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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믿음의 본질 : 마음을 여는 일 믿음의 본질 : 마음을 여는 일 노승수 목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그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화목하게 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이다. 화목하고 화해하게 되면 마음을 서로 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집 6살 먹은 아이 녀석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삐진다. 그러나 아빠가 화해를 청하면, 이내 마음을 열고 해 맑은.. 더보기
믿음의 본질 : 신비 믿음의 본질 : 신비 노승수 목사 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들지 마라. 하나님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면 그게 어디 하나님이겠는가?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도 안되는 사람 속 마음은 모른다는 옛 속담도 있지 않은가? 사람의 마음도 다 모를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내가 다 안다고 덤비겠는가? 유한자는 무한자를 다 모르는 것이 진실이며, 그래서 신앙은 사실 신비에 가깝다. 그것을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하겠는가? 그냥 깨달을 뿐이고 그냥 알게 될 뿐이고 그냥 느낄 뿐이다. 하나님이 계시하여 보여주시지 않으면 알 길이 없고 깨달을 길이 없고 느낄 수 없는 게 하나님이시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착각하지 마라. 내가 믿는 게 아니다.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던가? 예수님이 십자.. 더보기
믿음의 본질 : 현실 믿음의 본질 : 현실 노승수 목사 하나님은 우리의 풍성한 삶을 원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무 분명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이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 것이다.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것처럼 믿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을 자기 세뇌를 통해서 자기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의 실체라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자면, 믿음은 가능태(可能態 : dynamis, Potentiality)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현실태(現實態 : energeia, actuali.. 더보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담긴 함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담긴 함의 “믿음은 특별계시 통해 계시자이신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지식” 칼뱅은 믿음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한 지식을 포함합니다(기독교강요 3권 2장 2절). 그런데 칼뱅이 이 표현을 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의 시대에 지식이란 대상과 인식 사이의 일치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은 그 기초가 우리 인식에 있습니다. 이전 시대의 자연스런 전제였던 대상 세계가 우리 인식으로부터 도려내어진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지식의 기초를 우리가 지닌 회의적 인식에 놓은 후부터 모더니즘과 후기 모더니즘은 지식으로서 전.. 더보기
미움의 기원 미움의 기원 노승수 목사 미움이란 감정은 하나님이 주신걸까? 아님 범죄로 인해, 그 타락으로 인해 결과된 것일까? 내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겐 통점이란게 있다. 뜨거운 걸 만지만 '앗 뜨거'라고 신속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주는 통점, 통점이 없다면야, 인간은 고통이란 걸 겪지 않겠지만 그것이 없음으로 인간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emergency system과 같다. 우리 삶이 겪게 될 더 큰 재앙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헤의 수단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몸에만 이런 장치를 주시지 않고 우리 마음에도 위기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두셨다. 그게 바로 미움이다. 뜨거운 걸 만졌을 때, 즉시로 반응하는 것이 위기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이듯이,.. 더보기
시편의 악인은 정말 존재합니다. 시편의 악인은 정말 존재합니다. 노승수 목사 시편이 말하는 악인은 정말 존재합니다. 마음에 미움과 분노로 가득차서 죄책감과 동정심이 마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싸이코패스라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이미 심리적으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치 도스도예프스키의에 나오는 살인 전의 남자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마음엔 적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폭력을 동원하는 일과 거짓과 술수를 쓰는 일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곤 아님말고라고 합니다. 이들의 잣대는 지나치게 이중적이어서 자신에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고 타인에 대해선 지나치게 인색합니다. 이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정의란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정의이고 그렇지 못하면 하찮은 .. 더보기
자아동조적 자아 vs 자아이질적 자아 자아동조적 자아 vs 자아이질적 자아 노승수 목사 정신건강을 평가하는 척도 가운데, 자아동조적 vs 자아이질적 이런 기준이 있다. 상담시 첫면접에 평가하는 항목 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에게 있는 신경증적 요소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동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비해 치료적 예후가 높기 때문에 이 평가를 한다. 이걸 문득 생각하다보니,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라는 논어(論語)의 글귀가 떠오른다. 군자들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들의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다. 자아동조적인 사람은 그 신경증적 요소 때문에 타인이 자신과 같아지길 요구하.. 더보기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라는 .... 이 말은 보통 오해 받기를 “개혁주의 교회는 개혁을 거듭 거듭해야 한다.” 라고 설명합니다만, 사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멀러 교수님에 따르면, ....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모토는, “종교 개혁을 통해서 ‘교리적 순수성’이 회복되었으니, 이제는 ‘삶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더보기
영적 바이러스, 이단의 발호가 교회에게 주는 면역 영적 바이러스, 이단의 발호가 교회에게 주는 면역 노승수 목사 신천지는 기존 교회를 허무는 방식으로 포교를 한다. 이전에 이단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졌지만, 신천지는 더 공격적이고 심지어 교회 안으로 침투 하여서 교회 자체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먹어버린다. 역사적으로 이단의 발호는 항상 진리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아리우스파의 등장으로 삼위일체론이 확립되고, 말시온파의 등장으로 정경의 확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한국도 예외적이지 않다. 구원파의 등장으로 구원의 확신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럼 신천지의 발호로 말미암아 교회가 각성해야 할 신학적 지식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는 이러한 이단의 발호를 통해서 무언가 면역을 형성해.. 더보기
신사도 운동의 직통계시의 심리학적 이유들 신사도 운동의 직통계시의 심리학적 이유들노승수 목사 신사도 운동의 직통 계시에 대한 바램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은밀한 욕망이다. 하버드대의 하비 콕스(Harvey G Cox)는 50년 전 종교는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그러나 종교는 지난 반세기 더욱 증가했다. 독일의 여론 조사 기관인에 의하면 1970년대 유성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22%였던데 반해 현재 40%가 넘는다고 한다. 콕스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종교를 퇴보시킬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미신은 더 증가하고 신문 지면마다 점성술과 운세들로 넘쳐난다. 알렌스바흐를 인용하자면,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미신을 믿고 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그것은 인간의 합리성과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