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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기도와 사랑 하나님은 그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연인이 함께 있는 것이 즐겁듯이 참 자녀들은 아버지와의 교제가 즐겁습니다. 딱히 할 말이 없어도 그 분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영혼은 겸손해집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혼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 지적하는 죄도 교만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선봉에 있습니다. 교만은 우월감으로도, 열등감으로도, 시기심으로도, 차별과 혐오로도 옷을 갈아입습니다. 교만은 기도하지 않음의 열매입니다. 기도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고와 성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직접 기도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지하게 성도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마음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기도를 드릴.. 더보기
오와 열 해병대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자면, 훈련소 시절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오와 열이다. 훈련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수료식의 집총체조는 이 오와 열의 절정을 보여준다. 훈련소의 6주간의 훈련은 모두 이 집총체조를 연습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리고 각종 훈련들, 유격이나 사격이나 천자봉 행군 등에서 틈나날 때마다 듣는 오와 열에 관한 해병대의 전설적 전투 이야기가 있다. 이 전투는 이순신장군의 명량해전에 비길만한 전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전투이지만 해병대 훈련소와 각 부대에서 항상 회자되는 전투다. 월남전 파병 당시 있었던 짜빈동 전투로, 월맹의 한 복판에 진지를 짓는 한국 해병을 보면서 미군들은 다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군들은 헬기를 타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전투를 했지만.. 더보기
환대 연대 창대 보기와 달리 난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 훈련소는 주말마다 구보를 시킨다. 일단 3보 이상은 구보이지만 첫 주말엔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4킬로를 구보한다. 구보 간에 군가는 필수다. 2주차가 되면 단독 군장에 소총없이 4킬로 구보를 한다. 3주차에는 단독군장에 소총들고 4킬로, 4주차는 완전군장에 4킬로, 5주차는 완전군장에 6킬로, 6주차는 완전군장에 8킬로 구보다. 구보시 구급차는 항상 따라 다닌다. 게다가 난 6월 군번이었다. 훈련소를 수료할 때는 어느덫 7월 중순이었다. 사실 혼자 그렇게 뛰라면 절대로 못 뛴다. 20대 가장 좋은 체력에도 못 한다. 대입 학력고사에서도 체력장 1킬로 달리기도 겨우 했던 나였다. 입대 전 몸무게가 80킬로였다. 6주 훈련소 마치고 군복에 워커를 신고 68킬로였다.. 더보기
아하시야의 죽음과 엘리야의 죽음은 서로 대비가 된다. 아하시야의 오십부장과 군사 오십은 선지자의 제자 오십과 대비를 이룬다. 침상에서 떨어져 죽게 된 아하시야가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사람을 보냈다가 엘리야로부터 죽으리라는 신탁을 듣고 오십부장과 군사 오십을 세번 보낸 것과 엘리야가 하늘로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기 전에 떠나려 할 때, 엘리사가 그의 곁은 세 번 지킨 것이 서로 대비를 이룬다. 아하시야는 자식이 없이 죽어서 아합의 다른 아들이자 자신의 형제 요람이 그를 이어 임금이 되는 것과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적 아들이 되는 것이 대비를 이룬다. 오늘 본문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것은 두 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명기의 율법을 따라 장자의 명분을 구하는 것이다(신 21:17). 아하시야의 죽음은 하늘이 세 번 불을 내려 삼중 심판 중에 완전한 영적 죽음을 .. 더보기
기후변화와 그리스도인의 삶_미완성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는 엘리뇨라는 현상을 불렀고 남극에서부터 유입되는 한류성 훔볼트 해류의 상승을 막아서 남미 연안의 황금어장을 황폐화시키고 난류로 물고기들이 씨가 마르는 현상이 수십 년 간 반복되고 있다. 인도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다이폴 현상이라는 것이다. 동북쪽 인도양 그러니까 아프리카 인근의 해수면 온도는 상승하고 서남쪽 인도양, 그러니까 호주 북부의 해수면 온도는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인도양 해수면 온도의 상승은 북 아프리카의 기후를 후텁지근하게 만들어서 메뚜기 떼가 대량 발생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부터 발생한 상승기류는 지금 중국의 양즈강 유역과 일본의 큐슈 지역의 장마전선이 빚은 폭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그리고 편서풍을 타고 메뚜.. 더보기
