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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기독교 변증, 새로운 플랫폼 법륜의 즉문즉설은 매우 현실적 조언으로 불교의 교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전통은 원래 힌두교의 삿상(satsang)이라는 "진리와의 만남" 혹은 "진리를 주제로 한 대화"라는 힌두교 교사 구루(guru)와 구도자의 대화식 진리 탐색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원래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신학의 핵심은 변증이었다. 변증이 시간이 지나면서 논리적 설득으로 평가절하된 면이 적지 않다. 삶과 구도에 적실한 나눔이 있는 변증이 필요하고 변증이란 허공에 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제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제적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만남이 유발하는 가교와 같은 나눔 공동체가 필요하다. 더보기
믿음 소망 사랑 예배적 장치들 원래 개혁파 예배에는 주기도와 사도신경, 십계명이 예배의 중심을 이룬다. 이 셋은 우리 안에 길러지는 초자연적인 덕인 믿음, 소망, 사랑을 가늠하는 예배적 장치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초자연적인 습관은 먼저 믿음을 심으심으로 우리가 은혜의 수단들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면 은혜의 주입(impartation)이 일어나고 이것이 소망과 사랑의 덕을 성장시킨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공덕을 향해 우리의 자라남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며 매 예배에서 이것이 확인될 수 있도록 예배가 디자인되어야 한다. 더보기
종탑과 태풍 이제 예전처럼 예배당에서 종치고 사람 모으는 것도 아닌데 12세기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진 고딕 양식의 첨탑을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데 다는 것은 그만합시다. 이전에 달아 둔 것을 굳이 떼려면 돈들잖아요. 그건 두시고 태풍에 날아간 것은 굳이 기천만원 들여 새것으로 달지 말고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예배당을 상징하는 것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참고로 루터파는 장닭을 첨탑에 달았어요.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첨탑 달고 거기 십자가 다는게 만고불변의 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든 예에요 . 태풍때마다 누군가에겐 고통과 피해를 줄 첨탑 시공은 이제 그만합시다. 앗시스의 프란시스는 금식하다가 형제들이 예민해져 다투는 걸 보고 바로 식사를 했다잖아요.. 이웃을 조금만 더 생각합시다. 누가.. 더보기
우주의 언어 수학 신의 철학은 우주라는 거대한 책에 쓰여져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의 언어를 먼저 배우지 않으면 그의 뜻이 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쓰여져있는 언어는 수학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 더보기
사람은 좌절을 욕망한다 사람은 좌절을 욕망한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워딩이지만 사람의 욕망은 좌절이 만든 것이라는 의미다. 돈 욕심 내는 사람은 돈에 대한 좌절이 있는 사람이다.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은 이해받지 못한 좌절을 풀어보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를 강조하는 사람은 기도가 잘 안 되는 사람이고 전도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이렇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기도를 강조하는 분들의 기도 인식은 자연적이지 않으며 전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전도 인식은 현실성을 결여한 이상화 현상을 나타내 보인다. 좌절은 원망실현의 희망으로 인해 이상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그 상승의 힘이 정상적인 범위의 자연적 삶의 형태와 자리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마치 열등감을 원인으로 공부를 열.. 더보기
동조(conformity) 동조(conformity), 복종에 관한 외부 압력이 없음에도 뇌의 고통 감각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이성적이지 않은 사회적 행동들에 동조가 나타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XXr4poY8EM&feature=share&fbclid=IwAR3ZMa8HWdMhuBjffVWxmdfNB2V_JYwSe3c0b2NfpGkVygrC6lBEAuhWOWg 더보기
탈피와 성장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성장에 따라 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 생각이 탈피하지 못해도 도태된다. 괜히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는게 아니다. 더보기
자연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 법륜을 하나씩 듣는데 재미있게 설명한다. 어제는 아들을 잘 키우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질문에 고통과 쾌락 사이의 제3길로 붓다가 행했고 그 행함이 쾌락을 얻기를 바라는 자신을 깨닫고 바라보는 자에 대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길게 설명했다. 그것이 윤회를 벗고 해탈의 길이라고 그러면서 윤회가 뭐 소로 태어나고 이런 거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고통과 쾌락의 순환이 윤회고 여기서 벗어나 가는 제3길이 해탈의 길이라고 한다. 윤회가 소로 태어나고 뭐 이런 거 아니라 하니 마치 기독교인이 창조가 설화라고 하는 것과 유사했다. 본인도 그 의식을 했던지 기독교 창조 이야기도 지나가면서 한다. 아마도 자유주의 계통의 신학 서적도 꽤 읽는 것이 아닌가 유추가 되었다. 법륜의 불교 해석은 비신화화 신학의 불교버전처럼 보였다. 그렇.. 더보기
세계나눔지수 2019년 통계 영국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하는 세계나눔지수(WGI)는 낯선사람 돕기, 기부금, 자원봉사시간과 이를 종합해서 순위를 내고 있다. 낯선 사람 돕기에서 거의 꼴찌인 일본(125위)과 기부에서 거의 꼴찌인 중국(116위) 사이에서 한국이 참 애처럽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자비로울 것 같지만 통계상 남자가 여자보다 더 자비롭다. 남자가 이기심이 덜한 셈이다. 세대별로는 3-40대가 가장 자비롭다. 국가별 통계에서 한국은 낯선 이웃 돕기에서는 78위, 기부금 순위에서는 38위, 자원봉사 시간에서는 53위로 전체 순위에서 57위에 랭크되었다. #2019년통계 #전체보고서는아래링크로 https://www.cafonline.org/docs/default-source/about-us-publications/caf_wgi_10.. 더보기
욕망과 좌절 큰 좌절은 큰 욕망의 증상이다. 신자의 삶에 있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다만 설명할 수 없을 수는 있다. 때로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아도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응하면서 적응하면서 버틸 뿐이다. 버티는 삶에는 좌절이나 낙심이 들어설 곳이 없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그 집의 감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큰 꿈을 꿨기 때문이 아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였으나 그것은 자기 욕망이 아니었다. 왕의 채색옷이 노예의 옷, 죄수의 옷이 되었다가 다시 존귀한 총리의 옷이 되었다. 마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의 담는 듯 싶다. 이 모든 순간을 감내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은혜의 손길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굄을 얻고 요셉으로 인해 그 집이 복을 얻었다. 내 꼴은 말이 아닌데 나로 인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