감정에서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It is no evidence that religious affections are saving, or that they are otherwise, that there is an appearance of love in them).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참된 사랑의 정신 보다 더 탁월하고, 천상적이며, 신적인 것이 없다. 사랑은 지식이나, 예언이나, 기적이나, 사람과 천사들의 방언보다도 더 귀한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가장 숭고한 것이며, 참된 믿음의 생명이고 본질이며 요체다. 사랑으로 우리는 천국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게 되며, 지옥과 마귀의 모습에 가장 반대가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1) 그러나 어떤 것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그것의 모조품들은 더욱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단의 교묘함과 사람에게 있는 기만성은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이런 미덕들과 은혜를 모방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사랑과 겸손보다 더 많은 모조품을 가지고 있는 은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랑과 겸손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이 특별하게 나타나는 미덕들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종교적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사랑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많은 유대인들이 그런 경우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사랑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식어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마24:12-13).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불순하고 영적이지 않게 사랑하고 있음을 감지하고서 성도들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부패함없이 in incorruption)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라고 축원한다. 또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 역시 모방이 가능하다. 사도 바울을 위해서는 눈이라도 빼어 주려고 했던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런 경우이다(갈4:11,15). 
 
  에드워즈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각주에서(p.223) 스토다드의 A Guide to Christ로부터 간접 인용을 한다. 스토다드는  어떤 죄인들은 강한 감정들을 체험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마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총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때로는 이런 감정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감정들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는 때때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사랑을 너무나 강하게 체험한 나머지 자신들이 기꺼이 저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