사랑의 체계와 미움의 체계 고대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는 여러 인간사에 대한 함축이 담겼다. 자식이 아버지를 넘 볼 것을 두려워하여 자식을 잡아 먹는 티탄신 크로노스는 단지 신화가 아니라 고대인의 삶의 투영이다. 소포클래스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왕에서 테베의 왕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하는 비운의 왕이 되어 분별력 없었던 자기 눈을 찌르고 여동생이자 딸이었던 안티고네를 의지하여 방랑자가 되고 마는 그의 운명도 고대인의 삶의 투영이다. 프로이트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미움과 적개심을 놓은 것은 어떤 점에서 창세기 3:15의 원시 복음에서 아버지이신 창조주와 아담 사이에 놓여야 했던 적개심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놓이므로 배반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품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과 대조.. 더보기
그리스 비극의 주제, 히브리스 그리스 비극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분별에 주는 유익 중 한 가지는 그리스인들의 만연한 히브리스(hybris)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스는 인간의 오만함을 일컫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난폭함, 즉 지나침을 가리키는 말로 타인에 대한 경우에는 그것은 오만, 무례함, 인격적·신체적·성적 폭력을 가리키며 자신과 관련해서는 무절제한 행위들과 같이 자기 절제력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영어에서 동의어로 hubsis로 번역되며, 한글에서는 오만이나 교만으로 번역된다. 히브리스는 기본적으로 탁월함(Arete)를 배경으로 한다. 이것은 그가 실제로 가진 자질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탁월함과 다른 지점은 그 탁월함이 거친 행동(Ate)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마치 .. 더보기
원형신학과 모형신학 우리의 신학을 모형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원형신학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방(mimesis)하기 때문이다. 원형신학의 탁월함은 곧잘 우리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내 형편이 그와 같다는 착각 말이다. 이 때 경계가 무너진다. 내 중3시절에 내 옆자리엔 반장인 소설가 김탁환이, 옆자리엔 부반장이, 앞자리엔 선도부장이, 나를 둘러싸고 모두 학급인원이었다. 조례시간을 마치면서 선생님이 임원들 잠깐 나오라는 말에 옆친구들이 다 일어나서 나가길래 나도 어떨결에 따라 나갔다. 친구들이 웃으면서 "승수 니는 와 나가노" 했다. 순간 기지를 발휘해 "화장실 간다"고 둘러댔지만 근거리에 임원들과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임원이라는 자리가 지닌 탁월함(arete)를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보기
겸손한 삶 겸손을 뜻하는 후밀리타스(humilitas)는 흙을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를 어원으로 한다. 인간을 뜻하는 휴먼(human)도 후무스에서 왔다. 이는 겸손이 인간의 본질이 흙에 기원했다는 사실을 아는데 있다는 말이다. 흙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므로 영광을 지향한다. 그 영광이란 창조 목적의 실현 곧 탁월함(arete)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는 경계가 있는데 자신과 타인에 대해 그 경계를 넘는 행동(ate)은 오만(hybris)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모방(mimesis) 해야 하지만 그 경계를 넘음으로 모방이 아닌 하나님의 보수하심 (nemesis)을 부른다. 히브리스를 제거하는 최고의 처방은 후밀리타스 곧 우리의 흙이라는 본질을 기억하는 것이다. 더보기
범죄와 성향 넷플릭스에 마인드 헌터라는 드라마가 있다. 물론 내가 이걸 볼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서 유튜브에서 요약해주는 영상을 봤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보고 싶기는 하다. 이 드라마는 범죄 심리학, 그러니까 프로파일링이 개발되는 과정을 다룬다. 유명한 연쇄살인범 BTK도 숨겨진 스토리로 등장한다. BTK는 Bind (묶고) Torture (고문하고) Kill (죽인다)라고 해서 BTK KILLER라고 불린다. 데니스 레이더는 충격적이게도 루터파 교회의 운영위원장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공무원으로 일했던 위치토는 그를 해고했으나 그가 운영위원장으로 있었던 교회는 그의 교적을 남겨두었다. 참 마음이 미묘해졌다. 이런 게 하나님의 긍휼일까? 싶기도 하고 교회가 공의에 대한 감각이 둔할 것 아닐까? 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