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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원의와 행위 언약 행위 언약이라니까 순종하면 구원이고 불순종하면 지옥이었다가 죄로 타락하고 망하고 나서 은혜 교리를 주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세대주의 신학의 폐해이면서 이단보다 더 치명적이다. 이 오염된 사상은 심각한 구원 교리의 오류를 낳는다. 아담은 창조 후에 부가적 은사(donum spraditum)를 부여 받는다. "더해진 은혜의 선물"이라는 의미인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문서들에서는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로 표현되어 있다. 이 기술적 교리 개념은 그 근거가 에베소서 4:24과 골로새서 3:10의 그리스도가 가지신 형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를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이라고도 벌콥 등이 기술하기도 한다. 이것을 처음 진술한 사람은 내가 아는 지식의 .. 더보기
propagation과 원죄 교리 정이철은 거짓말쟁이에 거짓 목사다. 능동순종으로 어떻게 안 되니 논쟁 중 내가 사용한 propagation이란 용어를 두고 나를 무슨 피가름 유사 교리 전파자로 누명을 씌어 합동 총회에 제소를 했다. 이 단어의 최초 사용자는 어거스틴이며 벌콥의 조직신학과 개혁파 신앙고백서들에 같은 개념 및 직접 용어를 사용한다. 내가 쓴 단어는 벌콥의 용어다. 어거스틴은 죄가 생육법을 통해 유전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의 의화 교리와 관련이 있다. 육신을 하등한 것으로 생각했고 이는 아퀴나스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의화란 이 하등한 육신에 의라는 실제가 주입되는 개념이다. 이 교리는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다 주입받은 죄인이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현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죄를 지은 죄인의 육신에 의라는 실제가 공존할.. 더보기
어거스틴 데카르트 스피노자 어거스틴이 말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ergo sum)를 데카르트가 오마쥬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말했다. 어거스틴의 표현은 내면의 마음만이 계시의 빛의 조명을 받아 진리를 간직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데카르트 역시 명석판명한 진리의 기초를 놓기 원했으나 계시의 빛을 소거한 채 자아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것이 근대의 출발이었다. 그래서 근대의 철학을 인식론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근대는 결국 진리를 대상화함으로 길을 잃어버렸다. 실존주의자들의 성찰은 이런 지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칼뱅이 하나님과 나를 아는 지식을 인식론의 기초로 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나 근대가 만들어 낼 문제 지점을 잘 알.. 더보기
진선미와 원의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도, 인류가 타락한 후에도, 은혜로 구원을 얻은 후에도, 영생에 들어 주와 교제하는 영화에 든 후에도, 인류의 정신 구조는 같다. 우라는 은혜로 온전해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아담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더하여 주셨다. 흔히 원의라고 하며 이는 아담 타락 이후의 모든 인류는 전가를 통해 이 의를 적용받았다. 이는 존재론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법적으로는 우리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원의는 참 지식, 의, 거룩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 이성과 의지와 정서에 깃든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되는 진선미라고 할 수 있다.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말씀을 들음으로 주입된 믿음은 특히 참 지식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우리 내적인 건덕이 되며 이 믿음을 통해 하늘에 계신 그릿 도.. 더보기
전가교리와 새관점 원래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와 논쟁하면서 형성한 원죄 교리는 생육법, 곧 번식에 의해 후대에 전달(propagation)된다는 교리였다. 언약 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희미하였고 인죄론과 언약론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다. 이것이 제대로 연결된 것은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서다. 구원론에서 의의 주입 교리가 다시금 펠라기우스주의를 살아나게한 현실을 타개한 방식이 칭의를 전가(imputation)로 설명한 것이다. 전가란 그리스도가 얻으신 의가 회개하고 믿음을 얻은 자에게 주입되지 않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여전히 있으면서 믿음이란 도구를 통해 그 의에 동기화되는 방식이다. 칼뱅의 워딩을 빌리면 연합 교리라 할 수 있다. 이는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표현된 진리를 가장 이해하기 수월한 .. 더보기
