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직신학/구원론

믿음이란 무엇인가? - 서론 믿음이란 무엇인가? - 서론 잔 그레스햄 메이천 본서의 논의의 제목인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들은 믿음이란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알려질 수 없으며, 믿음이 경험에 의해서만 알려질 때, 믿음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다른 경험들로부터 믿음을 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단지 믿음의 능력과 매력을 파괴하도록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아는 사람은, 그의 삶의 기초인 그러한 경험에 대한 심리학적 조사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러한 조사는 조사대상이 된 그것을 파괴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반론들은 단지 오늘날.. 더보기
6. 참된 회개를 방해하는 것들 6. 참된 회개를 방해하는 것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마가복음1장15절).“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사도행전20장21절).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복음을 듣는 그 첫 순간에 죄를 분명하게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게 되어서 곧바로 회개하고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랄 만한 생활의 변화를 겪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겪게 되는 회심들은 물론 너무나 완벽하게 성경적인 새출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다음 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더보기
분명한 회심의 7가지 표지 분명한 회심의 표지참된 회심이 분명히 일어났다고 하는,인식될 수 있는 표지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마음 속에 역사하셨는지에 대해서 구도자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혹은 기독교 사역자들이 구도자들이나 질문자들의 영적 상태를 어떻게 분별하거나 세례지원자와 교회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영적 위치를 ‘점검’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우리들의 신앙선조들이 ‘은혜의 표지’라고 불렀던, 여러 가지 분명한 회심의 표지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일서에서는 이런 표지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성경주석가들은 이 서신의 주요 요점들을 ‘생명의 점검들’이라고 기술해 왔습니다. 요한은 강조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있는 지를 확실한 증거들을 .. 더보기
참된 회심은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를 의미합니다. 참된 회심은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를 의미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내가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마음’ 세미나에 참석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삶이 실제로 내가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죄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나의 헌신은 완전히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신앙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참된 회심은 삶의 변화. 특히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를 의미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이 청년이 회심 후에 일어.. 더보기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conversion)의 정의 본래 회심이란 말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신학적 의미로는 우상이나 악에서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흑암에서 광명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의식적으로 하나님께로 전향함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보통 회심이란 단어를 자주 쓰지는 않는다. 사도행전 15장에 에피스토페이라는 단어로 한번 나타난다. 그러나 같은 동의어인 회개, 중생, 거듭남과 같은 단어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회심을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 왜냐하면 교회사의 뛰어난 인물들의 회심은 모두가 그들의 인생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학자 칼빈은 회심을 "인간이 하나님께로 그의 얼굴을.. 더보기
신앙의 확신 이 길ㅡ성경과 종교개혁의 입장ㅡ은 신앙을 위해서 싸우지 않고 신앙에서 비롯되는 삶을 위해서 싸운다. 그것은 믿기 위해서 행하지 않고, 행하기 위해서 믿는 길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자기 입장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안에서 발견해 왔다. 그의 소망의 기초는 자신 밖,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기도(소망)는 확고히 자리 잡게 돼 결코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의 구원의 건물이 세워진 기초의 진정성(眞正性)과 힘을 부단히 시험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의 확신을 온갖 내적(內的) 경험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들에 기초를 둔다. 이런 확신 때문에 그는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좋은 은사들과 온전한 은사를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고.. 더보기
회심(Conversion)에 대한 이해 회심(Conversion)에 대한 이해 이광호 목사 [시작하는 말] 기독교 구원론에 있어서 회심은 절대 중요한 요소이다. 회심이 없이는 그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고 회심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없이는 기독교 복음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모든 기독교 신앙은 '회심'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이후의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칼빈 등) 중생과 회심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심과 회개에 대해서도 분리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이러한 다소 상이한 개념들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과 회심은 구분된다는 견해가 있으며 회심과 회개 역시 서로 구분하여 이해될 수 있다는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즉, 그 개념들이 어느정도 동일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지만 특성에 따라 그 의미들을 달.. 더보기
존 오웬, 내 안의 죄죽이기, 브니엘, 2007 존 오웬, 내 안의 죄죽이기, 브니엘, 2007 존 오웬 존 오웬은 1616년 영국 옥스퍼드주 스타드햄에서 그곳 교구목사인 헨리 오웬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교도 시대의 신학과 신앙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존 오웬을 가리켜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로,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오한 신학 저서를 방대하게 내놓은 저술가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신실한 목회자요, 은사받은 대 설교자요, 옥스퍼드 그리스도교회의 감독이요, 옥스퍼드대학교의 부총장이요, 크롬웰 경의 국목이요, 한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신학적 저작을 낸 저자요,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 인격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15세에 옥스퍼드 퀸스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았고, 대학을 나와 석사학.. 더보기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 1. 복음의 회복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은 보편적 구속 교리가 비성경적이고 복음을 훼손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설계된 논쟁적 저술이다. 오웬의 논문은 복음의 회복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도와줄 것이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의 실패와 그 원인 오늘날의 복음주의가 혼란과 불안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가 성경적 복음에 대한 파악력을 상실함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세기동안 복음을 대용품에 헐값으로 팔아왔다. 이 대용품은 사소한 점에 있어서 상당히 유사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이 새로운 복음은 깊은 경외심과 회개, 겸손과 예배정신 교회의 관심을 갖는 심령의 인간을 만들지 못했다. 왜 그럴까? 새 복.. 더보기
“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문”1)에 대한 개혁교회의 평가 “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문”1)에 대한 개혁교회의 평가 이형기(Ph.D.장신대명예교수) 1. 역사적 배경 고대 교회는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의 문제로, 그리고 어느 정도 구원론의 문제(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로, 교회의 분열을 경험하였다면, 16세기는 구원론의 문제로 서방교회 안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를 비롯한 개신교회가 분열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1530년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서”가 나온 이래 계속해서 1530대와 1540년대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양측은 양자 간 신학 협의회들을 통하여 화해를 모색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이 양자 간 대화의 역사에 있어서 “레겐스부르크 회담”(1541년)이 가장 성공적 이였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1545-1563년 어간.. 더보기