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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 비트겐슈타인은 19세기 후반 유대인의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유력한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해서 당대 최고의 음악가 브람스, 슈만, 말러 등을 집에 초대해 연주회를 열곤 했다. 집은 예술가와 문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세 형은 자살을 했고 비트겐슈타인도 그 충동에 오래 시달렸다. 그나마 파울이란 형은 피아니스트였는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오른 팔을 잃고 말았다. 비트겐슈타인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전선의 맨 앞에서 용맹하게 싸웠으며 퇴각의 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일기처럼 글을 썼고 종전 후 이걸 모아서 성경처럼 번호를 매겨 출간했다. 이게 그 유명한 "논리철학논고"이다. 이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은 단 번에 유럽 지성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더보기
소크라테스의 기소 배경 소크라테스 기소의 배경 소크라테스의 생존기간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기간과 겹친다. 페르시아 전쟁으로 아테네의 기세는 올랐다. 이를 두려워 하고 시기했던 스파르타는 결국 전쟁에 나서고 만다.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그리스의 자살이라고 불렀다. 이를 암피폴리스의 지도자였다가 스파르타에게 패배한 책임으로 아테네에서 20년 추방형을 선고 받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던 타키투데스는 함정에 빠졌다고 말했다. 흔히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은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소크라테스는 포티다이어 전투에서 그의 제자이자 멘토 멘티 관계였던 알키비아데스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제자는 세 번의 변절을 한다. 아네테에서.. 더보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론 미완성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은 그림언어 이론이라고 한다. 언어란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봤다. 언어와 사물의 일대일 대응관계로 설명했다. 흔히 지시론적 의미론이라고 한다. 이게 그가 1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일기처럼 포탄이 터지는 동안 기록했단 점이 그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진리란 사태와 그 진술 사이의 일치로 환원이 되었고 신, 영혼과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림언어 이론으로 철학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돈도 명예도 모두 버리고 단칸방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그랬던 그가 전기 철학을 부정하면서 다시 철학계로 돌아왔는데 이는 내피셜이지만 아마도 초등교사 경험이 이런 일을 만들지 않았는가 싶다. 그의 후기 언어이론을 흔히 화용론이라 한다. 말의 의미는 그 사용법에 있다는 .. 더보기
논어 계씨 개강자 편 중에서 孔子曰 君子 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 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세가지를 두려워 하니,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 한다. 반면,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여 천명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대인을 가벼이 대하며,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논어 16편 계씨 개강자 편에서 더보기
그리스도의 원의 그리스도의 원의는 참 지식, 의, 거룩함으로 증거구절은 엡 4:24과 골 3:10에 나온다. 토마스 빈센트는 소요리 문답에서 이를 해설하면서 각기 지성과 의지와 정서에 담긴다고 해설했다. 또 달리 설명하면 진선미라 할 수도 있다. 참 지식과 그것을 담는 인간의 이성은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변별하기 때문이다. 의와 이를 담는 의지는 선과 악을 변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기관이며 거룩함과 그것을 담는 정서는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칸트는 미학을 논한 책의 제목을 판단력 비판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소크라테스는 진선미를 로고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를 따로 변별하지 않았다. 원의가 하나님의 형상의 좁은 의미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며 조나단 에즈워즈는 신앙감정론에서 대체로 참된 믿음.. 더보기
들뢰즈의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들뢰즈는 독특한 프랑스 철학자다. 포스트모던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원래 서양철학은 플라톤-아퀴나스-칸트-헤겔로 이어지는 이원론 전통이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현상계(가시계), 실제로서 알 수 있는 가지계, 곧 이데아의 세계다. 이를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하고 현상계를 독사(doxa)라고 했다. 에피스테메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독사는 독단으로써 서계를 일컫는다. 이 에피스테메는 푸코에게 가서 쿤의 패러다임과 비슷한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세계와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중세 스콜라철학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하나님을 정점으로 만물을 위계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데아는 원본, 그다음은 복사본(copy), 다음은 유사본인 시뮬라크르(simulacre)가 된다. 사실 이 구조는.. 더보기
아퀴나스 신학과 종교개혁 신학의 차이점 아퀴나스는 신존재증명을 했다. 이 말은 이성과 신앙이 하나의 체계라는 의미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체계와 관련이 있다. 즉, 가시계로써 현상계와 가지계로서 이데아계가 동일성의 원리로 이데아계로 환원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연을 통해 이성의 유추로 신존재증명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동일성의 원리의 전통이 플라톤-아퀴나스-칸트-헤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체계로 가능한 신학을 흔히 자연신학이라고 한다. 이런 체계의 대표적인 예가 중세 스콜라 체계다. 스콜라 체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이 유기적인 계층구조(Hierarchy)를 띤다. 이런 이유로 자연을 통해 신존재증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스콜라 후기의 오캄(William of Occam, 대략 1300-1349)이란 신학자는 이성을 통해.. 더보기
종교개혁 신학 전통의 신앙과 이성 오캄, 비엘, 리미니, 등을 통해 시작된 새로운 길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과 신앙으로 알 수 있는 것을 구분했다. 즉, 신앙은 계시를 통해서 자연은 이성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원래 플라톤의 이데아는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이데아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그리스 북부 테실리아의 귀족 메논과 논쟁 중에 니온 말로 메논이 이를 믿지 않자 그 자리에서지나가던 노예 소년을 불러 그가 기하학을 이미 알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를 흔히 상기설이라고 한다. ---------------- 소크라테스 : 저 노예 소년도 기하학을 알고 있다. 메논 : 노예 소년이 기하학을 알고 있다니 말도 안 됩니다. 소크라테스 : 내가 바닥에 그리는 것을 봐라. 사각형을 그릴 거고, 여기 한 변의 길이가 2.. 더보기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정치적 의미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플라톤의 작품이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르기누사 해전에 관한 이야기다. 이 해전에서 승리를 했는데 폭풍우가 몰아쳤고 이 때문에 전사자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 전쟁에 참여한 장군 6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은 변론에 기회도 주지 않고 이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때 유일하게 반대했던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10개의 부족이 매달 50명의 대의원을 내고 그렇게 모인 500명이 민회를 통해서 다스리는 민주정 구조를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당한 결정으로 해전에 실전 경험이 많있던 장군들이 사라짐으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패하고 만다. 그리하여 아테네에 스파르타가 세운 괴뢰 정권이 스파르타.. 더보기
개혁신학 구원론의 체계 1. 로마 가톨릭 교회는 지금도 "의화" 교리를 믿습니다. 2. 사실 이 교리는 로마교의 종특이라기보다 이전 어거스틴 시대의 교리입니다. 3. 이것을 종교개혁 전통은 "칭의"와 "성화"로 구분지은 것입니다. 4. 그럼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해야 칭의 교리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의화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은혜의 교리에서 점점 껍데기는 은혜인데 내용은 행위 구원 교리로 변질되어 갑니다. 6. 처음에 예수를 믿을 때, "원의"라는 것을 "주입"해줍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고 은혜로 믿음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7. 여기서 원의는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참 지식, 의로움, 거룩함으로 표현되고 에베소서 4:24과 골로새서 3:10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