전가교리의 역사적 맥락 1. 전가 교리는 언약에 의해 법적으로 이뤄지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매개가 없다. 달리 말하면, 부모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 아담이 맺은 언약을 따라 법에 의해 직접 전가된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명령에 따라 사망의 형벌이 법적으로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었다. 같은 원리로 그리스도가 이루신 순종의 의를 언약에 의해 전가받는다. 이 부분은 순전히 종교개혁자들의 업적이자 성과다. 2. 이 사망의 형벌을 근거로 해서 부모를 매개로 오염과 부패를 생육법에 의해 전달받는다. 이 부분은 고전적 교리로 어거스틴에 기원한다. 같은 방식으로 은혜의 주입에 의해 죄의 세력을 사멸한다. 주입 교리는 칭의에서 제거되고 성화에만 님게 된다. 고전적으로는 이 구분지, 곧 칭의와 성화의 구분이 없었다. 뭉둥거려 의화라 했고 지금도.. 더보기
능동순종과 주재권 논쟁의 공통점 율법은 우리를 성전이신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수단이 된다. 이를 이전 시대 개혁자들은 준비론이라 했다. 자기 죄를 깨닫고 괴로워 하고 해결하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다가 그리스도께로 방법이 없어서 두 손들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께서는 택지에게 믿음을 주입하신다. 믿음은 주입된 습관으로 하나님을 찾고 인식하는 기관이 된다. 율법에 미치지 못하는 삶으로 괴로워하다가 주께 나와 내가 죽을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두 가지를 주께 해결받는다. 1. 사망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해결받는다. 2. 내 부족한 행위를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해결받는다. 이를 이중 전가(double imputation)라고 한다. 칼뱅 신학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과거 미국에서 주재권 논쟁이 있었을 때, 세대주의 목회자지만 맥.. 더보기
예배 음악에 관한 짧은 생각 예배 음악에 관한 짧은 생각 공자는 시경에 있는 관저(關雎)의 시를 읽으면서 이런 논평을 논어 팔일(八佾) 편에 남겼다. "관저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는 않는다.(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그런가 하면 예기 19장 악기 편은 음악을 논하는 장인데 음악을 이렇게 논했다. 좋은 음악이란 쉽고 바른 예절이란 간결한 것이다(大樂必易 大禮必簡) 음악은 현란할수록 미혹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으며 그것이 우리 감흥을 깊이 일으키더라도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음악은 좋은 음악이 아니다. 좋은 음악은 이성을 더 활성화하고 우리 감성을 북돋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배 음악으로 #시편찬송 은 좋은 음악이다. 그에 비해 #CCM, 특히 미국 쪽에서 나온 예배 음악들은 지나치게 현란하다. .. 더보기
선행은총의 역사 선행은총은 종교개혁기 가톨릭의 신학이거나 알미니안의 신학인 줄 알지만 그 역사는 교부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툴리안은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으로 참된 회개에 이른다 했으며 순교자 저스틴은 하나님이 구원사역을 먼저 시작하신다는 의미로 선행적 은총을 설명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암브로시우스, 크리소스톰과 같은 교부들의 글에서도 선행은총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교부들은 “신인협동설”에 가깝게 이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선행은총이 본격적으로 설명된 것은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와 논쟁하면서부터다. 어거스틴은 선행은총 교리를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하여 발전시켰다. 그는 펠라기우스에게 보내는 두 편지에 “선행적 은총”과 “후행적 은총”을 주장했다. 그가 두 은총을 주장하기 위하여 인.. 더보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인죄론의 변화, 그럼에도 속지 말아야 할 것... 가톨릭 교회는 죄를 대죄와 소죄로 구분한다. 대죄란 세 가지 조건에 의해서 성립한다. 첫째, 중대한 문재와 관련한 죄(materia gravis et insuper)일 경우로,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이에 대한 충분한 지식(plena conscientia)이 있음에도 어기는 죄를 의미한다. 셋째,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deliberato consensu) 죄라는 조건을 충족하면 이를 중대한 죄, 혹은 치명적인 죄라 하여서 "대죄"라고 한다. 개혁파 신학에서도 죄의 경중을 전혀 따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1문은 더 악한 죄를 정의하기도 한다. 어쨌든, 가톨릭 교리는 이와같은 치명적이고 중대한 죄를 7개의 치명적 죄로 구분하기도 했다. 교만(superb..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